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캐피털리즘 시대의 자유주의

'자유로 본 시민 교양론 - 제4장-2'

by 박대석

[표지사진: 감마로 필자가 생성한 이미지]


제4장-2: 포스트 캐피털리즘 시대의 자유주의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향하여


성장 중심 자본주의의 한계가 명확해진 지금, 우리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의 모색이 필요한 시점에 서 있다.


더 나아가 성장 중심의 자본주의가 한계에 부딪히고 있는 현실에서, 자유주의 진영은 어떻게 포스트 캐피털리즘 담론을 선도할 수 있을까? 이 장에서는 탈성장 담론부터 기본소득 논쟁까지, 21세기의 새로운 도전과 그에 대한 창조적 응답을 모색해 본다.


성장 중심 자본주의의 구조적 한계


한국의 인구구조 변화는 성장 둔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2020년부터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했고, 생산가능인구는 이미 2010년대 중반부터 줄어들고 있다. 합계출산율이 0.8명대로 전 세계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어, 향후 경제 성장의 기본 동력인 노동력 공급이 크게 제약될 전망이다. 고령화도 급속히 진행되어 2025년에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예정이다.


이러한 현상들은 한국 경제가 기존의 성장 패러다임으로는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투입 중심의 성장에서 혁신 중심의 성장으로 전환해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성장률 둔화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성장 자체의 의미와 목적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필요한 시점에 이르렀다.


유럽의 상황도 한국과 유사하다. 독일을 제외한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제대로 된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특히 남유럽 국가들의 경우 청년 실업률이 20-30%에 달하며, 이는 단순한 경기 문제를 넘어선 구조적 문제임을 시사한다. 브렉시트 같은 정치적 혼란도 경제적 불확실성을 가중시키고 있다.


미국조차도 2010년대 이후 연평균 성장률이 2% 대에 머물고 있으며, 이는 과거 3-4%의 성장률과 비교하면 상당한 둔화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성장도 대부분 금융 부문과 IT 기업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제조업 기반이 약화되고 중산층이 몰락하면서, 성장의 과실이 고르게 분배되지 않는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성장 중심 자본주의가 어떤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시사한다. 무한 성장을 전제로 한 경제 모델이 유한한 자원과 시장의 한계에 부딪히고 있는 것이다. 기술 혁신의 속도도 20세기에 비해 둔화되고 있으며, 신기술이 가져오는 생산성 증가도 예전만큼 극적이지 않다는 분석이 많다.


탈성장 담론의 부상과 그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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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현실을 배경으로 탈성장 담론이 주목받고 있다. 케이트 레이워스의 '도넛 경제학', 잭슨의 '성장 없는 번영'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GDP 성장에만 매몰되지 않고 삶의 질, 환경적 지속가능성, 사회적 웰빙을 중시하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탈성장론자들의 주장에는 분명한 설득력이 있다. 지구의 자원은 유한하고, 기후변화는 현실이며, 소득 불평등은 심화되고 있다. 더 이상 양적 성장만으로는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네덜란드의 웰빙 경제, 부탄의 국민총행복지수, 코스타리카의 지속가능발전 모델 등이 대안적 발전 지표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탈성장 담론에는 심각한 한계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개발도상국과 최빈국의 현실을 간과한다는 점이다.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들은 여전히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들에게 성장은 생존의 문제다. 1일 2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전 세계 10억 명의 인구에게 '성장보다는 삶의 질'이라는 메시지는 사치스럽게 들릴 수밖에 없다.


인도나 중국 같은 신흥국들도 마찬가지다. 이들 국가의 수십억 인구가 중산층으로 진입하려는 열망을 탈성장 논리로 억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정당하지 않다. 서구 선진국들이 200년간 화석연료를 태워가며 성장한 후에, 이제 와서 개발도상국들에게 성장을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일종의 '성장의 사다리 걷어차기'에 해당한다.


한국의 경우도 탈성장 담론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적 제약이 있다. 한국은 여전히 1인당 GDP가 미국의 70% 수준에 불과하고, 남북분단이라는 특수한 안보 상황을 안고 있다. 경제력이 곧 국력이고 생존 능력인 상황에서, 성장을 포기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더 나아가 한국 사회의 높은 교육열과 성취 지향적 문화를 고려할 때, 탈성장은 사회적 합의를 얻기 어려운 선택이다.


