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화폐개혁에는 국민들이 관심이 많다. 왜냐하면 그동안 3번에 걸친 화폐개혁은 국민 재산 및 경제활동에 큰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법정 디지털 화폐(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이하 CBDC라 함)에 대해서는 많은 국민들이 또 하나의 가상화폐가 생기는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CBDC는 정부와 중앙은행이 악용하면 완벽한 디지털 공산주의, 디지털 사회주의, 디지털 빅브라더 세상이 될 수 있다. 국민경제 및 사생활에 전통적인 화폐개혁 보다 수백 배의 영향을 줄 수 있는 화폐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 4차 산업혁명시대에 디지털 화폐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고 대세다.
CBDC는 디지털, 데이터 시대에 현금 없는 세상을 만들어 발권비용과 관리비용이 들지 않고 불법자금거래 차단, 자금세탁 방지, 완벽한 세원 포착 등 많은 장점이 있다. 그러나 반대로 개인 및 기업의 사생활 및 경제활동을 정부가 훤히 들여다볼 수 있고, 자금 중개 등 금융권력의 정부 독점, 가상화폐 시장의 대폭 축소 등 더 많은 단점이 있다.
따라서 편리성, 효용성과 함께 예상되는 문제점들에 대하여 국민들에게 소상히 알리고 헌법을 고치는 이상으로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
CBDC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무형의 법정 디지털 화폐로서 국가의 화폐 단위를 그대로 사용한다. CBDC는 은행 계좌와 연동할 필요 없이 각 개인(법인도 가능) 간 전자지갑을 통하여 쉽고 빠르게 주고받는다.
CBDC 전자지갑은 사용자 입장에서 보면, 지금 사용하는 체크 카드를 국가(중앙은행)가 발행하고 관리하는 기능의 디지털 저장장치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 익명성의 딜레마
'딜레마 dilemma' 선택해야 하는 2개의 길, 어느 쪽도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 / 출처 dreamstime
CBDC의 가장 큰 문제는 사용자 (개인 및 법인) 화폐 거래내역 및 신원이 드러나지 않아야 하는 '익명성' 보장이 어렵다.
CBDC는 블록체인 기술 등 다양한 기술, 방식(분산 원장과 단일 원장)이 종합적으로 활용되지만 사용자는 중앙은행이 발행하고 관리하는 체크카드를 사용하는 것과 다름없다. 체크카드와 같이 CBDC의 잔액, 거래내역은 CBDC를 발행하고 관리하는 중앙은행(정부)이 24시간 365일 들여다볼 수 있다.
따라서 사용자 간의 수평적 익명성은 보장이 되지만 정부(중앙은행)와 사용자 사이, 즉 수직적 익명성 보장은 어렵다.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개인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 따라서 중국과 같은 공산, 사회주의가 아닌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고려하고 보완해야 할 사항이 아주 많다.
한국은행은 CBDC 발행하고 유통하는 실험에 성공했다고 1월 24일 밝혔다. 한국은행 금융결제국은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 주요 이슈별 글로벌 논의 현황' 보고서에서 익명성 보장에 대하여 " 개인정보보호 강화를 위해 무기명 선불카드와 유사한 오프라인 CBDC 발행, 영지식 증명(Zero Knowledge Proof) 등 최신 IT기술 활용 등의 방안이 모색되고 있으며, 디지털 ID 활용, 데이터 관리 주체 분리 등의 제도적 장치도 논의되고 있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CBDC 등 디지털 처리에는 반드시 흔적(이동 등 기록)이 남기 마련이기 때문에 사실상 수직적 익명성 보장은 원천적으로 어렵다.
또 수직적 익명성 보장이 완벽하게 되는 새로운 기술이 있다 하여도 문제가 된다. 수직적, 수평적 익명성이 완벽하게 보장이 되면 더더욱 법정화폐로 사용할 수 없다. 왜냐하면 CBDC는 '디지털 코드'이기 때문에 인터넷으로 자유롭게 불법 거래, 조세회피, 자금세탁 등이 이루어져도 이력 및 거래 추적이 어려워 통제할 방법이 없다.
예를 들면 북한이 익명성 보장이 되는 CBDC를 이용하면 경제제재, 핵 등 무기거래와 같은 검은돈 거래 등을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CBDC는 신용카드처럼 사용자 간의 수편적 익명성은 보장하나 중앙은행과 사용자 간의 수직적 익명성은 열어둘 수밖에 없다. 익명성의 딜레마다.
