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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대석 Apr 20. 2022

[박대석칼럼] 이제 검찰도 선택할 수 있는 서비스 시대

검수완박의 본질, 권력이 아니라 서비스에 있다.

필자가 최근 본 ‘7월 22’ 일이라는 영화는 노르웨이에서 실제로 벌어진 충격적인 테러 사건을 다룬 영화다. 테러범은 시내 빌딩을 폭파하고 아름다운 섬에서 학생캠프에 참가한 학생 등 77명을 사살하고 수백 명의 부상자를 만들었다.


이 테러범을 수사하고 변호하며 재판하는 장면은 왜 선진국인지를 알게 해 준다. 살인마와 피해자를 대하는 수사관, 검사, 변호사, 판사들의 태도는 놀라울 정도로 차분하고 공정하다. 독방 무기징역으로 판결된 후, 마지막 면담에서 살인마가 내미는 악수를 조용히 거절하고 몇 마디하고 나오는 변호사의 모습이 참았던 최대의 분노 표출이었다.


이 영화와 비교하면 한국에서 벌어지는 검수완박이라는 소모적 논쟁이 부끄럽고, 화나게 한다. 국민의 혈세로 고액을 받는 국회의원, 검사들이 전혀 국민생활과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니 후진국, 아니 미개한 나라에 사는 바와 다를 것 없다.


이 글은 2가지 주제다. 먼저 검찰, 경찰의 권력을 서비스로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하고,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변호인 선임제도를 개선하여 실질적인 법 앞에 평등시대를 만드는 일이다.


이미지 출처 gettyimages
법률서비스 경쟁시대 만들어야


통치는 왕이나 독재자들이 하는 일이다. 정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주권을 가진 국민이 스스로 할 일을 선거를 통하여 대리권을 임시로 위임한 것이다. 따라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은 물론이고 임명된 검사, 판사, 장관 들 모두 주인인 국민을 위하여 정치, 행정서비스를 하여야 한다.


이제 행정, 법률(수사나 재판, 교정), 입법서비스도 경쟁을 해야 하고 정기적으로 평가(감사)를 받아야 한다. 국민이 서비스 좋고 경쟁력 높은 은행을 선택하듯이 법률서비스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검찰과 경찰의 수사나 기소는 물론이고 변호사의 조력, 판사의 재판 모두 법률서비스 영역이다. 통상 서비스(service, 용역)는 물질적 재화 이외의 생산이나 소비에 관련한 모든 경제활동을 일컫는다. 복무(服務)라는 용어도 통용한다.  교사의 수업, 이발사의 이발, 일용직 근로자들의 일 따위가 용역에 속한다.


대개 용역은 개인이 남을 위하여 일하는 행위를 뜻 하지만 정부가 무엇인가를 생산하거나 혹은 일상생활을 위한 인간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하는 일련의 행동을 포함한다.  따라서 수사와 재판 등 법률서비스와 교정 서비스는 모두 정부의 행정서비스에 포함된다,


노골적으로 범죄자 수사를 방해하려는 검수완박 / 이미지 출처 ytn 동영상 뉴스 캡처 2022.04.20

검수완박을 더불어민주당이 반민주, 반공화를 넘어 입법 독재, 입법 쿠데타 수준으로 밀어붙이는 이유는 두 가지인데 연관되어있다. 


하나는 정권교체에 따라 바뀌는 권력자들이 그동안 맘껏 저지른 비리와 부정선거 수사를 방해 또는 원천 봉쇄하는 데 있다. 두 번째는 정권교체 후 검찰의 공세적 수사로 지난 권력자들이 포토라인에 서게 되어 다가오는 6월 1일 지자체 선거를 망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얼굴에 철판을 깔고 무리인 줄 알면서 문통 임기 중에 급하게 마무리하려 한다.


그런데 검수완박의 논쟁을 보노라면 공격하는 민주당과 방어하는 검찰이 인정하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검찰이 그동안 권력과 유착하여 편파적인 수사로 공정하지 못한 점, 두 번째는 검찰의 무소불위의 권력행사로 국민의 인권 등에 다소 피해를 주어왔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를 근본적으로 고치지 않는 이상 수사와 기소권이 분리되거나 어정쩡하게 절충해도 검경의 문제는 계속 이어진다.


