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왜 답이야?"
이런 단순한 질문 앞에서
우리는 쉽게 무너진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답을 빨리 찾는 방법을 배울 뿐
왜 그게 답인지 생각하는 법은 배우지 못한다.
생각의 과정보다
정답의 속도가 더 중요한 사회였다.
누가 더 빨리 맞히느냐가 중요했고
틀리는 건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왜?"라는 질문을 싫어하게 되었다.
어색하고, 불편하고, 당황스럽다.
그 질문 앞에 서면
우리가 믿어왔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모래성이라는 걸 알게 된다.
웃긴 건, 지식은 그렇게 쉽게 무너지는데
신념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논리 없는 확신, 감정에 기대 만든 믿음.
그건 너무나 단단해서
도리어 질문이 부딪히지 못한다.
모든 게 빠르게 변하고
정답이 하나일 수 없는 시대가 되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정답을 말하는 사람을 찾는다.
말이 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럴듯하고, 자신감 있게 말하면 그만이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사실은 '느낌에' 기대어 산다.
"다들 그렇게 말해."
"유튜브에서 봤어."
"전문가가 그렇다던데."
이런 한마디들이
지식이 되고, 진실이 되고, 사람들의 기준이 된다.
하지만 그런 세상일수록
나는 모른다는 걸 견디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걸 인정하는 일.
그건 나약함이 아니라
변화를 살아가는 최소한의 준비라고 믿는다.
나이가 있고,
많이 배웠고,
경험이 있다 해도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정답'이
누군가에게는 정답이 아닐 수 있다는 것
그걸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다시 배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을 견딜 수 있을 때
"확실해?"라는 한마디 앞에서도
조금은 덜 흔들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