▲ 중국 CBDC 발행에 적극적인 이유와 권력자 음성자금 노출 딜레마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 주요 이슈별 글로벌 논의 동향 중에서 국가별 CBDC연구 및 도입 준비 추진현황 / 출처 한국은행
현재 CBDC를 정식으로 통용하는 나라는 바하마, 나이지리아, 동 카리브해 7국 연합 등이다. 하지만 이런 나라들은 온라인 지급 결제 능력이 부족해 대안으로 사용하는 성격이 강하다.
주요 추진 나라 중에서 중국이 가장 먼저 치고 나가고 있다. 중국 인민은행은 2020년부터 선전, 쑤저우 등 10여 개 도시에서 시민들로 하여금 ‘디지털 위안화’로 부르는 CBDC를 사용하게 하는 시범 운영을 하고 있다.
중국은 CBDC의 본연의 디지털 화폐 기능 이외에 인민의 완벽한 통제, 미국 달러패권에 대한 공격 수단, 천문학적인 부채 정리를 위한 해외 비공개 국가재원 마련, 시진핑의 공동부유를 뒷받침할 자금 마련 등의 보이지 않는 목적이 사실상 더 크다.
이를 위하여 2014년부터 디지털 화폐 연구에 착수하였고, 2017년 디지털 화폐 연구소를 설립하고, 지난해 연말부터 디지털 위안화를 결제와 유통 서비스를 추진했다.
그런데 권력자들의 음성자금 노출이라는 문제에 봉착했다. 그래서 11개 시범 지역에서 즉시 디지털 위안화를 일상에서 폭넓게 사용할 수 있음에도 전면 시행을 보류하며. 권력자들의 음성자금을 은닉, 해외 반출을 한 정황이 보도되었다.
미국 CNBC는 2019년 한 해 동안 중국에서 시가 500억 달러 (약 59조 4750억 원) 이상의 암호화폐가 중국 기반 디지털 지갑에서 해외 다른 나라로 옮겨졌다고 암호화폐 감시(포렌식) 전문업체인 체인 애널리시스 보고서를 인용해 전한 것처럼 중국은 일정기간 동안 음성자금의 정리기간을 가졌다.
필자가 2021.10.5. 한경에 게재한 칼럼, " [박대석 칼럼] 비트코인, 키프로스에서 CBDC까지…그리고 내일 중" 중국 CBDC 발행 이유 / 한경 기사 캡처
그 기간 동안은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거래를 사실상 묵인해왔다. 2021년 말 권력자들의 음성자금 세탁 등 정지작업이 끝난 것이다. 미국 달러 패권에 대항하기 위하여 디지털 위안화를 서둘러 전면 시행하고, 통제를 벗어난 자금이동을 막아야 하는 중국 정부로서는 비트코인 등 가상 화폐가 이제는 최대의 걸림돌이 된 것이다.
따라서 외형적으로는 당분간 비트코인 및 이더리움 등 가상 화폐는 중국을 포함하여 글로벌 내림세를 이어 갈 것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지나면 중국의 특성상 음성적인 거래는 서서히 늘어나 반등하는 추이를 보일 것이다. 왜냐하면, 비트코인은 검은 안전자산이기 때문이다.
▲ CBDC의 딜레마 각종 딜레마
은행 등 금융회사와의 딜레마, 금융권력의 정부 독점
CBDC는 기능과 구조상 중앙은행과 사용자 사이의 은행, 카드와 같은 결제회사와 자금중개회사, 투자를 판단하는 투자금융 회사 등의 기능이 대폭 줄어들거나 사실상 필요 없게 된다. 금융, 결제, 투자와 같은 경제활동 전반을 중앙은행과 정부가 독점적 권력으로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CBDC의 전면적인 시행은 금융구조가 완전하게 개편이 되면서 기존의 금융회사는 몰락하거나 단순한 보조 기능만 가지게 되는 딜레마에 빠진다. 따라서 금융 산업, 통화정책, 금융안정에 막대하게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하게 된다.
가상화폐와의 딜레마
또한 CBDC가 활성화하면 가상화폐 시장은 대폭 축소될 것이다. 예를 들어 디지털 달러가 발행된다면 안전자산처럼 디지털 달러 수요는 급증할 것이고, 메타버스 안에서도 자유롭고 안전한 결제수단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이 기술과 능력이 모자라 CBDC발행을 '검토'라는 이름으로 미적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CBDC에 일부 활용하는 블록체인은 실제 대단한 기술도 아니다. 지금과 같이 정부나 은행 등이 중앙에서 통제하는 중앙집중식 거래를 분산 방식으로 하여도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혁신적인 방식인 것뿐이다.
개인의 사생활 등 자유 침해 등 우려로 선진국은 CBDC에 신중
미국 등은 CBDC를 시작한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의 상황을 살피며 현재의 미국 달러 중심의 기축통화 등 화폐 헤게모니의 변화 예상과 사용자인 국민의 사생활 보호 등의 이유로 추이를 살피고 있는 것이다.
