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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근 Jan 05. 2018

여전히 사랑이 불고 내게도 불어오고 있었다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 D+70

[북반구 횡단: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 D+70

2017.07.25 날씨 건조한 무더위 / 캘리포니아주

총 이동 거리 : 3,715.66km


더 이상 움직이기에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조금만 더 가면 눈앞에 LA가 보일 것 같았지만 전조등 없이 이렇게 가다가는 뒤에 오는 차에 치여버릴 것 같았다. 마침, 배도 고파 라면을 끓여 먹을 심상으로 도로 옆 갓길에 자전거를 눕혀두고 버너를 꺼내 물을 끓였다. 지나가는 차가 힐끔힐끔 쳐다봤었지만, 경찰만은 만나지 않기를 바라며 불빛을 막아선 채 조심스럽게 라면 한 덩이를 냄비에 구겨 넣었다.

수프를 넣고 칼칼한 향이 올라오니 이제야 좀 살 것 같았다. 사실, 이럴 때면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너무 행복했다. 세상 어디에서나 라면 수프 하나만 있으면 고향 맛을 느낄 수 있으니 우리 같은 민족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라 내심 생각했다. 라면이 익기 시작했고 포크로 두어 번 면을 꺼내 먹던 중 멀리서 오던 차 한 대가 나를 보기 위해서인지 상향등을 켜더니 그대로 앞에 멈추어 섰다. 그가 창문을 내리고 어디로 가는 길이냐고 물었다.

나는 LA로 간다고 말했고 자기가 근처에 태워다 줄 수 있으니 타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에 냄비를 들어 보이며 이것만 먹고 갈게라는 시늉을 했다. 그는 알겠다며 차에서 내리더니 라면에 관심을 보이고 맵지 않느냐며 자신도 코리아타운에서 여러 번 사 먹어봤다고 말했다.

그는 먼저 나보고 2년 동안 군대를 다녀왔냐고 물을 정도로 한국정세에 대해서 잘 아는 친구였다. 알고 보니 주한 미군으로서 몇 년 동안 한국에 주둔했던 경험이 있었다. 덕분에 라면 국물을 다 비울 시간 동안 그와 많은 얘기를 나눌 수가 있었다. 나의 얘기를 들은 그 역시 무척 나에게 호기심이 생긴 듯했다. LA에서 19km 떨어진 곳에 사는 친구인데 그는 잠이 오지 않아 드라이브를 나왔다 나를 발견하고는 도움을 주었다.

자전거를 차에 싣고 어디로 갈래라는 그의 말에 너의 집에서 가까운 모텔로 데려다 달라고 말했다. 이 친구는 LA에 나를 내려놓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마지막 페달을 내일까지 밟고 싶었기 때문에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내일이면 횡단이 끝이 난다.

[북반구 횡단: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 D+72


2017.07.27 날씨 건조한 무더위 / LA-비행학교


총 이동 거리 : 3,790.81 km

‘좋습니다. LA에 들어오시면 연락 주세요.’


SNS를 통해 나의 글을 꾸준히 읽던 분이 있었다. 우연히, 그의 프로필을 보게 되었고 캘리포니아 주에서 비행을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이전부터 파일럿에 대한 로망과 동경심이 있었다. 이번 기회에 캘리포니아 도처에 있는 비행 학교장에게 메일을 보내봤었지만, 답장이 오질 않았다. 아쉬워 하던 참에 그에게 만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흔쾌히 수락했다.


단순한 몇 번의 호흡으로 이루어진 약속이었기에 큰 기대를 할 수 없는 없었지만 그의 말투 속에 담긴 정직함은 그 약속이 이미 오래전 정해져 있었던 것 마냥 단단한 무언가로 채우고 있었다. 덕분에, 3주라는 시간 동안 놀이동산에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이곳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그토록 기다렸던 로스앤젤레스를 알리는 표지판이 보였다. 그와 동시에 드디어 횡단이 끝났다는 후련함과 그를 만나볼 수 있겠다는 설렘이 동시에 밀려들어 왔다. 숙소를 잡고 그에게 연락했다.


“LA에 도착했습니다! 편한 시간에 연락 주세요.”


“고생하셨어요. 오늘 저녁에 시간 어떠세요?”


오랜만의 연락임에도 불구하고, 기다렸다는 듯이 또 한 번의 흔쾌한 답변이 돌아왔었다. 그는 차를 가지고 내가 머물고 있는 곳까지 오기로 했고 우리는 마침내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사진 속 모습보다 좀 더 멋진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고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또, 사람에게 신뢰를 어떻게 줄 수 있는지 아는 사람 같았다. 간단한 인사를 전한 뒤 근처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겨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나는 그동안 궁금했던 파일럿이 되는 과정을 물었고 그는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냈다. 그에게 듣게 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승객을 다 내리고 알래스카로 돌아가는 여객기의 파일럿이 전직 곡예비행사와 전투기 비행사라 그 여객기로 곡예를 하며 비행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 일로 책임을 묻게 된 일이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던 순간에 그가 물었다.  

“비행기 한번 태워주고 싶은데 타러 갈까요?”


“저는 너무 영광이긴 한데 시간이 너무 늦었지 않나요?"


