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불행한 줄 알았던 시절
특별하다는 것은 비중이 적은 '소수', 평범하다는 것은 비중이 많은 '다수'를 뜻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를 바라보는 방식에서 묘한 아이러니를 보인다. 좋은 일에서는 특별해지고 싶고, 나쁜 일에서는 평범해지고 싶다.
예를 들어 4%라는 숫자를 생각해 보자. 복권에 당첨될 확률이 4%라면 대부분의 사람은 그 안에 들고 싶어 한다. 반대로 희귀병에 걸릴 확률이 4%라면 누구도 그 안에 포함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같은 숫자지만 언제는 되고 싶고, 언제는 되고 싶지 않다.
결국 특별함과 평범함은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물론 이 4%는 단순한 ‘확률’의 이야기다. 하지만 우리가 바라는 대부분의 ‘특별함’은 우연이 아니라, 선택과 반복을 통해 만들어진다.
속상한 일을 친구에게 털어놓을 때도 꼭 해결책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이럴 때는 이렇게 해봐” 같은 현실적인 조언도 도움이 되지만, 이상하게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말은 다른 것이었다.
“나도 그랬는데... 너도 힘들었겠다.”
그 한마디 공감이 주는 위로는 생각보다 컸다.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그 순간만큼은 내가 세상에서 유일하게 불행한 사람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그 위로가 가능한 이유도 그 일이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충분히 일어날 법한 평범한 경험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날 운전을 하다가 신호에 걸려 차를 멈춘 적이 있었다. 그때도 내 표정은 밝지 않았다. 회사 일이 너무 힘들어서 아마 또 죽상인 얼굴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 한 초등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책가방을 메고 있었는데 표정이 유난히 어두웠다. 마치 인생을 다 산 사람처럼 힘든 얼굴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문득 과거의 내가 떠올랐다.
저 친구에게도 지금은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일 것이다. 물론 내가 모르는 더 깊은 사정이 있을 수도 있다. 그래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시절도 결국 지나갈 텐데. 지금의 시간을 조금 더 웃으면서 보내도 좋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다가 자연스럽게 시선이 나에게로 돌아왔다.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를 본다면 아마 비슷한 말을 해주지 않을까. “그 시절도 결국 지나가니까 너무 그렇게 힘들어하지 않아도 된다.”
살다 보면 우리는 종종 이렇게 생각한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지?”
“왜 내 인생만 이런 걸까?”
하지만 조금만 떨어져서 보면 그 일은 생각보다 특별한 사건이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지금 겪고 있는 일은 ‘왜 나만...’의 일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 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고, 버틸 수 있는 것 아닐까.
어쩌면 발생하는 사건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의 문제에 가깝다.
우리는 좋은 일에서는 ‘소수’가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소수는 아무 이유 없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다수와 같은 방식으로 살면서, 결과만 소수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일지도 모른다.
특별하다는 것은 확률적으로 낮은 위치에 있다는 뜻이고, 그만큼 도달하기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결국 좋은 일에서 소수가 되고 싶다면, 다수와는 다른 선택을 해야 한다. 그만큼 고독하고 어렵기에 소수인 것이다.
결국 특별함과 평범함은 사건 자체의 차이라기보다는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차이에 가깝다. 복권의 4%는 특별하게 느껴지고, 희귀병의 4%는 억울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숫자는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가 바라는 ‘특별한 결과’ 역시 아무 이유 없이 주어지지는 않는다. 평범한 선택 속에서 특별한 결과만을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가끔은 이렇게 생각해 보려고 한다.
내가 겪고 있는 이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한 일일 수 있고,
내가 원하는 특별한 결과는 그만큼 평범하지 않은 선택을 필요로 하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지금은 언젠가 돌아보면 하나의 평범한 구간일 수 있지만,
동시에 앞으로의 나를 바꾸는 분기점일 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