권력을 행사한다는 자세와 서비스를 한다는 태도는 완전히 다르다. 권력을 행사하는 자세는 상대가 피의자, 피고인, 참고인, 일반 국민이던 상관없이 위압적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검찰이나 경찰이 상대하는 국민은 항상 을(乙)의 위치이기 때문에 갑(甲)인 검·경을 서비스 좋고 경쟁력 높은 은행처럼 마음대로 바꾸거나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답이 있다.


권력이 오래가면 반드시 부패한 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검찰, 경찰, 법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 막강한 힘(권력)을 가진 기관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국민을 위하는 서비스 정신은 거의 없다.  오히려 선민의식은 기본이고 국민 위에 군림하며 70여 년간 권력을 행사했다. 


권력 변경에 따라 수장들만 일부 바뀔 뿐이지 주어진 권력은 독점적이고 지속적이었다. 이 구조를 깨고 바꾸지 않는 이상 검수완박 시비는 앞으로도 계속된다. 검수완박이 경수완박으로 바뀌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예를 들면 은행은 실적으로 시장에서 평가를 받는다. 따라서 은행은 스스로 알아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하여 서비스 질을 끊임없이 개선할 수밖에 없다. 선관위 등을 포함하여 검찰과 경찰도 평가와 경쟁 구도 패러다임으로 바꿔야 한다. 국민과 전문기관(감사원 등)에 정기적으로 평가를 받아 승진, 급여 등 처우를 달리하도록 경쟁시켜야 한다.


우선 치안 업무를 제외하고 '수사와 기소'를 하는 검찰과 경찰을 복수로 두어야 한다. A검찰, B검찰과 Y경찰, Z경찰로 나누어 운영하여 고소, 고발인 등이 검찰이나 경찰을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법원이나 교정시설을 포함하여 선관위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의 351개 공기업은 매년 경영평가를 받는다. 아직도 개선해야 할 문제는 많지만 이 때문에 대국민 서비스 질은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제 행정서비스 중 순차적으로 복수로 운영이 가능한 곳부터 개선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성과 지표( Performance Indicator, 또는 핵심 성과지표 Key Performance Indicator , KPI) 설정과 공정한 평가와 더불어 합당한 보상이다.


시대 흐름에 맞추어 국정과제 우선순위를 따져 과학적이고 올바른 성과지표를 설정하고 전문가와 국민이 참여하여 공정하게 평가를 매기고 합당한 보상과 불이익을 주면 지금처럼 검수완박 같은 소모적 논쟁은 최소한 사라지게 할 수 있다.


예산이 더 들어가는 일도 아니고 인원이 증원될 일도 없다. 권력기관들 스스로 내려놓고 개선하려는 의지와 대통령과 국회의 결단만 필요한 일이다.


이미지 출처 gettyimages
법 앞의 평등 실현할 수 있다.


법 앞의 평등을 실질적으로 실현하고, 유전무죄 무전유죄와 전관예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형사사건 수사와 재판에서 빈부의 차이 없이 공평하게 변호사의 조력을 받도록 해야 한다. 같은 죄를 짓고도 능력 있는 변호사나 호화 변호사 군단을 꾸려 대처하면 죄가 없어지거나 적어진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변호사를 살 돈이 없어 국선 변호사의 도움을 받으면 같은 죄도 중벌을 받는 다면 사법제도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 또한 윤석열 정부가 개선할 수 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  법률소비자연대의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80%가량이 유전무죄, 무전유죄에 동의한다고 했다. 대한민국 사회의 사법부와 검찰에 대한 불신과 연결돼 있다. 이런 현상은 자본주의 사회라면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아예 없어지긴 어렵다. 한 예로 영어에도 ‘No penny, no pardon(돈 없으면 용서도 없다)’이라는 표현이 있다. 영화 ‘차이나타운’의 시작과 끝을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사회인 한국에서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과정은 변호사에 달려있다. 능력이 있는 이른바 비싼 변호사, 전관예우 변호사, 판사와 인연이 있는 변호사를 선임하느냐 아니면 돈이 없어 나라에서 지정한 국선 변호사를 선임할 수밖에 없느냐의 차이이다. 이에 따라 같은 죄라 할지라도 변호 과정에 따라 재판의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전직 대통령, 대기업 총수, 정치인을 비롯한 유명 인사들의 검찰 조사와 재판 과정에 우리는 이름 있는 변호사 군단들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그에 걸맞은 재판 결과 등을 그러려니 하고 보아 왔다. 과연 우리는 정말 법 앞에 평등한 것인가?


