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단지] 기술은 14년,
몰락한 도시를 상기하라

반도체는 정치로 짓는 것이 아니다

by 박대석

[반도체단지/진단] 기술은 14년, 몰락한 도시를 상기하라

호남으로 반도체단지 이전 논쟁의 진단-반도체는 정치로 짓는 것이 아니다


▌핵심 요약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호남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과학과 경제를 무시한 정치적 도박이다. 반도체 개별 기술 수명은 14년이지만, 클러스터 생태계는 리노베이션을 통해 50년 이상 유지된다.


문제는 호남에 이 생태계—R&D 인프라, 고급 인력, 협력업체망—가 부재하다는 점이다. 태양광 전력의 주파수 변동률은 화력의 25배로 반도체 팹 허용치를 초과하고, 새만금 매립지는 나노 공정에 필수적인 지반 안정성이 부족하다. 파주 LCD 단지는 17년 만에 폐쇄되었고, 호남 클러스터는 조성에 15년이 걸려 2041년 가동 시점에 산업 사양화 위험에 직면한다.


반도체는 Chip4 동맹의 안보 자산이며, 착공 중인 계획을 흔드는 것은 글로벌 공급망 퇴출을 자초하는 것이다. 호남의 진정한 미래는 반도체가 아니라, 그린 수소(30조), AI 헬스케어(50조), K-푸드 테크(10조), 우주 항공(20조), RE100 첨단 소재(40조) 등 호남만의 자산을 활용한 5대 전략 산업에 있다. 반도체는 과학으로 짓는 것이지, 정치로 짓는 것이 아니다.


▌'내란 종식이 전북 이전'이라는 황당한 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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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새해 벽두부터 한국 반도체 산업의 운명을 가를 논쟁이 격화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1월 1일 신년사에서 "에너지가 풍부한 남부의 반도체 벨트"를 언급했고, 안호영 민주당 의원은 "윤석열 내란을 끝내는 길은 용인 반도체의 전북 이전"이라 주장했다.


민주당 전북도당은 '용인 반도체 전북 이전 특별위원회'를 설치했고, 이병훈 호남발전특위 수석부위원장은 1월 6일 "반도체 클러스터의 호남 분산 배치는 국가 생존의 문제"라고 역설했다.


반면 현장은 정반대다. 이상일 용인시장은 "국가 핵심 전략사업에 대한 중앙정부 차원의 명확한 정리가 없어 지역 갈등이 커지고 있다"라고 토로했다. 민주당 용인 지역구 의원 4명(이언주, 이상식, 손명수, 부승찬)마저 "촌각을 다투는 반도체산업에서 불필요한 논란은 대한민국에 심대한 타격"이라며 즉각 중단을 촉구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반도체는 '정치'로 짓는 게 아니라 '과학'으로 짓는 것"이라는 반박문을 발표했다.


산업 정책에 '내란'이 등장하는 순간, 논의는 이미 정치적으로 오염된 것이다. 그러나 정치를 걷어내고 과학과 경제의 눈으로 보면, 호남 이전론은 한국 경제를 파국으로 몰아넣을 위험한 도박이다.


▌기술 수명 14년, 그러나 생태계 수명은 50년


기술 주기의 가속화는 기업 수명의 급격한 단축으로 직결된다. Innosight 분석에 따르면 S&P 500 기업의 평균 지수 체류 기간은 1965년 33년에서 2026년 14년으로 절반 이하로 줄었다. 한국무역협회 연구는 한국 기업 평균 수명을 2027년 12년으로 예측한다. 코스닥 IT·바이오 기업의 5년 생존율은 33.8%로 OECD 평균 45.4%보다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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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여기서 결정적인 구분이 필요하다. 개별 기술의 수명과 산업 클러스터의 수명은 다르다. DRAM, NAND 같은 개별 기술은 14년마다 교체될 수 있지만, 그 기술을 구현하는 클러스터는 지속적인 리노베이션을 통해 50년 이상 경쟁력을 유지한다. 대만 신주과학원은 1980년 설립 이후 46년간 기술 세대를 7번 이상 교체하면서도 세계 반도체의 심장으로 군림하고 있다.


