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찾아가는 여정 D+55
필자 이동근은 지난 2016년 6개월간 오토바이크를 타고 부산을 출발, 시베리아를 거쳐 포르투갈까지 22,838km를 달려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로카곶의 바람을 느끼고 돌아왔다. 진짜 행복이 뭔지,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절박하게 고민했던 여행이었다. 그러나 그는 여행의 끝에서 행복을 찾아 헤매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 그저 삶의 순간순간이 행복임을 깨달았다. 그러나 길 위에서 만나는 순간의 의미는 삶을 더욱 행복하게 한다는 것또한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그가 다시 자전거를 타고 미국 뉴욕에서 출발해 중부사막을 지나 알래스카까지 13,000km를 달리는 여행을 시작했다. 유라시아 횡단을 끝내고 미국 알래스카까지 약 40,000km를 완성하는 두 번째 북반구 횡단 프로젝트를 이어가기 위해서다. 이번 북아메리카 대륙 횡단에는 오토바이가 아닌 '자전거' 가 함께했다. 그의 여행 이야기를 연재한다.”_편집자 주
[북반구 횡단: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 D+55
2017.07.10 날씨 맑음 / 시카고->캔자스->솔트레이크시티
총 이동 거리 : 2,769.61km
시카고에서 캔자스까지 오는 나의 모습은 눈 양옆을 가린 채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 같았다. 끼니도 거른 채 10시간 이상을 달렸을 정도로 남은 기간 안에 횡단을 끝내야 한다는 강박감 속에 달렸다. 지난해 유라시아 횡단처럼 멋지게 끝내고 싶은 욕구가 다시 강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친구 성웅이와 함께했을 때는 우리가 갈 수 있는 만큼만 가자든지 즐기면서 천천히 가자는 말을 많이 나눴다. 서로가 좋은 추억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었고 덕분에, 횡단을 성공적으로 끝내야 한다는 강박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홀로 남겨지고 나서부터는 해내야 한다는 강박감이 다시 고개를 들었고 남은 체류 일수와 거리를 곱씹으며 닷새 만에 700km가 넘는 거리를 달려 캔자스시티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시카고를 떠나온 며칠 동안 나의 마음속에는 여행을 떠나기 전 담아온 사랑과 온정 그리고 삶을 즐기는 여유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빛이 사라진 마음 한구석에 남은 것이라고는 조바심과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강박감뿐이었다. 행복은 내일이 아니라 순간에 있다는 사실과 그 순간 속에 머무르는 법을 배우기 위하여 떠난 여행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기 파괴적인 여행을 하고 있었고, 빛을 품었던 나의 조각은 끝이 보이지 않는 먼 우주로 흘러가고 있었다.
결국, 무엇을 위해 이곳까지 왔는지 다시 생각해봐야 했고 책 몇 권과 수첩이 들어있는 가방 속을 신경질적으로 뒤적였다. 그간 세월이 손끝으로 매만진 끝이 낡고 해진 수첩을 꺼내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하나둘씩 써 내려갔다. 나 자신과의 대화를 위한 오래된 나의 습관이었다. 한참을 써 내려가며 그동안 내키지 않았던 것을 하나둘씩 물었고 최대한 솔직한 답변을 하려 했다. 그 과정을 통해 나온 답은 지금 가지고 있는 프레임에 집착을 버리자였다. 그러자 굳이 자전거를 끝까지 타고 가야 한다는 압박감에 더 이상 시달릴 필요도 없었고 그렇게 집착을 버리고 나니 선택지가 늘어났었다.
애초에 가보고 싶었던 사막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유타 주로 방향을 정했고 기차를 알아보았다. 솔트레이크시티는 1,200km가 조금 넘게 떨어진 곳이었고 자전거로 쉬지 않고 20일은 가야 할 거리를 기차로 13시간 40분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미국 중부는 특별할 것이 없는 지루한 곳이었지만 눈이 쌓인 거대한 산맥이 보일 때면 감상에 젖어 한없이 창밖만 바라보기도 했다. 점차 유타 주에 가까워질수록 푸르던 풍경 속에 척박한 노란빛이 드문드문 물들었다. 유타 주 서쪽으로는 로키산맥이 가로막고 있고 불모지가 캘리포니아까지 이어진다고 했다. 나는 로키산맥을 둘러 네바다 주를 통해 캘리포니아로 들어가자고 마음먹었다. 솔트레이크시티에 어두운 밤이 돼서야 도착했다. 밤이었지만 병풍처럼 서 있는 워새치 산맥이 도시를 둘러싸고 있었다. 이전에 애팔래치아 산맥을 넘어올 때는 그 속에서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산맥의 크기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멀리서 바라볼 기회가 없음에 아쉬웠는데 이곳에서 거대한 산맥의 줄기를 한꺼번에 바라보고 있으니 여러 가지 감정이 밀려왔다. 자연에 대한 경외감부터 내가 저곳을 넘어야 한다는 막막함이 동시에 찾아왔었다.
