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동원, 대기업 압박, 세제 인센티브 총동원…
12월 26일 오전,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452원대를 오가고 있다. Investing.com에 따르면 이날 환율은 1,446~1,453원 사이에서 움직이며 전일 대비 소폭 상승했다. 불과 이틀 전 정부가 총력 개입으로 1,484.9원에서 1,449.8원까지 33.8원을 끌어내린 효과가 일단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52주 최고점 1,488.32원의 그림자가 여전히 짙게 드리워져 있고, 개입 효과가 얼마나 지속될지 시장은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외환시장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1,450원 또는 1,500원을 '심리적 방어선'으로 의식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1,450~1,490원을 당분간의 밴드로 제시하며, 당국이 이 구간 상단에서 특히 민감하게 움직일 것으로 전망한다.
다만 이는 법·제도로 못 박힌 목표환율이 아니라 시장 참여자들의 해석이다. 1,480원대에서 구두개입, 세제혜택, 국민연금 환헤지, 스왑 등을 한꺼번에 투입해 1,450원대로 끌어내린 흐름은 "이 구간 위로는 더 두지 않겠다"는 의중을 강하게 보여주지만, "항상 1,450원 밑으로 막겠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과도하다는 것이 대체적 시각이다.
오히려 외환보유액과 신용등급을 의식하면 특정 숫자를 절대선으로 고정 방어하는 것은 위험하므로, 실제 정책 목표는 "1,450원 이하 고정 방어"보다 "1,500원 돌파 저지·급등 완화"에 가깝다는 분석이 합리적이다.
한편 미국 현지에서 원화의 체감 가치는 훨씬 가혹하다. 12월 24일 기준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SFO) ICE 환전소 게시판에 찍힌 숫자는 1달러에 1,809원이다. 서울외환시장 종가 1,449원과 비교하면 360원, 약 25%나 높다.
공항 환전소의 극단적인 스프레드를 감안하더라도, 매입가 1,257원과 매도가 1,809원 사이 44%에 달하는 격차는 미국에서 한국인 여행객이 체감하는 원화 가치가 얼마나 낮은 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서울 뉴스의 1,450원이 아니라 1,809원, 이것이 현장의 냉혹한 현실이다.
2025년 12월 24일 오전 9시, 서울외환시장에 긴장이 감돌았다. 전일 원달러 환율이 장중 1,484.7원까지 치솟으며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을 위협하던 터였다.
시장이 열리자마자 김재환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과 윤경수 한국은행 국제국장 명의의 공동 메시지가 일제히 보도되었다. "원화의 과도한 약세는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종합적인 정책 실행능력을 곧 확인하게 될 것이다." 국장급 공동 명의의 구두개입은 2024년 4월 이후 1년 8개월 만이다.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1,484.9원에 출발한 환율은 장 초반부터 급락해 33.8원 하락한 1,449.8원에 주간 거래를 마쳤다. 하락폭은 2022년 11월 이후 3년 1개월 만에 최대였다. 로이터 통신은 국민연금이 전략적 환헤지를 집행 중이라고 보도했고, 현지 딜러들은 "NPS의 대규모 헤지 물량이 달러/원 상단을 눌렀다"라고 평가했다.
블룸버그는 이날 상황을 "강력한 스무딩 작전(a forceful smoothing operation)"이라 표현하면서, 정부와 한국은행이 국민연금, 수출기업, 세제 패키지, 규제 완화 등 "개입 도구 상자를 더 깊이 파고 있다(digs deeper into intervention toolkit)"고 분석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총력전'의 내용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12월 18일 삼성·SK·현대차·LG·롯데·한화·HD현대 등 7대 그룹과 긴급 간담회를 가졌다. 기획재정부는 수출 기업들의 환전·해외투자 현황을 점검하고, 달러를 환전하지 않는 기업들에 대해 대출 불이익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금융감독원은 증권사의 해외 주식 레버리지 투자 권유에 제동을 걸었다. 공식적으로는 '자발적 협조'라지만, 정부의 압박 아래 기업들이 자유롭게 거부할 수 있는 환경이었는지 의문이다.
