고교학점제에서 느껴지는 데자뷔
1954년 미국 대법원의 브라운 판결은
'공립학교의 인종 분리는 위헌'이라고
선언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누구나 동의할 만큼 분명히 옳은 판결이었다.
하지만 이 판결 이후에 일부 지역은
학교 통합을 거부하며
오히려 공립학교를 폐쇄하거나
흑인 교사들이 대거 해고되는 등의 부작용이 발생했다.
교육에서의 평등이라는 원칙은
누구나 동의할 만큼 옳았다.
하지만 그 판결이 작동한 방식과 그 이후의 과정은
지금까지도 많은 논쟁과 반성을 불러오고 있다.
정당한 목표라도, 준비 없는 도입은
오히려 '선택'이라는 이름 아래
더 깊은 격차를 만들어낸다.
요즘 한국의 고교학점제를 보면,
자연스럽게 브라운 판결이 떠오른다.
'학생 맞춤형 교육'이라는 이상은
분명 긍정적인 방향이다.
자율성과 다양성이라는 키워드도
더 나은 교육을 위한 길이 될 수 있다.
그런데 그 제도를 구현하기 위한
현실적인 조건들은 충분히 마련되고 있을까?
학교 현장에서는 과목 개설, 교원 배치,
공간 확보등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실제로 지역과 학교에 따라 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교육의 폭은 크게 차이가 난다.
여기에 더해,
최근 몇 년 사이 교육 재정과 관련된 변화들이
교육현장의 준비에
더욱 부담을 안기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선택이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정작 선택지를 구성할 수 있는 환경은
점점 불안정해지고 있다.
반복되는 패턴 - 누구를 위한 자율성인가
이런 흐름은 과거 미국에서
공교육을 민영화 방향으로 이끌었던 초기의 흐름과 닮아 있다.
다양성과 경쟁, 자율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변화가
결국 교육의 책임을 개인과 가정에 넘기고
정보력과 자산의 격차에 따라
진로가 갈리는 결과로 이어졌던 역사 말이다.
한국에서도 고교학점제를 두고
'제도는 좋은데 사교육이나 정보 격차가 문제'라는 반응이 나온다.
하지만 그런 불안감이 생긴다는 것 자체가
제도 설계 자체에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신호다.
정보가 없는 게 아니라,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여건이 부족한 구조,
자율성이 아니라 방임에 가까운 도입 방식이 문제일 수 있다.
브라운 판결을 다시 떠올리며.
그래서 나는 다시, 브라운 판결을 떠올린다.
그 판결은 옳았다.
하지만 그 방식은 일부를 고립시켰고,
그 격차는 아직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고교학점제 역시 그 취지는 공감하지만
이 방식, 이 속도, 이 준비 상태로는 교육의 격차를 줄이기보다
또 다른 격차를 조용히 심어놓는 건 아닐까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