이미 해가 진 늦은 저녁이라 우려를 했지만 그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근처 공항의 스케줄을 확인하곤 어디론가 연락을 했다. 곧이어, 지금 서둘러서 가면 될 것 같다며 비행학교로 그의 차를 타고 향했다. 다행히 비행장은 열려있었고 M.I.AIR라는 학교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비행일지를 기록할 동안 나는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는데 책상 곳곳에 있는 알 수 없는 기호들과 지도로 채워진 서류가 눈에 들어왔었다.

이 수식과 기호를 읽으며 비행을 한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아파오면서도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수많은 계기판과 관제사와의 교신 그리고 복잡하게 얽힌 지도는 비행을 꿈꿔봤던 이들이라면 한 번쯤 상상해봤음에 틀림없기에 그것을 마침내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다시 어린아이 마냥 신나기 시작했다.

우리가 오늘 탈 비행기는 세스나라는 비행기인데 단발 프로펠러가 달린 4인용 경비행기였다. 밖에서 보이는 것과는 달리 실내에 들어서니 생각보다 자리가 컸고 조종간이 양쪽 나란히 달려있었다. 의자를 당겨 앉아 헤드셋을 썼다. 그의 말소리와 함께 눈앞에 계기판과 작은 앞창을 통해 프로펠러가 조금씩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이륙을 위해 그가 관제사와 통신을 하고 있는 것을 듣고 있자니 영화 속으로 들어온 것만 같았다. 늘 비행기 창가를 통해서 옆모습만 보다 칵핏에 앉아 비행기가 나아가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으니 그 느낌을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이륙을 하고 점점 지상과 멀어질수록 나의 마음도 함께 붕 떠올랐다.

그는 비행을 하며 나의 기분을 듣고 싶어 했고 그 이유는 흥미로웠다. 비행학교에 대한 정보가 전무했을 시절 주변에 물어볼 곳도 없어 무작정 아시아나 항공 파일럿으로 재직 중인 분에게 연락을 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지금 자기가 도움을 주고 있는 것도 그때의 생각이 나서라고 말했다. 또, 언젠가 내가 그의 입장이 되었을 때 누군가가 도움을 청한다면 흔쾌히 받아들였으면 좋겠다며 말을 맺었다. 그와 비행 2시간을 하며 실제 비행 조정법과 계기에 대해서 배우고 두어 번 내가 조종간을 잡아 조금씩 기체를 움직여 보기도 하니 언젠가 스스로 비행을 한다면 얼마나 멋진 삶이 만들어질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렇게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인터뷰했는데 그 또한, 신선한 경험이었다. 늘 해왔던 인터뷰를 조종석에 앉아하니 내심 내가 멀리까지 오기는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에게는 특별한 이야기가 있었는데 어머니 결혼식의 사회를 봐주었다는 것이었다. 그때 사회를 보던 당시, 첫 번째 결혼은 바빠서 가지 못했는데 두 번째 결혼은 참석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고 웃어 보이는 그가 멋져 보였다. 또한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를 가진 사람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와 비행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잠시나마 내가 조종간을 잡았던 때를 생각해보면 꿈만 같았다. 덕분에, 글을 쓰며 비행하는 삶을 반드시 만들어내고 싶다는 열망이 오랜만에 다시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그에게 너무 고마웠고, 살아가며 아름다움을 얘기할 수 있는 동료가 생긴 것이 기뻤다. 그와 헤어지며 다음 만남 때는 서로가 파일럿으로서 마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끝으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 보였다. 고마워요. 준석이 형.

[북반구 횡단: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 D+89


2017.08.14 날씨 건조한 무더위 / LA-횡단 종료.


총 이동 거리 : 3,790.66km

그동안 지나온 길을 손끝으로 천천히 더듬었다. 그곳에는 시베리아가 있었고 유독 정이 많던 러시아 바이커도 보였다. 한참을 더듬어 가니, 12월의 찬바람을 막아주던 지중해의 따뜻한 바람도 손끝에서 느껴져 왔다. 언 몸을 바람에 기대어 녹이며 뉴욕의 분주한 모습을, 경외를 불러일으키는 록키산맥을 천천히 손으로 그려냈다. 내리쬐는 해를 피해 선선한 바람이 부는 곳을 바라보니 233일 간의 여행이 흩날리는 잎새처럼 눈앞에 수수히 떨어져 내렸다. 그렇게 사랑이 없는 줄 알았던 곳에서도 여전히 사랑이 불고, 내게도 불어오고 있었다. 그 속에서, 무모했던 만큼이나 아름다웠던 나의 여행을 끝맺었다.

< 끝......이동근 씨의 북아메리카 횡단 자전거 여행기는 이번으로 끝을 맺습니다. 친구와 둘이 함께 시작했던 여행이 혼자가 되고, 행복을 찾아 떠났던 여행길은 고통과 외로움의 순간이 많았기에 끝이 더 달콤하고 행복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동근 씨는 여행을 마치고 귀국했습니다. 그의 글을 만날 수 있었던 화요일이 조금은 허전하겠지만 그의 글과 사진, 앞으로 남은 그의 꿈이 있기에 기분 좋은 작별을 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동안 여행 중에도 좋은 글과 사진을 보내온 이동근 씨와 그의 여행기에 많은 관심을 보여준 독자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_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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