기획재정부는 같은 날 서학개미(해외주식 개인투자자)를 겨냥한 세제 인센티브를 발표했다. 핵심은 '국내시장 복귀계좌(RIA·Reshoring Investment Account)' 제도다. 2025년 12월 23일까지 보유한 해외주식을 1년 내 매도하고 원화로 환전해 국내주식에 재투자하면 양도세를 감면한다. 1인당 최대 5,000만 원까지, 1분기 내 재투자 시 100% 감면(실질적 비과세), 2분기 80%, 하반기 50% 등 차등 적용된다.
개인투자자용 선도환(Forward) 상품 출시를 지원하고, 환헤지 시 추가로 약 5%(한도 500만 원) 소득공제를 주는 방안도 포함됐다. 해외자회사 수입배당금 익금불산입률을 95%에서 100%로 상향해 이중과세를 완전히 조정하겠다는 것이다. 정책 의도는 명확하다. 기재부는 올해 3분기 말 개인투자자 해외주식 보유잔액 1,611억 달러 중 상당 부분이 국내투자로 전환되거나 환헤지가 이뤄지면 외화 공급 확대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자본은 수익률을 따라 움직이지 한시적 세제 혜택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1년 한시, 5,000만 원 한도라 규모도 제한적이다. 올해 국내 주식시장이 괄목할 만한 수익률을 기록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실물경제의 뒷받침 없이 유동성 장세에 불과하다면 서학개미들이 국내로 자금을 가져올 이유는 없다. 시사저널은 "이 같은 세제 유인이 환율 안정이라는 정책 목표에 얼마나 실질적인 효과를 낼 수 있을지를 두고는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테슬라, 엔비디아의 강세장에서 코스피로 갈아타라는 제안은 시장 논리에 역행한다.
더 심각한 문제가 드러났다. 국민일보 보도에 따르면, 이날 정부의 보도자료가 공식 발표 30분 전인 오전 9시 32분경 텔레그램 메신저를 통해 유출됐다. 정책 내용을 미리 접한 투자자라면 달러를 원화로 바꾸는 등 손실을 회피하거나 이익을 취할 수 있었다. 정보 관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정부가 어떻게 환율 안정을 달성할 수 있겠는가.
정부가 총력을 기울이는 이유는 명확하다. 12월 30일 연말 종가는 기업과 국가의 한 해 성적표를 매기는 기준점이 된다. 기업의 외화부채 환산 기준이 되어, 환율이 높으면 갚아야 할 돈의 원화 가치가 커져 장부상 적자가 발생하고 부채비율 상승, 신용등급 하락, 대출 금리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은행의 BIS 자기 자본비율 산정에도 직접 영향을 미친다. 국가 외채의 원화 환산액과 GDP 대비 채무비율도 결정된다. 2025년 원달러 평균 환율이 이미 1,420원대를 넘어서며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연평균을 상회한 상황에서, 연말 종가가 1,500원을 넘기면 국가 재정지표가 급격히 악화된다.
환율은 그 나라 경제의 성적표이자 국격의 척도다. 그러나 성적표 숫자를 고친다고 실력이 나아지지 않는다. 종가 관리에 매몰된 당국의 집착은 오히려 원화의 신뢰를 갉아먹는 독(毒)이 될 수 있다.
12월 24일 환율 급락의 진짜 주역은 누구일까.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의 외환시장은 거래소가 아니라 은행·딜러 간 장외시장(OTC)으로 운영되어, 개별 거래 상세는 당국과 일부 기관만 볼 수 있다.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가 분기·연간 기준으로 부문별 순매수·순매도를 공개하지만, 특정일 세부 자료는 비공개다.