숙소에 들어와 위성지도로 내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찬찬히 훑어보니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할 것 같았다. 또, 1,400m에 이르는 해발고도는 한라산과 맞먹는 높이였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힘이 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가 됐든, 달리 다른 방법이 없었다. 해가 밝아 오면 이젠 그토록 꿈꾸던 사막으로 들어간다.
[북반구 횡단: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 D+58
2017.07.13 날씨 살인적인 무더위 / 솔트레이크시티 외곽
총 이동 거리 : 2,853.37km
43도,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온도였다. 목구멍 깊숙이 들어오는 건조한 바람은 물을 아무리 마셔도 갈증을 만들어 냈고 뜨겁게 데워진 생수는 헛구역질이 났다. 솔트레이크시티를 빠져나올 때 일부러 비포장 길을 따라왔다. 근방에 모텔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나무 뒤에서 숨어서 캠핑하자는 생각이었다. 사실, 큰 나무를 찾는다는 것보다는 모텔을 찾는 것이 더 빠르겠지만 도로에서 어둠을 맞이하는 것보다는 나은 선택이었다. 미국은 캠핑장이 아닌 곳에서 캠핑하는 것이 불법이었지만 내리쬐는 태양 빛을 피할 곳만 있다면 어디든 텐트를 펼치리라 생각했다. 그깟 법보다 분명 사람의 생명이 더 중요할 테니까.
60km 정도를 달려오니 배가 고파 그늘을 찾아다녔는데 마침 주차장처럼 생긴 공터가 있었다. 자전거를 눕힌 채 허겁지겁 버너와 냄비를 꺼내 물을 끓였다. 여기서 늘 고민하는 한 가지가 있는데 물의 정량을 냄비에 부어버리면 왠지 모를 불안감이 생겼다. 라면 하나를 끓이는 데에는 550ml가 필요했는데 가진 물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양이었다. 또, 물을 적게 넣자니 짜 저버려 밥을 먹고 난 뒤에 물을 또 그만큼 마시게 되니 결과적으로 어떻게 끓이든 한 끼 식사마다 소비하는 물의 양은 비슷했다. 오토바이 여행을 할 때는 언제든지 구하러 갈 수 있었으니 이러한 걱정은 해본 적이 없었지만, 자전거는 얘기가 달랐다. 그래서 보통 저녁에 물이 남아있으면 라면을 먹었고 아니라면 빵에 잼을 발라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라면이 몸에 좋지 않다고는 하지만 따뜻한 국물에 매콤한 맛을 내는 라면은 길 위에서 내가 부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였다. 물이 끓기 시작하여 라면수프를 넣고 면을 넣고 있자니 땀이 비 오듯 떨어졌다. 그렇게 설익은 라면을 포크로 호호 불며 떠먹고 있으니 맞은편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던 트럭 운전사가 다가왔다.
“당신 유타 주 여행하고 있는 거예요?”
“네 맞아요. 저는 뉴욕에서 왔어요.”
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맨해튼이 있는 뉴욕에서 출발했다는 거죠?”
“네, 정확히 맨해튼에서 출발했어요. 하하.”
자신은 상상해본 적도 없다는 말을 덧붙이며 그는 묻기 시작했다.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나왔나요? 악수 한 번만 청해도 될까요?"
라면 사이에 포크를 푹 집어넣곤 손을 마주 잡으며 말했다.
“그냥 여기서 죽는다고 해도 큰 후회는 남지 않을 것 같아서 시작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어쨌든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죽는 거니까요”
말을 마치고 다시 남은 라면을 입에 넣었다. 그는 무슨 결심이 섰는지 나를 바라보다가 기다리라는 손짓과 함께 트럭으로 돌아갔다. 그의 뒷모습이 보였는데 뒷좌석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그를 기다리며 나는 식사를 마치고 포크와 냄비에 묻은 라면의 붉은 기름을 휴지로 닦았다. 하지만 여전히 얼룩덜룩 남아있는 기름때를 보고 있으니 속이 다시 메스꺼웠다. 그러는 사이 그는 검은 봉투 한뭉치를 들고 나에게 돌아왔다.
“이거 내가 집에서 만든 사슴 육포예요. 챙겨 다니면서 먹어요.” “고맙습니다. 아저씨.” 그렇게 마지막 악수를 한 뒤 그는 떠나갔다. 해가 기울고 있어서 나도 어서 출발해야 했지만, 배가 불러 움직이기가 싫었다. 끈적끈적한 냄비와 버너를 가방에 던져 넣고는 아무렇게 매듭을 마무리 지었다. 어차피 다시 저녁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물로 설거지하는 것은 물 낭비였다. 가방 하나를 의자 삼아 앉아 지도를 살펴보았다. 델타라고 불리는 작은 마을까지 11시간이 남았고 그 이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차라리 잘 됐다 싶었다. 이 속에서 오래도록 혼자 머물고 싶었다. 요즘, 붉은색 황무지가 만들어내는 신비에 감탄 중이다.