영국 등 선진국은 주민등록 자체가 없다. 즉 개인의 기본 정보를 정부가 모두 알아야 할 이유도 없고, 국가가 악용하는 부작용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서이다.
영국, 미국 등 민주주의 국가들은 피를 흘리며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쟁취했다. 따라서 국가는 항상 권력을 독점하면 국민에게 과도하게 힘을 행사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역사적으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행정 편의적으로 코로나 방역을 이유로 어디서나 개인의 정보를 마구잡이식으로 수집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지금도 일본은 투표를 할 때에 노인들도 자신의 이름을 직접 쓴다. 투표를 빨리, 쉽게 적은 비용으로 하려면 카톡, 유튜브 등 설문과 투표 기능을 이용하면 수억 원의 비용으로 즉시 결과를 정확하게 집계할 수 있다.
하지만 전자기기, 디지털 방식을 활용하는 투표는 조작이 쉬우면서도 발견하기 어렵고, 익명성 보장이 안되기 때문에 지금도 선진국은 손 투표, 손 개표를 하는 것이다. 선거에 전자기기를 사용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고 절차와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민주주의 모르고 하는 일이다.
한국에서 수출한 전자개표기 등을 사용한 나라의 상당수가 부정선거 문제로 대통령 등이 사임하거나 문제가 발생한 것은 예고된 사고였다. 권력을 얻는데 전자기기를 활용하는 부정선거 만큼 눈속임하기 쉬운 수단은 없기 때문이다.
개인정보 보호 중요, IMF 총재 의견
국제통화기금(IMF)의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총재가 9일 암호화폐 전문 매체 코인데스크에 따르면 “잘 설계된 중앙은행 발행 디지털화폐(CBDC)는 규제되지 않은 민간 암호화폐나 스테이블 코인보다 더 실용적”이라고 진단한 것처럼 CBDC와 가상화폐는 역의 함수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 IMF 총재는 CBDC 연구를 지원하면서 교훈을 얻었는데 첫 번째 교훈은 CBDC는 만능 기술이 아니어서 CBDC가 모든 국가에 동일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두 번째로는 CBDC 설계에는 개인정보보호와 경제적 안정성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이라고 말 한 것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 한국은행도 실험 진행 중이나 신중한 입장.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 주요 이슈별 글로벌 논의 동향 중, 시사점 결론 부분 / 출처 한국은행
한국은행은 향후 원화로 된 CBDC를 도입하게 될 경우에 대비해 먼저 기술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지 타진했다. 지난해 8월부터 제조·발행·유통에 이르는 1단계 실험을 진행해본 결과 모두 정상적으로 작동했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올해 상반기에는 결제에 초점을 맞춘 2단계 실험을 진행한다. CBDC로 NFT(대체 불가능 토큰)나 디지털 예술품을 구매해볼 예정이다. 국가 간에 CBDC를 송금할 수 있는지도 살펴볼 계획이다. 또 인터넷 연결이 안 되는 상황에서 근거리 무선통신(NFC) 기술로 송금이 가능한지도 점검한다.
그러면서 한은은 “현재로서는 CBDC를 발행할 계획은 없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머지않아 한국도 CBDC 발행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아마 그 시점은 미국의 CBDC 추진 일정과 같이 갈 것이다. 그동안 한국은행을 중심으로 충분하게 기술, 방식, 제도는 물론이고 한국은행법, 은행법 등 관련 입법 보완도 검토하고 추진해야 한다.
그리고 CBDC에 대하여 충분하게 국민과 이해관계 금융사들이 제대로 알고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개헌 수준의 완벽한 제도를 만들어도 운용하는 정부가 악용하면 막을 방법이 없다.
한국 역시 중국식 사회주의를 추종하는 세력이 집권하고, 중국과 같이 권력자들의 음성적인 자금 노출을 피할 수 있을 때는 CBDC발행을 급하게 서두를 수 있다. 권력자에게는 매력있는 통제 수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CBDC는 정부가 잘 짜인 제도대로 선하게 사용하도록 국민이 감시하고 통제하는 자유 민주주의 국가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이 지금처럼 진영에 따라 상식, 공정이 달라져서는 안 되며 그야말로 성숙한 민주시민으로 한 단계 고도화하여야 한다.
필자가 수년 동안 CBDC를 고민하며 내린 결론이다.
※ 용어설명
영지식 증명(零知識證明, zero-knowledge proof)이란 거래 상대방에게 어떠한 정보도 제공하지 않은 채, 자신이 해당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을 말한다. 영어로 ZKP(지케이 피)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