국민연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전략적 환헤지를 집행했다는 보도는 있으나, 구체적인 규모와 시점은 '관계자 인용' 수준으로만 전해진다. 외환당국의 실개입 시점과 금액도 실시간 공개되지 않는다. 정부가 '보이지 않는 손'이 되어 시장을 조율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주먹'으로 시장을 밀어붙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정부의 이번 조치가 야기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위험이 있다. 미국 재무부의 '환율조작국' 지정 가능성이다. 미국은 2015년 제정된 무역촉진법(TFTA)에 따라 세 가지 기준으로 주요 교역국을 평가한다.
150억 달러 이상의 대미 무역 흑자, GDP의 3% 이상에 해당하는 경상수지 흑자, 12개월 중 최소 8개월간 달러를 순매수하고 그 금액이 GDP의 2% 이상인 경우다. 세 가지를 모두 충족하면 심층분석 대상국이 되고, 그 결과에 따라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수 있다.
한국은 2024년 11월 7년 만에 환율 관찰대상국으로 재지정되었다. 미국 재무부에 따르면 2024년 6월 말 기준 한국의 연간 경상수지 흑자가 GDP의 약 3.7%, 대미 무역 흑자는 약 500억 달러로 두 가지 기준을 충족한 상태다. 세 번째 기준인 외환시장 개입은 최근 몇 년간 순매수가 아니라 오히려 순매도(원화 방어)에 가까워, 현재로선 충족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 다수 분석이다.
그러나 2025년 10월 1일 한미 재무당국의 환율 합의는 새로운 국면을 열었다. 이 합의에서 양국은 "부당한 경쟁우위를 목적으로 한 환율 조작을 금지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했고, 한국은 현재 분기별로 공개하는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대외 비공개를 전제로 미국 재무부에 월 단위로 제공하기로 했다. 일본, 스위스에 이어 세 번째 합의국이다. 정부는 이 합의로 환율조작국 지정 리스크가 낮아졌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동전의 양면이 있다. 합의문에는 "개입은 환율의 방향과 관계없이 대칭적이어야 한다"라고 명시되었다. 통화 가치 절하든 절상이든 어느 한 방향에만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또한 "과도한 변동성"이라는 기준이 모호해 미국이 자의적으로 해석할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환율조작국 지정 위험은 다소 완화되었으나, 역설적으로 정부의 환율 방어 수단은 더욱 제약받게 되었다.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가 본격화될 경우 환율 변동성이 커질 때 대응 여력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미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불이익을 받고, 관세 인상, IMF 추가 감시 요청 등 심각한 제재를 받을 수 있다.
정부가 환율 방어에 동원한 핵심 카드는 국민연금이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은 12월 15일 국민연금과의 650억 달러 규모 통화스왑을 2026년 말까지 연장하고, 전략적 환헤지 비율을 해외투자 자산의 최대 10%까지 허용했다.
2022년 100억 달러로 시작한 스왑 한도가 3년 만에 6.5배로 확대된 것이다. 12월 18일에는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를 구성원으로 한 환헤지 TF까지 가동되었다. 이것은 마치 급한 돈을 약속어음으로 메우는 것과 다르지 않다. 원금을 갚지 못해 계속 어음을 돌려 막는 악순환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국제사회의 시선이다. 미국 재무부는 2025년 6월 환율 보고서에서 한국을 환율관찰대상국으로 지정하면서, 국민연금의 외환스왑을 원화 가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으로 명시적으로 지목했다. 외환당국이 국민연금과 650억 달러 규모의 외환스왑 계약을 맺고 있는 것을 '인위적 개입'의 일종으로 본 것이다.
정부는 이 구조가 국민연금의 환변동 리스크를 줄이고 장기 수익률 안정에 기여한다고 설명한다. 일리가 있다. 환헤지는 환율 급변 시 연금 자산의 변동성을 완충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책 목적의 과도한 헤지는 장기 수익률을 저해할 위험이 있다.