더 나아가 탈성장이 실제로 실현된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도 불확실하다. 일본의 장기 저성장이 보여주듯, 성장이 멈춘 사회는 활력을 잃고 혁신 동력이 약화될 수 있다. 젊은 세대의 기회가 축소되고, 사회적 이동성이 감소하며, 정치적 불안정까지 초래할 수 있다. 프랑스의 황조끼 시위나 미국의 트럼프 현상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 문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불평등은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자본 수익률이 경제 성장률을 상회하는 경향이 지속되면서 부의 집중이 심화되고 있다. 이는 기회의 평등을 훼손하고 사회적 이동성을 제약하여 자유주의의 기반을 흔든다.


하지만 불평등 해소가 곧 평등주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롤스의 차등원리에 따르면, 불평등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불평등이 최소 수혜자에게도 이익을 가져다주는지가 중요하다. 혁신과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보장하면서도, 기본적인 기회의 평등과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안 경제 모델의 모색


성장 중심 자본주의의 한계가 분명해지면서 다양한 대안 경제 모델들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사회적 경제는 그중 하나로, 이윤 극대화보다는 사회적 가치 창출을 우선시하는 경제 활동을 의미한다.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커뮤니티 비즈니스 등이 대표적인 형태다.


스페인의 몬드라곤 협동조합은 사회적 경제의 성공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1956년 시작된 이 협동조합은 현재 세계 최대 규모의 노동자 협동조합으로 성장했으며, 민주적 의사결정과 이익 공유를 통해 지속가능한 경영을 실현하고 있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 때도 대량 해고 없이 위기를 극복한 것은 협동조합 모델의 안정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에서도 사회적 경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2017년 사회적 경제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고, 2022년까지 사회적 기업 3만 개, 일자리 80만 개 창출을 목표로 했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적 경제의 규모는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한 수준이다. 무엇보다 시장경제 원리와 사회적 가치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근본적 과제가 남아있다.


공유경제 또한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으로 주목받고 있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가능해진 공유경제는 소유보다는 접근을 중시하며, 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통해 환경적 지속가능성도 추구한다. 우버, 에어비앤비와 같은 플랫폼 경제가 대표적이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협력적 소비와 공유 문화의 확산을 의미한다.


하지만 현실의 공유경제는 이상과 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플랫폼 기업들의 독점적 지위와 노동자들의 불안정한 지위 문제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진정한 공유경제가 되기 위해서는 플랫폼의 민주적 거버넌스와 이익 공유 구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기본소득 논쟁, 21세기 자유의 새로운 조건

h_cutwuV9_WNS2umlichE.png 필자가 감마로 생성한 이미지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한 일자리 변화는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있다. 기본소득은 모든 시민에게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현금을 지급하는 제도로, 자유의 실질적 토대를 제공하려는 시도다.


기본소득 지지자들은 이 제도가 진정한 자유를 가능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생존에 대한 걱정 없이 자신이 진정 원하는 일을 선택할 수 있게 되고, 불안정 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창조적 활동이나 사회적 기여 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복잡한 관료제 없이 직접 현금을 지급함으로써 효율성도 높일 수 있다고 본다.


한국에서도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2020년 코로나19 대응으로 전 국민에게 지급된 재난지원금이 일종의 기본소득 실험으로 평가받고 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청년 기본소득이나 농민 기본소득 등의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재원 조달 방안과 기존 복지제도와의 관계 등에서 여전히 많은 과제가 남아있다.


반면 비판자들은 기본소득이 노동 의욕을 저하시키고, 재정 부담을 가중시키며, 기존 복지제도의 해체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고 우려한다. 무엇보다 노동을 통한 사회 참여와 자아실현의 가치를 간과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핀란드, 케냐 등에서 진행된 기본소득 실험들은 혼재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스트레스 감소와 정신건강 개선 효과는 확인되었지만, 고용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었다. 기본소득이 21세기 자유의 새로운 조건이 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열린 질문이다.


자유주의의 포스트 캐피털리즘 담론 선도 전략


현재 포스트 캐피털리즘이나 탈성장에 대한 담론은 주로 좌파 진영에서 주도되고 있다. 이는 자유주의 진영에게는 위험 신호다. 자본주의의 한계에 대한 해법이 반시장적, 반자유주의적 방향으로만 제시된다면, 결국 자유주의 자체가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인식될 위험이 있다. 따라서 자유 보수 진영이 선제적으로 포스트 캐피털리즘 담론을 주도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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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포스트 캐피털리즘이나 탈성장에 대한 담론은 주로 좌파 진영에서 주도되고 있다. 이는 자유주의 진영에게는 위험 신호다. 자본주의의 한계에 대한 해법이 반시장적, 반자유주의적 방향으로만 제시된다면, 결국 자유주의 자체가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인식될 위험이 있다. 따라서 자유 보수 진영이 선제적으로 포스트 캐피털리즘 담론을 주도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하다.