호남 이전이 위험한 이유는 '반도체 산업이 곧 망해서'가 아니다. 기술 교체 주기를 따라잡을 수 있는 생태계—R&D 인프라, 고급 인력, 협력업체망—가 호남에는 부재하기 때문이다. 클러스터는 한번 형성되면 50년을 가지만, 잘못된 입지에 세우면 첫 기술 교체기에 도태된다.


▌기업 유치로 몰락한 도시들의 교훈


단일 산업에 의존한 도시의 운명은 냉혹하다. 디트로이트는 1950년대 자동차 빅 3 유치로 인구 185만 명의 번영을 누렸으나, 1970년대 오일쇼크와 일본차 경쟁으로 붕괴해 2013년 180억 달러 채무로 미국 역사상 최대 지자체 파산을 맞았다. 인구는 63만 명으로 66% 감소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울산은 10년간 순 유출 5만 명, 창원은 7만 명을 기록하며 지방소멸 위험 지역으로 전락했다. 가장 직접적인 교훈은 파주 LCD 단지다. 2005년 노무현 정부의 정치적 결정으로 조성되어 2015년까지 LCD 세계 1위를 차지했으나, 중국의 저가 공세에 밀려 누적손실 1.2조 원, 2022년 공장 폐쇄, 인근 인구 40% 감소라는 참담한 결과를 맞았다. 17년 만의 쇠퇴다.


여기서 LCD와 반도체의 결정적 차이를 짚어야 한다. LCD는 공정 장비만 사 오면 누구나 찍어낼 수 있는 '장치 산업'이었기에 중국의 추격이 빨랐다. 반면 반도체(특히 초미세 공정과 HBM)는'암묵지(Tacit Knowledge)의 집적'이 핵심이다. 설계도만으로는 복제할 수 없는 수십 년간 축적된 엔지니어의 노하우가 경쟁력의 원천이다.


호남 이전이 파주보다 더 위험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파주는 수도권 끝자락이라 인력 유지가 어느 정도 가능했지만, 호남은 '인재의 남하 한계선'을 훨씬 넘어선다. 인재가 떠난 반도체 단지는 LCD 단지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고철로 변할 것이다.


▌ 호남 이전이 부적절한 과학적 이유


첫째, 반도체는 공장이 아니라 생태계다. 서울대·KAIST·성균관대 등 핵심 인력 공급원, 200개 이상 협력업체의 실시간 부품 조달망, 5만 명의 반도체 인력이 하나의 유기체로 작동한다. ASML이 동탄에 사옥을 지은 것은 '1시간 내 대응'이 가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호남으로 이전하면 인력 30~50% 유출, 협력업체 95% 미추종으로 경쟁력이 50% 이상 하락한다.


둘째, 전력은 양이 아니라 질의 문제다. 나노 공정 장비는 전압과 주파수가 미세하게만 흔들려도 멈춘다. KEPCO 2025년 데이터에 따르면 태양광의 주파수 변동률은 2.5Hz로, 화력(0.1Hz)의 25배에 달한다. 반도체 팹 허용 오차는 0.2Hz다. 2018년 삼성전자 평택 공장은 30분간 정전으로 500억 원 이상의 웨이퍼를 폐기했다.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들쑥날쑥한 태양광으로는 반도체 팹을 가동할 수 없다.


셋째, 송전망 구축의 물리적 한계가 있다. 호남에 재생에너지가 남아도, 이를 대규모 공단으로 보낼 송전 선로(동해안신가평, 서해안 초고압 직류송전 등) 건설이 지역 이기주의와 규제로 막혀 있다. 호남에 공장을 지어도 안정적 전압 유지를 위한 기저전원(원전·LNG)이 부족하면 팹은 가동 불능이다. 송전망 구축에만 2~030년이 소요된다.


넷째, 새만금의 치명적 약점은 지반이다. 반도체 노광 장비는 나노 단위 작업을 하므로 미세 진동에 극도로 민감하다. 새만금은 갯벌 매립지라 지반이 무르다. TSMC 대만 팹도 지반 보강에 2조 원이 추가되었는데, 새만금은 그 5배 비용이 예상된다.


▌Chip4 동맹과 안보 자산으로서의 반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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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는 단순한 경제 논리를 넘어 'Chip4 동맹'이라는 안보 자산이다. 미국·일본·대만·한국이 구축한 이 동맹에서 한국의 가치는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라는 위치에서 나온다. 안호영 의원 등이 주장하는 '내란 종식을 위한 이전론'은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가치를 스스로 훼손하는 행위다.