문제는 구조적 비대칭성이다. 국민연금이 해외투자를 위해 달러가 필요할 때, 정상적이라면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매입해야 하고 이는 환율 상승 압력으로 작용한다. 스왑 구조에서는 한국은행 외환보유액에서 달러를 빌려오므로 그 압력이 억제된다. 반대로 해외투자를 청산할 때, 정상적이라면 회수한 달러가 시장에 공급되어 환율 하락 압력으로 작용해야 한다.
그러나 스왑 구조에서는 달러를 시장에 공급하지 않고 한국은행에 상환한다. 결국 '환율 안정'이 아니라 '환율 상승만 억제'하는 일방향 밸브에 가깝다.
이론적으로, 650억 달러 전액을 환율 1,470원에 빌려 1,350원에 상환한다고 가정하면 약 7.8조 원의 환차손이 발생한다. 환율이 고점일 때 헤지를 단행하면, 지금처럼 원화 약세가 구조적일 때는 국민연금의 글로벌 자산 가치 상승분을 정부가 환율 방어용으로 활용하는 결과가 된다. 이 손실은 국민연금 가입자, 특히 아직 연금을 받지 못하는 청년 세대가 부담하게 된다.
국민연금법 제1조는 명확하다. "국민의 노령, 장애 또는 사망에 대하여 연금급여를 실시함으로써 국민의 생활안정과 복지증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환율 방어는 국민연금의 법적 목표가 아니다.
12월 23~24일 외환시장에서 반복된 바늘형 변동성(1,477~1,481원 구간)은 인위적 방어의 흔적을 강하게 남겼다. 시장은 이미 알고 있다. 자연스러운 수급이 아니라 누군가 억지로 가격을 붙잡고 있다는 사실을. 외환당국만의 개입이 아니라 국민연금, 공공기관, 정책금융을 동원한 사실상의 국가 총동원 방어라는 해석이 타당하다.
문제는 이 방식이 효과보다 비용이 훨씬 크다는 점이다. 환율은 방향을 가진다. 그 방향은 글로벌 달러 강세, 고금리 장기화, 한국 경제의 구조적 부담이라는 현실에서 만들어진다. 이를 정책 의지로 거슬러 보겠다는 발상 자체가 무모하다. 환율방어는 속도를 늦출 수는 있어도 추세를 거꾸로 돌릴 수는 없다.
경제학 교과서와 역사는 이미 답을 알려주고 있다. 고정·준고정 환율 방어는 외환보유액을 소진시키고 투기 공격을 유도하며 결국 더 큰 평가절하로 끝난다. 1997년 태국, 2008년 아르헨티나, 그 이전과 이후의 수많은 사례가 같은 결말을 보여준다. 방어는 일시적이고, 비용은 누적되며, 붕괴는 더 급격하다. 이건 이념이 아니라 경험적 사실이다.
더 심각한 것은 개입의 '주체'다. 외환보유액은 무한하지 않고, 연기금은 계속 소모될 수 없다는 사실을 투기 세력은 누구보다 잘 안다. 개입이 반복될수록 나타나는 현상은 하나다. 방어 흔적 노출, 공격 강도 증폭, 변동성 확대. 이건 방어가 아니라 신뢰를 깎아 먹는 신호다.
12월 24일의 개입으로 환율은 일단 1,450원대에서 숨을 고르고 있다. 그러나 이 효과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구조적 요인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원화는 6월 말 이후 7% 넘게 약세를 보이며 아시아 최약세 통화 중 하나가 되었다.