법 앞에 평등은 무엇인가? 중세적 의미의 신(神) 앞의 평등이념이 근대로 넘어오면서 그대로 법 앞의 평등이 됐다. 자연법사상에 준거한 자연권적 불가침의 평등이념으로 선언된 것이다. 


그러나 현대적 의미의 평등사상은 배분적 정의 이념에 근거해 형식적이 아닌 '실질적 평등'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즉 같은 죄를 지면 어떤 변호사를 선임하느냐와 관계없이 같은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국내외 모두 그렇지 않다.


법 앞 평등을 실현할 방법은 없는가? 형사사건에 대하여 국민 누구나 국선변호인만을 선임하게 하면 된다. 변호사 자격은 국가의 공정한 절차를 거쳐 부여한다. 변호사도 사람이니 개인 간의 능력 차이가 있을 수는 있어도 일반 변호사인 사선, 국선 변호사의 능력은 거의 대동소이하다.


경찰이나 검찰 등 수사기관부터 재판에 이르기까지 국민은 누구나 국선 변호사만을 선임하여 조사 및 재판을 받게 한다. 물론 피의자들의 적정한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는 정보가 투명하게 잘 공개돼있다. 다만 대상이 되는 피의사실에 대한 경중을 따져 선임할 수 있는 변호사의 수를 정하도록 하면 된다. 사건이 크면 많이 선임할 수 있고, 작으면 1명만 선임하면 되는 것이다.


현재 일반 형사사건 피해자의 변호 수임료 시세는 건당 300만~700만 원이라고 하지만 실제 수천만 원, 수억 원이 비일 비재다. 국선 변호사의 수임료는 건당 약 평균 30~40만 원(헌재 75만 원)으로 연간 비용이 585억 원 수준이고 국선변호인 연간 선임 건 수는 약 12만 건 수준이다.


연간 국선변호인 예산이 재벌 총수 사건 몇 건에 해당하는 수임료 정도이다. 이를 대폭 상향 조정해서 현실화해야 한다. 그래서 국민 누구나 형사사건에 대하여 빈부, 신분 등에 차별 없이 국선 변호사만의 조력을 받게 해야 한다.


그리고 형사피의자가 재판 결과에 따라 형사처벌이 확정되면 그에 상응한 국선 변호사 비용을 적정하게 개인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시기를 조정하여 납부토록 해야 한다. 다만 지금과 같이 재판을 진행하는 법원에서 국선변호인을 선임하여 독립성을 침해받을 수 있는 제도는 개선돼야 할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이러한 법 앞에 평등 제안을 이제 업계 이익을 떠나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제 판이 커진 경제문제 등을 다루는 민사사건에서 더 큰 능력을 발휘하고 수익을 올리면 된다. 복잡 다변한 현대에 변호사들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곳은 많다.


이 제도는 법 앞의 평등시대를 만드는 위대한 일이고,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사라지게 만들며 전관예우를 뿌리째 없애는 일이다. 이 또한 국선변호인 예산만 증액하면 되는 일이다.


윤석열 당선인은 법조인이면서 유일한 검사, 검찰총장 출신이다. 누구보다 검찰과 경찰, 교정행정을 잘 아는 전문가다. 이제 검찰과 경찰이 권력을 휘두르던 시대에서 서비스하는 시대로, 실질적이 법 앞에 평등시대를 만드는 일은 윤석열 대통령의 시대적 민심의 소명이다. 한국이 선진적으로 최초로 하는 일이다.


소속 의원을 위장 탈당시키는 등 민주주의 파괴를 서슴지 않으며 추진하는 검수완박이다. 위헌이고, 입법 독재며 입법 쿠데타 같은 소모적 만행에 나라가 흔들릴 때가 아니다. 그런다고 저지른 많은 죄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감춰지지도 않는다. 검찰이든 경찰이든 특검이든 간에 아마 더욱 샅샅이 죄상이 밝혀져 엄하게 벌해질 것이다. 정신 차려야 한다.


칼럼니스트 박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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