[북반구 횡단: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 D+62
2017.07.17 날씨 건조한 무더위 / 유타 주 어딘가
총 이동 거리 : 3,056.6km
사막에 들어온 이후로 자주 코피를 쏟고 있다. 땀인 줄 알고 코를 훔치다가 붉은 선혈이 손에 묻어 나오는 일이 반복되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다 싶었다. 온도가 너무 높고 건조했으며 지대가 높았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한라산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또, 목이 마르면 계속해서 물통을 비워냈기 때문에 이것도 문제가 되는 듯했다. 물을 마셔도 금방 갈증이 찾아오는데 그때마다 자전거를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한 번 마실 때 1리터 가까이 벌컥벌컥 들이켤 때가 많았다. 가능하다면 가지고 있는 물 4리터를 그 자리에서 마시고 싶은 욕구가 자주 생겼다.
사실, 요즘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아니, 배는 고프지만 식욕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쉬기 위해 메마른 땅 위에 털썩 앉고 일어서는 행위조차 힘에 부쳤다. 이틀 전부터 머리가 조금씩 아파오더니 빈혈이 생긴 것 마냥 이제는, 몸을 조금만 빨리 움직여도 머리 전체가 흔들렸다. 몸이 점점 아파오는 것은 참을 수 있었지만,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나도 모르게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튀어나올 때였다. 더 이상 어떠한 열정도 사라지고 그저 살기 위한 목표만 남을까 봐 두려웠다. 이전에 스스로와 약속한 것이 있었다. 마지막 순간에도 여전히 열정이 가득한 상태에서 맞이하자고, 그것보다 아름다운 삶은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점점 내가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고 있다. 그동안 내가 살아온 삶이 한순간에 부정될 것만 같았다. 여기서 포기해버리면 나 자신이 미워져 더 이상 아름다움을 말하며 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서서히, 사막은 나의 모든 것을 녹여버리고 있는 듯했다.
오늘은 가는 길에 멈추어 오랫동안 쉬었다. 바람이 선선하게 불었고 해가 저물기 시작하니 기온도 점점 내려가는 듯했다. 가만히 앉아 눈앞에 잡힐 것 같은 로키산맥을 바라보고 있으니 문득 그동안 스쳐지나 왔던 많은 사람이 생각났다. 작년 이맘때쯤 러시아 카잔에서 함께 별을 바라보면 얘기 나눴던 그 친구는 여전히 여자 친구와 잘 지내고 있을까 또, 함께 달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얘길 나눴던 친구는 뉴욕에서 잘 지내고 있을까. 그들은 내가 떠난 뒤 한 번쯤 나를 떠올린 날이 있었을까. 오랫동안 정을 주고 싶었던 그들이 생각나 한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니, 이미 많은 정을 줘버렸기 때문에 그리웠을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마침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북반구 횡단: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 D+65
2017.07.20 날씨 건조한 무더위 / 유타 주 끝자락
총 이동 거리 : 3,363.37km
왼쪽 페니어 백이 완전히 부서졌다. 길목에 누워있는 뱀을 보지 못한 채 달리다 급하게 피했던 탓이었다. 그동안 지나오면서 여러 번 뱀을 밟고 지나갔던 적이 있었다. 피하고 싶어도 잘 보이지 않아 지나간 뒤에 알아챈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뛰어난 위장 덕분에 다른 동물에게 잘 보이지 않아서 좋았겠지만, 자전거를 타고 있는 동물에게는 효과가 없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을 것이다. 뱀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덕분에 몇 미터 가지 못한 채 넘어져 버렸고, 결과적으로 페니어 백은 더 이상 자전거에 장착할 방법이 없었다. 작은 희망을 품을 필요도 없이 깨끗하게 부서져 버렸다. 그래도 한 생명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에 대해 위안으로 삼았다. 이까짓 페니어 백이 없다고 해서 내가 죽는 것은 아니니까 이건 지극히 합리적인 결과라 생각했다. 이왕 넘어진 거 쉬다 가자며 오늘 처음으로 카메라를 꺼내었다. 허리를 숙여 카메라 가방을 열려고 보니 종아리에 피가 조금씩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있자니 페니어 백에 완전히 정신이 빼앗겼던 자신이 우스웠다.