한국은행도 "지속적인 원화 약세가 물가를 목표치 이상으로 밀어 올릴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한미 금리차(한국 2.50% vs 미국 4.25~4.50%), 경상수지와 재정수지의 동시 악화, 해외투자 선호 구조, 인구 감소와 성장 둔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최근 환율 상승(원화가치 하락)은 3분의 2 정도가 수급 요인"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정부가 올해 약 14조 원의 민생지원금을 풀었고, 내년 728조 원의 확대 재정 예산안을 편성했다. 시장은 인플레이션 가속과 경제 악화를 예측한다. 삼성, 현대, 한화 등 대기업들이 대미투자를 약속하면서 수백억 달러씩 달러 수요가 추가로 생겼다. 원화가 지속적으로 약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외환당국이 반복적으로 "강한 의지"를 천명해도, 실물과 재정, 금융 구조가 개선되지 않으면 시장은 이를 "시간 벌기"로 간주하고 다시 고환율에 베팅할 것이다. 11~12월 여러 차례 개입에도 환율이 연고점 근처까지 재상승한 전례가 이를 증명한다.
환율 안정의 근본 해법은 단기 개입이 아니라 구조적 펀더멘털 강화에 있다. 자유민주주의 정부의 역할은 시장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신뢰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토양을 만드는 것이다.
한미 금리차 정상화가 급선무다. 한국 기준금리(2.50%)와 미국 연방기금금리(4.25~4.50%) 사이의 격차가 지속되는 한 자본 유출 압력은 계속된다. 물가와 성장을 감안한 금리 정상화 로드맵이 필요하다.
재정 건전성 회복도 빼놓을 수 없다. 구조적 적자를 줄이기 위한 세입 확충과 지출 구조조정, 연금·의료·지방재정 개혁을 통해 한국 국채와 원화에 대한 장기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법적 구속력 있는 재정준칙을 도입해 포퓰리즘 지출을 제한해야 한다.
WGBI(세계국채지수) 편입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 2024년 10월 한국 국채의 WGBI 편입이 확정되었고, 2026년 4월부터 11월까지 단계적으로 편입될 예정이다. FTSE 러셀에 따르면 한국의 편입 비중은 약 2.22%로 26개국 중 9위 규모다. 이 지수를 추종하는 자금 규모가 2.5조~3조 달러에 달하므로, 560억~670억 달러(약 75조~90조 원)의 안정적 외국인 자금이 유입될 전망이다.
KDI(한국개발연구원)는 이 자금이 "투자자의 자의적 판단이 아닌 지수 구성 비중에 따라 수동적으로 운용되는 자금"이므로 "유출입 변동성이 낮고 예측 가능성이 높다"라고 평가했다. 다만 2025년 11월에서 2026년 4월로 편입 시점이 6개월 연기된 만큼, 단기적 환율 방어 효과는 제한적이다.
국내 투자환경 개선이 절실하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2017년 5월부터 8년 넘게 한국 주식의 장기수익률이 미국을 밑돌고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지 않으면 자본 이탈은 계속된다. 기업지배구조 개선, 주주환원 정책 강화, 규제 합리화가 필요하다.
법치 회복과 정책 불확실성 해소가 핵심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에서 빠져나가는 이유 중 하나는 정책 불확실성과 법치에 대한 신뢰 부족이다. 사법부 독립 보장, 재산권 보호, 예측 가능한 정책 환경이 갖춰져야 자본 이탈을 막을 수 있다.
한미 통화스왑 확보가 중요하다. 2008년 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19 당시 한미 통화스왑은 원화 가치 급락을 막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2008년 체결 발표 당일 환율이 177원(12.4%) 급락할 정도로 효과는 탁월했다. 통화스왑은 실제로 발동하지 않아도 그 존재만으로 시장 불안을 진정시킨다. 이를 확보하려면 확고한 한미동맹이 전제되어야 한다.
금융주권 확보도 간과할 수 없다. 특정 국가의 과도한 국채 보유는 유사시 금융 레버리지로 활용될 수 있다. 금융 안보 차원에서 국채 보유국의 다변화와 투명한 공개가 필요하다.
12월 24일의 환율 급락은 정부의 고강도 구두개입, 대기업 협조, 국민연금 환헤지가 결합된 일시적 성과다. 26일 현재 환율이 1,450원대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것이 근본적 안정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연말 종가 관리를 위한 정부의 고충은 이해한다. 그러나 이는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며, 환율조작국 지정이라는 새로운 위험까지 초래할 수 있다.
