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익(左翼)은 일반적으로 경제적 평등을 위한 정부의 개입을 주장하는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로 우익에 대립하는 개념이다.
토머스 홉스와 존 로크는 자연 상태에서 야만인처럼 살지만, 인간답게 살기 위하여 사회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장 자크 루소는 인간은 자연 상태에서는 자유로웠지만, 사회를 만들면서 어디서든지 쇠사슬에 묶여있게 된다며 문명을 거부하고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상반된 주장을 하였다.
수단 반군인 정의 평등 운동(JEM) 전사들이 2004년 9월 7일 수단의 다르푸르 지역에 있는 모습 / 출처 gettyimages
홉스의 사회 계약설은 자연 상태에서는 인간은 자기 욕구 충족 및 보호를 위해 서로가 서로를 빼앗고 죽여서 결국 공멸하게 되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The war of all against all)'를 막기 위하여 사회(국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로크의 사회 계약설 역시 유사하다.
▲ 루소는 엥겔스와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사회주의 원조
Contrat Social을 들고 있는 장 자크 루소(1712-1778) 모습 / 출처 Stefano Bianchetti/Corbis via Getty Images
그러나 루소는 인간은 자연 상태에서는 평화롭지만 사회를 만들면 계급과 사유재산으로 불평등한 사회가 된다고 했다. 인간이 만든 문명이 자연 상태에 인간(숭고한 인간 Noble Savage)을 망가트렸기 때문에 원시 공동 주의(공산주의) 상태, 자연 상태로 돌아가라는 주장을 한다. 책 등 문명의 이기(利器)를 싫어한다. 인류문명의 퇴보다.
루소는 엥겔스와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사회주의 원조임에도 한국에 잘못 알려졌거나 과대하게 포장된 대표적 인물이다. 누구보다 그리스의 민주주의를 잘 아는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19세기 중후반 고대 그리스의 경제와 정치 관계를 뒤집는다. 모든 가치는 노동에서 나오고 자유는 국가가 소멸할 때 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루소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특정 계급(자본가, 영주)이 사라지고 농노, 노동자 계급이 생산수단을 강제, 폭력으로 장악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결국은 특정 계급의 일당, 일인 중심의 나라가 되면서 시민들의 자치, 정치는 소멸되고 독재만 남게 되었다. 현재 모든 공산주의, 사회주의 국가가 증명하고 있다.
Kampong Ta에 있는 Pol Pot 정권 희생자들의 유해 3년 8개월 동안 캄보디아 국민 1/4인 약 1,700,000명이 사망 / 출처 Getty Images
루소, 마르크스를 추종한 결과는 자국민 6천만 명을 학살한 레닌과 스탈린의 무도한 전체주의, 4천만 명을 굶겨 죽이고 때려죽인 모택동의 인민민주주의, 8백만 명의 전체 인구 중 2백5십만 명을 처형시키고 굶겨 죽인 캄보디아 크메르루주의 킬링필드가 일어났다. 인간이 할 짓이 아니다.
그뿐이랴. 3대에 걸친 수령체제를 유지하면서 동족을 죽이고 수용소에 보내서 고문하고 굶겨 죽이고 때려죽이는 북한의 노동자 낙원(?)은 주민의 42.4%가 영양부족 상태이고 인권이 없는 현존하는 지옥이 되었다.
▲ 거짓 진보에 속아서는 안된다. 이도 저도 아니면 중도가 옳다.
좌익( left)과 우익(right) 그리고 중도(center) / 출처 dremtimes
그런데 한국에서는 문명 발전, 아니 문명을 거부하고 원시 공산주의로 돌아가자는 공산, 사회주의 좌익을 진보(進步)라 한다. 우스운 말이다. 이는 좌익이 중도층을 흡수하기 위한 빅 텐트 (big tent) 전략의 용어 전술에 단단하게 걸려있는 것이다.
사상을 프레임(frame)으로 구분하자면 '보수'와 '진보'가 아니라 '보수'와 '자유주의'로 나누는 것이 옳다.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모두 국가의 지속 발전을 도모한다. 야당인 국민의 힘과 보수는 싫지만,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가 아니라면 '진보'가 아니라 '중도'라고 하는 것이 맞다.
현대 국가에서 좌익은 일반적으로 경제적 평등을 위한 정부의 개입을 주장하는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 색채가 강하고, 반면에 우익은 경제적 자유와 사회질서의 유지를 옹호하는 시장경제의 자본주의 및 자유민주주의 성격이 짙다. 골수 좌익이 용어 전술의 덫으로 쳐놓은 '진보 텐트'에 '중도'가 갇히면 안 된다.
세계 대부분의 다른 나라에서 사상을 정의할 때 진보(progress, 進步)라는 용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미국에서도 보수주의(conservatism)와 자유주의(liberalism) 프레임이 사용되고 있다. 미국의 공화당은 보수주의를, 민주당은 자유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유럽은 자유민주주의, 기독교 민주주의,사민주의 등 구체적인 사상 실명제를 사용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인들은 한국의 사상 프레임을 보수주의(conservatism)와 진보주의(progressivism, 사회주의)로 사용하는데 이해하지 못한다. 자유주의 세력이 들어갈 곳을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세력 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주의란 현재의 귀중한 가치나 질서 등을 긍정하고 지킬 것은 지키고 발전시킬 것은 발전시키는 온건개혁 성향을 말한다. 미국의 보수주의는 청교도들이 가졌던 기독교 신앙적 가치, 전통문화 등 을 지키고 계승 발전시키려는 성향을 말한다.