첫째, 자유주의적 탈성장 모델의 개발이 필요하다. 성장의 양보다 질을 중시하되, 이를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달성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자원 생산성을 높이는 기술 혁신에 대한 시장 인센티브를 강화하고, 순환경제를 활성화하는 규제 개혁을 추진할 수 있다. 무엇보다 개발도상국의 성장 욕구를 인정하면서도, 선진국이 먼저 지속가능한 발전 모델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의 경우 '한국형 뉴딜'이나 '그린뉴딜' 정책이 그 시도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정부 주도적 성격이 강하고, 시장의 자발적 동력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탄소 중립을 목표로 하되, 이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둘째, 질적 성장 패러다임의 구축이다. GDP 같은 양적 지표를 넘어서 삶의 질, 환경적 지속가능성, 사회적 포용성을 포괄하는 새로운 발전 지표를 개발해야 한다. 하지만 이를 정부 주도가 아닌 시민사회와 시장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실현하는 것이 관건이다. 기업의 ESG 경영이나 임팩트 투자 같은 움직임을 확산시키는 것이 그 예다.


셋째, 분산형 자본주의의 발전이다. 거대 기업과 금융 자본의 집중을 견제하고, 중소기업과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크라우드펀딩, P2P 금융, 블록체인 기반의 분산형 거버넌스 등이 그 수단이 될 수 있다. 이는 경제력의 민주화를 통해 자유주의의 기본 가치를 실현하는 방법이다.


넷째, 혁신 생태계의 재구축이다. 기존의 대기업 중심 혁신 시스템을 넘어서 스타트업, 사회적 기업,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개방형 혁신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정부는 직접 개입하기보다는 혁신이 일어날 수 있는 제도적 토대를 마련하는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


한국의 경우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가 혁신 생태계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상생협력을 강화하고, 스타트업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규제 샌드박스나 특구제도를 활용하여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실험을 허용하고, 실패에 대한 관용적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보수적 자유주의의 창조적 대응


자유주의 진영이 포스트 캐피털리즘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전통적 가치와 현실적 필요 사이의 창조적 종합이 필요하다. 에드먼드 버크의 점진적 개혁 정신에 따라, 급진적 변화보다는 기존 제도의 진화적 발전을 통해 새로운 도전에 대응해야 한다.


전통적인 가족과 공동체의 가치를 21세기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이 그 출발점이다. 핵가족을 넘어선 확대가족, 지역공동체, 직업적 길드 등의 중간집단을 강화하여 개인과 국가 사이의 완충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 이는 토크빌이 강조했던 자발적 결사체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급속한 근대화 과정에서 약화된 공동체 문화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을 단위의 자치조직이나 직능별 협회 등을 활성화하여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이러한 중간집단들이 사회적 안전망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경제 활동의 새로운 주체로 기능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또한 장기적 관점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되, 이를 단계적이고 점진적으로 실현해야 한다. 급진적인 변화는 기존 질서를 파괴하고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시장 메커니즘을 활용하여 자연스럽게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할 수 있는 인센티브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보수적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책임을 동시에 강조한다. 포스트 캐피털리즘 시대에도 이러한 원칙은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자유의 내용과 책임의 범위가 확장될 필요가 있다. 경제적 자유는 단순한 소유와 처분의 자유를 넘어서, 창조적 활동과 사회적 기여를 통한 자아실현의 자유로 발전해야 한다. 책임 또한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 공동체와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자유주의의 새로운 지평


포스트 캐피털리즘 시대는 자유주의에게 위기이자 기회다. 기존의 성장 중심, 시장 중심 패러다임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자유주의의 근본적 재정립이 요구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자유주의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진화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자유주의의 핵심 가치인 개인의 자율성과 다원주의, 그리고 시장 메커니즘의 효율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이러한 가치들을 21세기적 현실에 맞게 재해석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자유는 단순한 방임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는 조건의 창출을 의미해야 하고, 시장은 단순한 경쟁의 장이 아니라 협력과 상생의 플랫폼으로 진화해야 한다.


한국 사회 역시 이러한 전환기에 새로운 발전 모델을 모색해야 한다. 압축 성장의 성공 경험에 안주하지 않고, 질적 발전과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개발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자유주의적 가치와 한국적 특수성의 창조적 결합이 필요하다.


미래의 자유주의는 개인과 공동체, 자유와 책임, 효율과 형평, 성장과 지속가능성 사이의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이는 쉽지 않은 도전이지만, 인류가 직면한 21세기의 과제를 해결하고 진정한 자유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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