무엇보다 국민연금을 환율 방어에 동원하는 관행이 굳어지면, 청년 세대의 노후 자산을 깎아 현재의 통계를 꾸미는 결과가 된다. 1997년 외환위기 때도 정부는 "문제없다"라고 했다. 막상 위기가 닥치자 외환보유액은 순식간에 바닥났고 나라는 IMF 관리체제로 넘어갔다.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환율은 적이 아니다. 현실을 알려주는 경고음이다. 그 경고를 돈으로 덮는 순간, 문제는 환율이 아니라 정책 그 자체가 된다. 인위적 환율 억제는 숫자를 잠시 예쁘게 만들 수는 있지만, 그 대가는 외환 체력 약화, 연기금 수익성 훼손, 시장 신뢰 붕괴로 반드시 돌아온다.
물론 미국의 고금리와 강달러, 글로벌 위험회피 심리 등 대외 요인도 환율에 영향을 준다. 그러나 달러 약세 국면에서도 원화만 유독 힘을 못 쓰는 현상은, 국내 정책 불확실성과 법치 리스크가 결코 작지 않음을 방증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환상이 아니라 진실이다. 쇼가 아니라 실질이다. 분노가 아니라 전략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원칙을 지키는 정부만이 국민의 자산과 국가의 미래를 지킬 수 있다. 역사는 이미 말해줬다. 방어선은 돈으로 세울 수 있지만, 지속 가능성은 법과 신뢰 위에만 세워진다. 지금 정부가 방어해야 할 것은 환율이 아니라 정책의 정당성과 국가 경제 운영의 원칙이다.
칼럼니스트 박대석
Investing.com, USD/KRW 실시간 환율 (2025년 12월 26일)
ICE International Currency Exchange, San Francisco International Airport (SFO) Exchange Rates (2025년 12월 24일)
기획재정부·한국은행, 외환당국 공동 메시지 (2025년 12월 24일)
기획재정부, "국내투자·외환안정 세제지원 방안" 보도자료 (2025년 12월 24일)
기획재정부·미국 재무부, 한미 환율 정책 합의문 (2025년 10월 1일)
국민일보, "환율대책, 정부 발표 전에 이미 퍼졌다… '손실 회피 악용 우려'" (2025년 12월 25일)
시사저널, "[이주의 키워드] 돌아와요, 서학개미" (2025년 12월 26일)
Bloomberg, "Korea Says FX Market Will Soon See Government's Determination" (2025년 12월 24일)
Bloomberg, "South Korea Acts to Stabilize Forex Market as Won Weakens" (2025년 12월 19일)
Bloomberg, "Why Is South Korea Worried About the Weak Won?" (2025년 12월 22일)
Reuters, NPS 전략적 환헤지 관련 보도 (2025년 12월 24일)
미국 재무부, 주요 교역 대상국의 거시경제 및 환율 정책 반기 보고서 (2024년 11월, 2025년 6월)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외환보유고 및 통화금융통계 (2025년 12월)
경향신문, "한·미 당국 '환율 조작 금지' 합의…'환율 방어' 어려워질 수도" (2025년 10월 1일)
서울경제, "'환율 조작국' 지정 우려 덜었지만… 시장 개입 매달 美에 보고해야" (2025년 10월 1일)
Korea Times, "US keeps South Korea on its monitoring list for FX policy" (2025년 6월)
Korea Times, "FX authorities, NPS agree to extend $65 bln currency swap deal" (2025년 12월 15일)
FTSE Russell, 채권국가분류 반기 리뷰 (2025년 10월)
KDI(한국개발연구원), "결실 맺은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 (2024년)
국제금융센터(KCIF), "한국의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 기대효과 점검" (2024년 10월)
Trading Economics, 한국 원화 환율 데이터 (2025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