다시 가서 뱀을 찾으려 하니 단번에 찾기가 힘들었다. 다가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몇 년 전, 키웠던 꿈틀이(애완뱀의 애칭)가 여기서 왔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특별히 다를 것도 없는 같은 종이였다. 꿈틀이의 종이 캘리포니아 데저트 킹스네이크였던 것을 생각해보면 여기가 캘리포니아와 가까운 곳이었고 심지어 사막이었다. 사진 몇 장을 찍고 나니 나와의 거리가 가깝다고 느껴졌는지 조금씩 물러서더니 다시 사막의 덩굴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앞으로 캠핑할 때 뱀을 많이 보겠구나 싶었다. 터덜터덜 넘어져 있는 자전거로 다가가 일으켜 세웠다. 음식 주머니의 무게가 더해져 이전보다 일으키는 데에도 많은 힘이 들었다. 부서진 가방을 어떻게 달아야 할지 살펴보다 케이블 타이 두 개를 꺼내 설겅설겅 깁듯 자전거와 고정했다. 팽팽하게 늘어나는 것을 보니 곧 끊어질 것 같아 몇 개를 더 꺼내 고정했다. 발로 툭툭 차보니 꽤 단단하게 묶였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페달을 천천히 밟기 시작했다. 앞에 끝없이 펼쳐진 길을 보고 있자니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어쨌든, 캘리포니아로 이어진 길이었고 갈 수 있는 만큼 갔다가 멈추면 그만이었다.
가끔, 트럭을 몰고 가는 농부를 만났었다. 외길이라 저 멀리서 오는 트럭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비포장 길이라 뿌연 먼지구름이 지평선에서 올라오면 누군가 오고 있구나 하고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였다. 그들은 나의 옆을 지나갈 때면 늘 괜찮으냐고 물었고 혹시 물이 있으면 달라고 하여 하나씩 받으니 나중에는 너무 많아져 자전거에 실을 곳이 없을 지경이 되었었다. 비록, 그것마저도 이틀이면 동이 나기는 했지만 마음은 한결 든든했다. 이곳에서 물이 동나버리는 상황은 생각만 해도 끔찍했기 때문에 무겁더라도 어떻게든 필요 이상의 물을 가지고 다녔었다. 그것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준비였다.
오늘도 해가 지기 전에 잘 곳을 마련해야 했기 때문에 어디가 좋을지 둘러보며 이동을 했다. 평평하면서도 안전하게 막힌 곳은 생각보다 찾기가 어려웠고 얼마나 탁 트여있는지 저 멀리 민둥산에서 내려오는 사슴 무리가 보일 정도였다. 그렇게 찾던 중, 누군가 쌓아놓은 돌무더기를 발견했고 그곳에 텐트를 치기로 했다. 근처에 가니 돌무더기 속에 무엇인가 사는 것 같아 보였지만, 텐트를 닫고 자면 괜찮으리라 생각하고 텐트를 펼쳐 잘 준비를 하고 누웠다. 가만히 누워 생각을 해보니 사막으로 들어온 이후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동안 사실, 내가 시작한 이 여행을 받아들이지 못했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 하는 여행이었고, 그 사실보다 더 나를 괴롭게 만드는 것은 이전에 했던 유라시아 횡단과의 비교에서 왔었다.
그때 당시에는 오토바이로 여행했었기 때문에 가고 싶은 곳은 손쉽게 갈 수가 있었다. 하루에 1000km의 거리도 조금만 고생하면 큰 문제가 없었고 추위만 버티면 특별히 몸에 무리가 없었다. 오히려, 잘 닦인 도로를 달릴 때는 지루하여 잠이 올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하루에 100km를 이동하면 다음 날 50km를 이동하기도 많은 부담이 되었었고 상대적으로 유라시아 대륙보다 작은 미국이었지만 축구경기장을 가로지르는 달팽이가 된 심정이었었다. 하루하루 지나가는 자동차와 오토바이크를 보면서 내가 오토바이크를 타고 왔더라면 하고 탄식을 했던 적이 수없이 많았었다. 그랬더라면 한정적인 비자 기간 동안 더 많은 곳을 가볼 수 있었을 것이고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끝없는 비교가 만들어내는 고통과 불행은 나의 현실이 더 나아지는 것에 큰 도움을 주지 않았었다. 오히려, 탄식과 비관만 만들어낼 뿐이었다. 그것이 극대화되었을 때가 필라델피아 주를 지날 때였다. 3주가 넘게 자전거를 타고 하루하루 왔었는데, 그날 무심코 누른 지도에 뜨는 정보는 뉴욕에서 자동차로 10시간이 조금 넘는 거리였었다. 그때 이후로 사실, 하루하루 달려봤자 이것이 큰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하는 관조와 비관이 뒤섞여 늘 나를 따라다녔었다. 그것은 끊임없이 나를 괴롭게 만들었었고, 이 고통을 끝낼 수 있는 사람은 스스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생각처럼 잘되지 않았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마음속에 그러한 것들이 사라졌고 이제야 이 여행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