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찾아가는 여정 D+36
2017.06.22 날씨 더움 / 인디애나
총 이동 거리 : 1228.3km
며칠간 폭염이더니 다시 비가 오기 시작했다. 비가 정말 차갑다는 걸 요즘 들어서 느끼고 있다. 팔뚝에 굵은 빗방울이 투박하게 떨어질 때면 그 차가움에 몸이 떨릴 정도였다. 아침에 눈을 뜨니 비가 엄청 오고 있었지만 출발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출발한 지 세 시간이 지났을 때, 우리를 앞서가던 빨간색 도요타가 멈추어 서더니 할아버지 한분이 잠깐 멈추라는 손짓을 하셨다. 다가가서 멈추니 인상이 좋은 할아버지께서 비가 많이 오는데 자기 집에서 옷을 말리면서 뭐 좀 먹고 가는 게 어떻겠냐고 말씀하신다. 나는 당연히 그러겠다고 했고 할아버지는 칠백오십 번지를 찾아오라고 하셨다.
오랜만에 국도에서 벗어나 차가 없는 작은 마을로 들어서니 몸도 마음도 편안 해졌다. 빠르게 달리는 차가 도로를 거칠게 가로지르는 파열음도 들리지 않았고, 주변의 나무들이 바람을 막아주어 자전거가 휘청거리지도 않았다. 그동안 뒤에서 달려오는 차들을 신경 쓰느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다. 특히, 강하게 마주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받으며 나아가는 일은 자전거를 던저버리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소모하는 에너지에 비해 걷는 속도랑 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백오, 오백육십이, 육백 팔십팔.
우편함에 적혀있는 번지수를 하나씩 읽으며 칠백오십 번지를 찾아갔다. 굽이굽이 이어진 길을 두 번 꺾어 들어가니 먼발치에서 할아버지가 기다리고 계셨다. 흰색 지붕을 가진 이쁜 집이었다. 무거운 비에 젖은 채 흰 이를 내보이며 그에게 다가가자 차고로 손짓을 했다. 빨려가듯이 차고에 들어가 자전거를 눕혔다.
"잘 찾아왔네! 배고프지?"
"네, 배가 엄청 고프네요 하하"
그는 이중으로 잠겨있는 문을 능숙하게 열고는 들어오라는 부드러운 손짓을 했다. 밖에서 본 것보다 생각보다 집이 커서 내심 놀랬다. 그럼 지난번에 본 성 같은 집은 얼마나 크단 말인가 하고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할아버지의 뒤를 따라 들었다. 집안의 분위기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너무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분위기에 빛이 들어와야 할 곳을 창문이 자리하고 있었다. 거실로 들어서니 손자로 보이는 꼬맹이 두 명이 열심히 게임을 하고 있었다. 안녕, 손을 흔들어 보이니 배시시 웃는다. 귀여운 꼬마들은 플로리다에서 왔는데 여름 때마다 2-3주씩 자신의 집에서 지내다가 간다고 했다.
거실을 지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무수한 사진들과 컴퓨터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잘 정리가 되어있는 걸 보니 아들 내외가 놀러 오면 쓰는 공간인 것 같았다. 그는 서랍에서 수건을 하나씩 꺼내면서 물었다.
"....... 핫도그는 몇 개나 먹을 수 있어?"
"....... 곧 해가 질 거 같은데 하룻밤 묵고 가는 게 어떻겠니?"
안 그래도 쉬다가 가면 해가 진다고 옆에서 보채던 성웅이었다. 다행히 그의 얼굴에 화색이 다시 돌았다.
"그래도 될까요?" 나는 재차 물었다.
"편하게 쉬다가 가 나도 자전거 여행할 때 도움을 많이 받았었어. 씻고 준비되면 올라와 저녁 준비해놓을게"
정말 다행이다 싶었다. 비보다 바람이 너무 거세어 50km를 달려오며 이미 충분히 지쳐있었다. 씻고 올라가니 할아버지와 아주머니께서 저녁을 준비하며 감자튀김을 오븐에 넣고 계셨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검은콩은 큰 접시에 담겨 있었고, 핫도그는 달콤한 향을 만들어내며 기다리고 있었다.
차례대로 자신의 접시에 음식을 담았다. 나는 뜨거운 콩을 접시 한가득 담고 핫도그 두 개를 가지고 식탁으로 갔다. 그렇기 여섯 명이 빙 둘러앉아 저녁을 먹으며 얘기를 나누었다. 할아버지는 로키산맥을 건너 캘리포니아 주로 가는 자전거 여행을 했었는데 산맥을 넘을 땐 지옥에 온 기분이었다고 말씀하셨다. 몇 시간을 달려도 오르막길의 연속이었고 너무 지쳤었는데 그때 마침 픽업트럭을 몰고 가는 사람이 도움을 줘서 록키 산맥을 건너올 수 있었다고 했다.
재미있는 건 그도 그날 엔진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었다고. 자전거 여행자로서 그의 마음을 백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흥미로운 사실은 그가 베트남 참전용사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전장에 나가 있는 병사들보다 사실 후방에 있는 군인들이 많았다며 자신도 그중 한 명이라고 했다. 대화 중 궁금증이 들어 혹시 한국군과 이야길 해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한국군들은 전방에 있어 자주 보질 못했지만 거기서 만난 몇 명을 기억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는 후방에 있었음에도 공격을 받아 치열했던 그날 왼쪽 눈에 파편으로 인한 장애를 입으셨다.)
알고 보니 그는 '자현'이라는 한국인 교환학생을 자신의 집에서 지내게 해준 적도 있었다. 그의 개인사는 한국과 가까운 관계인 것 같았다. 우리의 대화는 돌탑을 쌓듯이 신중하지만, 모양이 이끄는 대로 이어져 나갔다. 대화가 무르익을무렵 그는 꿈을 물었다.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 말을 이어나갔다. 다음 호흡으로 넘어가기 위한 나의 습관이었다. 꿈이라기 보단 두 가지의 목표가 있다고 말했다. 글을 쓰며 사는 삶을 살고 싶다는 것과 또 다른 하나는 파일럿이 되는 것이라 말하자 그는 멋진 조합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만약에 제 목표처럼 비행을 하며 글을 쓸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면 어떤 글을 쓸 수 있을지 기대가 돼요. 매일 저는 노을과 밤하늘 속으로 들어갈 테니까요."
우리는 3시간이 넘도록 얘기하고서야 시간이 늦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몇 시에 출발하냐는 물음에 아침 9시쯤에 출발할 거라 말씀드리고 내려왔다.
침대에 누워 머리끝까지 담요를 덮었다. 좋은 꿈을 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오늘 멈추지 않고 그를 그냥 지나쳤더라면, 그가 멈추지 않고 우리를 지나쳤더라면 우린 또는 그는 어떤 하루를 보냈을까.
인연이라는 건 어떠한 힘이 있는 것 같다.
마치, 보이지 않는 끈이 끊임없이 서로를 잡아당기는 것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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