보수주의와 대립하는 개념은 자유주의이다.엄격한 기독교 문화에서 벗어나 인간 중심의 좀 더 자유로운 가치와 행동을 지향하는 성향을 말한다. 한국에서는 청교도 대신 유교 등을 대입하면 적절하다. 보수주의나 자유주의 모두 자유민주주의 틀 안에서 지속적인 발전을 꾀한다. 다만 기존의 전통과 사고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느냐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 골수 좌익은 적지만 무섭다.
2014.12.19. 헌법재판소 "통합진보당 해산"… 이석기·김재연·김미희 등 의원직 상실 / JTBC 뉴스 캡처
월남의 예를 보면 남쪽 월남에 좌익세력은 4만 명으로 남월 인구의 0.25에 불과했다. 러시아 공산화 당시에도 공산당원은 23,600명 정도로 러시아 인구의 0.016%에 불과했다. 인구 200만 명의 외몽고는 1921년 164명의 공산당원이 사회주의화에 성공했다.
해산된 통진당의 당원은 33,000명으로 남한 인구의 0.066%이지만 2008년 득표율은 5.7%나 되었다. 박근혜 정권의 최대 치적은 2014년에 통진당 해산한 일이라고 필자는 평한다. 만약 통진당이 지금 그대로 활동하였다면 아마 지금 한국은 대혼란에 처해있을 것이다.
한국의 골수 좌익은 아주 미미한 세력이지만 현재 각 정당, 노동조합, 언론, 교육계 등을 통하여 세를 넓히고 있다. 특히 한국 같은 자유민주주의 나라에서 좌익들이 마음 놓고 활동하기 아주 좋은 환경이다. 골수 좌익은 국제적으로 치밀하게 체계적으로 공조활동을 한다. 중국, 북한, 일본은 물론이고 미국과 유럽 등 전세게적인 공조체제를 가지고 활동 중이다.
공산주의자들은 궁극적으로 일당독재를 하기 위하여 사람을 포함한 모든 것을 도구나 수단으로 사용한다. 흑묘백묘는 기본이고 거짓말, 말 바꾸기, 사람 죽이는 일 등을 예사로 한다. 이에 따라 좌익은 세력을 넓히기 위하여 용어 전술을 기가 막히게 구사한다.
▲ 루소 좌익 사상은 지금도 한국에서 천성산 도롱뇽, 환경, 문화 운동에...
도롱뇽 / 출처 unsplash
루소 사상으로 이어진 좌익사상은 천성산 도롱뇽 한 마리 때문에, 환경이라는 명분으로 문명의 발전을 거부한다. 한국의 좌익이 경제발전, 과학과 기술 발전하려고 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퇴행하려는 사상을 가진 집단이다. 루소 사상은 산업화와 이어진 선진 디지털 세상을 거부한다.
있는 공장도 폭력으로 없애야 하는 마르크스주의는 지금 한국의 대표적인 강성 노동, 환경 투쟁으로 연결되어있다. 그린피스 등 환경 운동, 이를 홍보하는 영화 등 문화운동 대부분 좌파사상의 실천 주 무대다. 주변에 벌어지는 사회적, 착한, 환경 운동을 빙자한 단체들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골수 좌익은 갖은 이슈를 만들어 집단적으로 활동하는데 상당수 시민은 깊은 전략을 알지 못하고 동원되어 이용당한다.
골수 좌익의 반진보, 반문명, 공산화, 전체주의화 시도를 대비하고 극복하는 방안은 루소의 파괴적 사상을 거부하고 홉스와 로크 사상을 실천하는 일이다. 이는 미국의 독립선언서에 잘 담겨있다.
모든 사람은 평등, 양도할 수 없는 권리, 즉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권을 가지고 태어났고, 이 권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인류는 정부를 조직했다는 점이다. 또한,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 사상을 잘 실천하면 된다.
국가는 전지전능한 역할이 아니라 인간 사회 최소한의 질서만을 유지해주는 일을 하여야 한다. 정작 나라가 어려울 때 국가가 아니라 정의로운 시민이 언제나 나섰고 희생했다. 따라서 국민(시민) 역시 국가를 왕조처럼 모든 일을 해결해주는 절대적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며 질서 속에서 어느 정도 각자도생 하여야 한다.
지난 문재인 정권은 지난 5년 동안 구걸하는 종북과 굴욕적인 굴중(屈中) 행태로 사실상 사상적으로 커밍아웃(coming out)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국민의 삶을 책임진다고, 또 이재명 후보는 "5천만 국민의 삶 책임지는 대표일꾼 될 것"이라고 했다.
불가능한 일이고 공산주의 독재국가에서 사탕발림으로 하는 말이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할 수 없는 발언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왜 '김일성주의자' '공산주의자'라고 하는지 그 근본 사상을 온 국민이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