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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대석 May 23. 2021

[박대석 칼럼] 20·30 분노와 시대정신

공정이 깨진 사회, 20·30세대 투쟁이 아니라 경쟁을 원했다.

시대정신이란 한 시대에 지배적인 지적·정치적·사회적 동향을 나타내는 정신적 경향을 말한다. 국내에서 시대정신이라는 거창한 단어가 대선이 임박하면 거론된다. 주로 임기 말 정권의 실정(失政)이 몇 가지 단어로 함축되어 나타난다.     


2007년에 시대정신은 개발ㆍ돈ㆍ부자였다. 김대중-노무현 민주 정부 10년 동안 많은 국민은 민주주의라는 가치에 냉소를 보내고 개혁이라는 말에서 짜증과 위선을 느꼈다. 민주 정부가 내세운 민주와 개혁이 일반 국민의 살림살이에 별로 보탬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대그룹의 신화를 고 정주영 회장과 함께 쓴 개발시대 간판스타인 이명박 대통령이 탄생했다. 한 카드회사의 ‘부자 되세요’ 광고대로 이루어 주기를 국민은 바란 것이다.     


2012년 시대정신은 정의(正義)였다. 당시 김두관 경남지사는 2012년 시대정신으로 "정의와 소통"을 꼽았다. 2009년 발간한 마이클 샌델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는 2011년 4월 국내 판매량이 100만 부를 돌파했다. 저자는 정의를 판단하는 세 가지 기준으로는 행복, 자유, 미덕을 들 수 있다. 책장이 술술 넘어가지 않는 딱딱한 책이었음에도 많은 독자가 구매한 통계를 보고 한국의 식자층이 의외로 꽤 두껍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그만큼 상당수 국민이 이명박 정권의 개발 정책 분배가 정의롭지 못하다고 본 것이다.   

  

2017년 초 당시 문재인 대통령 후보의 시대정신은 단연코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면서 상식과 정의’를 내세웠다. 그러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기회는 아빠 찬스가 됐고, 과정은 표창장 위조였으며, 결과는 수학능력이 없는 학생이 합격한 것"이라고 조국 사태를 평가했다.     


▲ 내년 3월 치러질 대통령 선거의 각축전이 시작되었다. 


현재 여론조사 1~2위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이재명 경기도 도지사다. 

    

이재명 지사를 지지한다는 포럼 이름이 ‘성장과 공정’이다.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이 지사도 성장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는 것이다. 경제가 성장이 되면 기본소득이 필요 없을 수도 있고, 정부 곳간이 가득 차 있어야 기본소득도 가능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또 지금 시대가 공정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21일 프레스 센터에서 정권교체를 목표로 하는 전문가 모임인 ‘공정과 상식 회복을 위한 국민연합’이 출범하면서 ‘윤석열, 대통령 가능성과 한계’를 주제로 토론회를 주최하였다. 사실상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지지하는 전문가 모임이었다. 모임 이름이 ‘공정과 상식’이다.   


2021.5.21.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토론회, 필자는 언론사 편집위원 신분으로 참석하였다. / 필자 촬영

정치하겠다고, 대통령에 출마한다고 공식적으로 말한 적도 없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뜬금없이(느닷없이?) 대권 주자 1위로 뜨는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가 보기에는 검찰의 칼을 전 정권, 현 정권 누구에게나 똑같이 갖다 댔다는 이유가 크다. 검찰이, 공무원이 당연히 그래야 하는데 윤 전 총장의 그동안 행적은 공정의 표상이 돼버린 것이다. 그만큼 나라가 공정과 상식이 무너졌다는 것이고 심지어 ‘내로남불(naeronambul)'이 국제 통용어 반열에 올랐다.      


▲ 20·30세대 투쟁이 아니라 경쟁을 원했다.  

  

세상 만물들의 삶은 항상 경쟁과 투쟁의 연속이다. 경쟁은 같은 목적에 관하여 겨루어 다투는 것을 말한다. 경쟁은 상대를 존중하며 공정한 규칙이 있고 결과에 승복한다. 결과물에 차등이 있을 뿐이다. 투쟁은 상대를 인정하지 않으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 폭력적이 야만적이고 상대를 없애려 하기도 한다.   

  

자유민주사회, 선진 사회는 경쟁 사회라고 하지 투쟁 사회라고 하지 않는다. 현재의 20·30세대를 포함한 MZ세대((15세~39세 사이)는 OECD 10위권의 부자나라에서 태어나 교육받았다. 당연히 자유민주주의 시민으로서의 소양을 가지고 있으며 경쟁이라는 규칙을 받아들이고 자라왔다.     


성적이 뒤처진다고 같은 반 학생을 탓하거나 선생님을 원망하지 않는다. 공채로 좋은 직장에 못 들어간다고 회사나 합격자를 미워하지 않는다. 집을 사지 못해도 집을 산 사람이나 집을 판 회사 나아가 나라를 원망하지 않는다. 돈도 마찬가지다. 경쟁의 법칙을 잘 알고 있고 공정한 경쟁 속에서 자신이 공부를 덜 했거나 노력이 부족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쿨(cool)한 세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도 노력만 하면 성적도 오르고 직장도 들어갈 수 있으며 집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늘 품고 있었다. 