미국 테일러(텍사스), 일본 구마모토의 글로벌 반도체 거점들은 모두 '속도전'에 사활을 걸고 있다. TSMC 애리조나 팹은 2024년 착공에서 2028년 가동까지 4년을 목표로 질주 중이다. 지금 이미 착공된 용인 계획을 흔드는 것은 대한민국 반도체 전체를 글로벌 공급망에서 퇴출시키겠다는 위험한 도박이다.


SK하이닉스는 용인 원삼면에서 제1기 팹 건설공사를 진행 중이며, 2025년 말 기준 공정률 77%를 달성했다. 삼성전자는 용인 이동·남사 국가산단에서 보상에 들어갔고 2026년 하반기 착공, 2030년 첫 팹 가동이 예정되어 있다. 이 상황에서 이전을 강요하면, 한국 투자 리스크는 급상승하고 Chip4 공급망에서 탈락하게 된다. 기회비용만 하루 70억 원이 발생한다.


▌호남이 반도체를 유치하면 수혜 전에 몰락한다


"용인은 그대로 두고 호남에 별도 클러스터를 조성하면 되지 않느냐"는 반론이 있다. 그러나 이 역시 파주의 교훈을 망각한 발상이다.


새로운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에는 부지 선정, 환경영향평가, 토지 보상, 인프라 구축(도로, 전력, 용수)에 최소 10년, 협력업체 유치와 인력 양성에 5년이 소요된다. 2026년에 결정하면 첫 수익은 빨라야 2041년이다.


문제는 그 시점의 산업 지형이다. 2030년대부터 뉴로모픽 컴퓨팅, 실리콘 포토닉스, 양자컴퓨팅 등 포스트-실리콘 기술로의 전환이 본격화된다. 2041년에 현재의 실리콘 기반 반도체 팹이 경쟁력을 유지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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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주민들은 15년간 기대에 부풀어 토지 보상을 받고, 부동산에 투자하고, 일자리를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팹 가동 시점에 산업이 사양화되어 있다면, 그들이 맞이하는 것은 파주 LCD의 재현—공실률 급증, 인구 유출, 지역경제 공동화—이다.


▌호남이 주인공이 되는 길: 5대 전략 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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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은 이것이다. 호남은 반도체를 '유치'해야 하는 곳이 아니라, 호남만이 할 수 있는 산업으로 대한민국을 '주도'할 수 있는 곳이다. 수도권의 반도체를 빼앗아 오는 것은 2등을 자처하는 것이고, 호남 고유의 자산으로 새로운 1등을 만드는 것이 진정한 지역 발전이다.


호남에는 수도권이 절대 따라올 수 없는 강점이 있다. 국내 최대의 재생에너지 생산량, 3,000km 해안선과 비옥한 평야, 나로 우주센터라는 유일무이한 인프라, 그리고 화순 백신 클러스터의 바이오 역량이다. 이 자산들을 기술 수명 14년의 굴레에 갇힌 반도체가 아니라, 인류의 본질적 수요에 기반한 100년 산업과 결합해야 한다.


첫째, 그린 수소 산업이다. 호남의 풍부한 재생에너지를 '수도권에 보내는 전기'가 아닌 '호남에서 직접 쓰는 저렴한 에너지'로 전환한다. 에너지 비용이 원가 경쟁력을 결정하는 시대에, 호남을 에너지 독립 지역으로 만들면 반도체보다 넓은 범위의 첨단 소재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찾아온다.


둘째, AI 디지털 헬스케어다. 화순 백신 클러스터와 광주 AI 데이터센터를 결합해 유전체 분석 기반 맞춤형 신약과 실버케어 로봇을 육성한다. 바이오·헬스케어는 인구 고령화에 따라 영속적 수요가 발생하는 산업이다. 반도체 팹 하나보다 수천 개의 바이오 스타트업이 고용의 질과 안정성 측면에서 유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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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K-푸드 테크다. 호남의 비옥한 평야와 식문화를 데이터 산업으로 격상시킨다. 반도체는 15년 뒤 사양화될 수 있지만, 인류의 먹거리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넷째, 우주 항공이다. 고흥 나로 우주센터를 중심으로 한 우주 산업 벨트는 호남만의 유일성이다. 반도체는 분산될 수 있지만, 우주 발사 기지는 입지 조건상 이전이 불가능하다. 호남을 대한민국 우주 영토의 관문으로 고착화해야 한다.