몇 년 전까지의 일이었다.  그들은 내로남불의 위선과 불공정 현실을 보고 아파하다가 희망을 잃어가며 이제 분노하기 시작했다. 그 불공정의 사례를 몇 가지 살펴보자.

  

▲ 불공정의 연속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방문한 인천 국제공항공사(인국 공)가 비정규직 보안검색 요원 1902명을 정규직인 본사 청원경찰 신분으로 직접 고용하기로 했다. 비정규직 제로(0)를 내세운 대통령이 은전을 베푸는 모양을 갖추었다. 즉각 밤새워 취업준비를 하던 20·30 반발했다. 불공정한 개입을 비난한 것이다. 현 정부는 전혀 상상치 못한 일로 당황했다.      


한 여당 인사는 '조금 더 배우고 필기시험 합격해서 정규직이 됐다고 비정규직보다 2배가량 임금을 더 받는 것이 오히려 불공정'이라고 말했다가 매서운 비판을 받아야 했다. 늘 그렇게 저렇게 살던 세대들이 나보다 더 노력하여 좋은 대우를 받는 것을 정당한 경쟁의 결과로 받아들이는 20·30세대들의 공정한 경쟁을 이해조차 하지 못한 것이다. 이른바 '인국 공 사태'다. 그러나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 논란이 있었다. 정부는 올림픽을 앞두고 급하게 남북 단일팀 구성을 추진했다. 그러자 2030 세대를 중심으로 남측 선수들이 출전 기회를 잃을 수 있다는 비판이 거셌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선수들의 노력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며 선심 쓰듯 국가 차원의 의의를 부여하는 발상이 역겹다는 글까지 올라왔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개인이 희생되는 모습이 청년층의 예민한 ‘공정 감수성’을 건드린 것이다. 결국, 문 대통령은 “선수들의 입장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다”라며 유감의 뜻을 밝혔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입시 비리 의혹은 국론 분열로까지 커졌다. 조 전 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의 자녀 입시 비리 혐의에 대해 1심 재판부는 지난해 12월 모두 유죄를 선고하며, “(정 교수 딸이) 실질적 혜택을 입어 다른 응시자들이 불합격하는 불공정한 결과가 발생했다”라고 밝혔다. ‘조국 사태’ 이후 문재인 정부가 약속했던 ‘공정’은 현실의 ‘불공정’과 괴리하며 ‘내로남불’은 현 정부의 최대 유행어가 됐다. 대학생들 사이에선 조 전 장관의 자녀와 비교하며 “최순실의 딸 정유라는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고도 중졸로 전락했다”라며 오히려 정 씨를 두둔하는 여론이 만들어지기까지 했다.   

  

불공정의 결정타는 집이었다. 2019년 전국 가구의 연평균 소득은 5천924만 원이었고 20대는 3천533만 원이다. 서울의 젊은 층이 선호하는 아파트 중위 매매 가격은 9억 7천만 원이다. 27.4년 동안 한 푼 안 쓰고 모아야 집을 살 수 있다. 집 사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고위 공직자들은 집 두 채 이상 가진 자가 수두룩하고 신도시 개발에는 LH 등 관련 부처 공기업 및 국회, 공무원들이 미리 정보를 이용해 불로소득을 얻는 모습이 연일 터져 나온다.   

   

25번이나 발표한 주택정책은 실패로 돌아갔다. 실수요자와 청년들은 집값이 비싸 살 엄두도 안 나지만 막상 사려 하면 대출이 안 된다. 세를 얻을 수도 없고 주택 소유자는 세를 놀 수도 없다. 보유세를 올려 집값을 내려고 보려 하지만 또 주택 소유자들이 아우성이다. 정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급기야는 군대만 특공부대가 있는 줄 알았더니 주택에도 특공이 있었다. 세종시 이전 대상이 아님에도 이전이 무산된 관세청 관세평가분류원 소속 직원 40명이 세종시 소재 아파트를 특별 공급받아 불로소득을 챙겼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세종으로 이전하는 기관 종사자들의 주거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공급 물량의 50%까지 우선 배정했다. 하지만 일반분양보다 경쟁률이 낮다 보니 당첨되면 수 억 원의 차익을 누릴 수 있어 원래 정책목표와 달리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임직원들의 ‘재테크’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 올해까지 특공에 당첨된 총인원은 2만 6163명이다.     


드디어 20·30세대들은 허탈감을 넘어 공정한 경쟁을 외친 힘 있는 자들의 위선에 분노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20대 남성의 72.5%가, 30대 남성의 63.8% 오세훈 서울시장을 택했다. 통상 젊은 층들은 변화를 원하여 진보성향을 지니는 데 반(反)한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 깜짝 놀란 대권 주자를 포함한 정치인들이 모두가 20·30세대 등 MZ 세대들을 향하여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여권의 '빅 3' 대선주자 이재명 경기도지사,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20·30세대' 표심 공략을 위해 현금 지원정책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세계 여행비 1000만 원',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는 '군 제대 시 3000만 원'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1억 원 통장' 등을 약속했다.     