다섯째, RE100 특화 첨단 소재다. 탄소 국경세 대응이 시급한 알루미늄, 탄소섬유 공장과 글로벌 데이터센터를 유치한다. 구글과 같은 기업들이 원하는 것은 '반도체 공장 옆'이 아니라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곳'이다.

이 5대 전략은 "남이 하던 것을 뺏어오는 정치"가 아니라 "호남만이 할 수 있는 것을 키우는 과학"에 기반한다.


▌ 마치며, 과학의 승리, 정치의 패배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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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는 정치로 짓는 것이 아니라 과학으로 짓는 것이다. 기업이 어디에 투자할지는 시장이 결정해야 한다. 정치가 할 일은 기업의 결정을 뒤엎는 것이 아니라, 용인-평택-화성-이천을 고속으로 잇는 반도체 철도를 추진하여 생태계를 완성하는 것이다.


호남에는 반도체가 아닌 진정한 미래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광주는 AI 신약개발 클러스터로, 전주는 K-푸드 테크 센터로, 여수는 수소 생산·활용 통합 단지로, 고흥은 우주 항공 거점으로. 300조 원 규모의 별도 투자로 호남 자체의 산업경쟁력을 형성하고 인구를 회귀시키는 것이 진정한 지역균형발전이다.


unnamed (92).png notebooklm으로 글 전체 요약


기술 수명이 14년으로 단축되는 시대에, 디트로이트와 파주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정치인의 달콤한 약속보다 과학과 시장의 냉정한 판단이 국가의 운명을 결정한다. 이 논쟁에서 과학이 승리하고 정치가 패배해야만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이, 그리고 호남 주민들이 살 수 있다.


"정치가 시장의 지도를 그릴 때, 도시는 폐허가 된다."


칼럼니스트 박대석



핵심 참고자료


정책·현황

이재명 대통령 신년사 (2026.1.1), "남부 반도체 벨트" 구상 발표

민주당 전북도당, '용인 반도체 삼성전자 전북 이전 특별위원회' 설치 (2025.12)

이병훈 민주당 호남발전특위 수석부위원장 기자회견 (2026.1.6)

이상일 용인시장,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현장 간부회의 발언 (2026.1.6)

국토교통부, '용인 첨단시스템반도체 국가산단' 지정 승인 (2024.12.26)

기업 수명·클러스터

Innosight, "Corporate Longevity: S&P 500 Turbulence Ahead" (2021)

한국무역협회, 「한국 기업 생존율 및 평균 수명 분석」 (2024)

대만 신주과학원(HSIP), 1980년 설립 이후 46년간 클러스터 운영 사례

전력·인프라

한국전력공사(KEPCO), 「재생에너지 계통 연계 현황」 (2025)

삼성전자 평택 공장 정전 사고, 웨이퍼 폐기 손실 500억 원+ (2018)

투자 현황

삼성전자, 용인 이동·남사 국가산단 360조 원 투자 계획 (2047년까지)

SK하이닉스, 용인 원삼면 클러스터 600조 원 투자 계획 (2050년까지)

SK하이닉스 제1기 팹 공정률 77% (2025년 말 기준)

역사적 사례

디트로이트시 파산 신청, 채무 180억 달러 (2013.7)

LG디스플레이 파주 LCD 공장 폐쇄, 누적손실 1.2조 원 (2022)

울산·창원 인구 순 유출, 10년간 12만 명 (통계청, 2015-2024)

포스트-실리콘 기술

IEEE, "Neuromorphic Computing: The Next Frontier" (2024)

Nature Photonics, "Silicon Photonics Roadmap" (2023)

IBM·Google, 양자컴퓨팅 상용화 로드맵 (2030년대 목표)

호남 미래 산업

산업통상자원부, 「그린수소 산업 육성 전략」 (2025)

농림축산식품부, K-푸드 수출 10조 원 목표 (2026)

화순 백신·바이오 클러스터 마스터플랜 (전라남도, 2024)

고흥 나로우주센터 확장 계획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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