중간 사다리, 계층이동 희망사다리가 없어진 젊은 유권자에게 현금지원은 달콤해 보이지만 문제와 해법의 번지수가 틀린 것이다. 청년들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는 공정한 경쟁을 원했다. 그런데 현 정치세력들에는 공정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깨달은 것이고 그래서 미래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데 좌절하고 분노하는 것이다. 대부분 정치인이 표 계산하는 정치 공학 놀음만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디지털 경제에 걸맞은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고 상식과 공정을 회복하고 지켜줄 정치인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이 국민의힘 당대표선출에 김웅, 윤희숙 등 초선의원과 젊은 이준석 최고의원 등이 돌풍을 몰고 있고 원외인 나경원 전 의원 등이 지지율 1~2위를 다투고 있다. 서열, 선수가 파괴되고 있는 현상이다. 코로나로 인하여 과거처럼 거물들이 사람을 모아 세몰이하는 정치는 실종되고 평소에 SNS 등을 통하여 꾸준하게 소통하는 정치인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그 중심에 기존 정치에 식상한  20·30세대가 있는 것이다. 그들은 철저한 개인주의지만 공동 관심사는 디지털로 바로 집단행동을 한다.


마찬가지로 정치를 한다고 대통령에 출마한다고 말한 적도 없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여론조사 1위를 차지하는 것이다. 검찰의 칼을 지난 정권, 현 정권에 똑같이 들이댔고 그로 인하여 핍박받는 모습을 연일 생중계하듯 보도되었으니 기존 보수성향 유권자는 물론이고 젊은 층, 심지어 호남에서도 골고루 지지를 받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20·30세대를 포함한 많은 국민이 여건 야건 기존 정치인에게는 희망이 보이지 않아 대안으로 윤 전 총장에게 기대를 거는 것이다. 

    

아마 필자가 보기에 김오수 검찰총장 후보가 청문회를 마치고 공식적으로 취임하면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정치에 관한 공식 입장을 밝혀야 할 것이다. 검찰총장 자리가 공석인 상태에서 정치적인 언급 등을 하기에는 부적절하다고 판단할 수 있으나 오랜 침묵은 국민에 대한 예의 역시 아니기 때문이다.     


독일 출신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혁명에는 새로운 시작과 자유라는 두 가지 목표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프랑스혁명, 미국 혁명 모두 자유를 기치로 든 것은 같다. 하지만 아렌트가 보기에 미국 혁명은 성공적이었던 반면, 프랑스혁명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다. 프랑스는 혁명이 시작되고 나서 바로 빈곤으로 대표되는 사회적인 문제에 혁명의 역량을 집중했지만, 미국 혁명은 자유라는 높지만, 본질적인 목표를 이루려고 노력했다.     


대한민국 젊은 층의 문제 역시 마찬가지이다. 당장 눈앞에 사탕발림으로 20·30세대의 문제 해결하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불공정은 정당한 경쟁을 원하는 청년들에게 희망과 미래와 자유를 빼앗아 간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일자리와 집과 연애는 자유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이제 다시 상식과 공정을 회복해야 하고 병행하여 부강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과거를 교훈 삼아야 하지만 지난 쓰레기 통속에서는 미래를 만들 수 없다. 진영이 아니라, 종족이 아니라, 민족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국가(國家)의 시선으로 세상을 봐야 한다. 그래야 청년들의 해법, 북한의 해법, 집값의 해법, 일자리와 경제의 해법, 대한민국 미래의 비전과 갈 길이 제대로 보인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혁명을 해야 한다. 중진국 함정에 빠진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만들어 갈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대통령을 내년 3월에 제대로 선출하는 것이 정치혁명의 시작이다. 그만 그만한 진영과, 종족과, 과거 그리고 정치공학 놀음에 빠진 대통령이 아니라 정치혁명가 대통령이 치고 나와야 한다. 


어차피 다음 대선 역시 진보, 보수, 여와 야, 호남과 영남 등의 구도로 누가 나와도 2명의 후보가 기존 유권자 대상으로는 5 : 5 승부가 될 것이다. 그러나 다음 대통령 선거에 인구의 33.7%를 차지하는 20·30세대를 포함한 MZ 세대들은 그러한 구태의 갈라 치기에 관심이 없다.  


MZ 세대의 당면 현안과 희망적인 미래에 대하여 구체적 해결책과 비전을 제시하는 정치인이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내일이기 때문이다. 상식 실종과 불공에 분노하며 투쟁이 아니라 공정한 경쟁을 원하는 대한민국의 청년들이 시대정신에 맞는 대통령을 2022년 3월에 만들어야 하는 이유이다.   


칼럼니스트 박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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