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체제 유지는 무한한 성장을 필요로 한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박혀 있는 관념이다. 자본주의에서는 경제가 늘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도 옛날에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에 대한 토론을 했을 때, 지속가능성이 자본주의 체제와는 모순되는 부분이 있다는 근거로 사용하기도 했다. 자본주의의 유지를 위해서는 경제는 성장해야 하는데, 이전까지는 그 수요의 증가가 전쟁이었고, 현대는 그것이 과소비를 통해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지속가능성을 높이고자 하는 노력과는 반대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정말 모든 사람이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소비를 한다면 이 경제가 위험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주장을 제기했었다.
그런데 또 문득, 긴 시간이 흐르다 보니 이유가 궁금해졌다. 왜? 왜 자본주의는 무한한 성장을 필요로 하는가. 성장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렇다면 먼저 성장이란 무엇인가? 성장을 물론 경제성장을 의미할 것이고 경제성장이란 GDP의 증가를 뜻한다. 결국은 GDP가 계속 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면 일단 GDP가 줄어드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GDP는 국내총생산을 의미한다. 쉽게 말하면 돈의 거래량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GDP가 지속적으로 줄어든다는 말은 즉 생산물이 줄어드는 것이고, 한편으로 소비가 줄어드는 것이다. 당연히 기업이 덜 생산을 하고 소비자가 덜 구매를 한다는 것은 거래가 지체된다는 것이고, 기업이 이윤을 얻고 고용을 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GDP가 줄어들면 문제가 생긴다는 것은 너무 직관적이다. 하지만 GDP가 줄어들 때 문제가 생기는 것은 자본주의에 국한되지 않는다. 공산주의 체제에서도 GDP가 줄어들고, 생산량과 소비가 줄어들면 문제가 생기는 것은 너무도 당연해서 사실 GDP가 줄어들 때 생기는 문제로 자본주의에서 성장의 필요성을 근거 삼는 것은 부적절하다.
반대로 GDP가 늘어나면 기본적으로 더 좋은 것은 당연하다. 기업들은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하고, 그것이 더 많이 소비되고, 거래가 더 활발히 이뤄지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더 많은 인력이나 자본들을 충당해야 할 것이고 고용이나 향후의 시장의 상황이 좋아질 것이다. 또 한 가지 직관적인 이익은 국가의 세금은 "돈의 이동"에 매겨지기 때문에 세수는 거래량을 대표하는 GDP에 비례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GDP가 점점 늘어난다는 것은 국가의 세수도 점점 늘어나는 것이고, 국가가 점점 부유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것은 늘어나면 좋다는 것이지 안 늘어났을 때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니다.
자본주의 체제 유지는 무한한 성장을 필요로 한다는 명제의 대우는 "무한한 성장이 없이 자본주의는 유지되지 않는다." 이기 때문에 그러면 사실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GDP가 거의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을 때, 어떤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는가?" 내가 너무 당연하게 자본주의는 성장을 해야지라고 생각해왔던 것에 비해 이 질문에 깔끔하게 답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 문제에 대해 여러 사람들과 토론했는데 혹자는 "GDP가 일정할 수가 없지 않나?"라고 애초에 일정한 경우는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했었지만 사실 GDP가 애초에 일정할 수가 없고 성장 혹은 하락이라면 당연히 성장해야 하는 것이고, 자본주의랑은 상관도 없기 때문에 본래 명제 자체가 아무 의미 없는 말이 되어버린다.
GDP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기업은 평균적으로 매년 비슷한 매출을 낼 것이고, 소비자는 비슷한 양의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할 것이다. 국가의 세수도 매년 크게 늘어나거나 줄어들지도 않고 비교적 일정하게 될 것이다. 한 가지 통찰은 소비량이 일정하다는 것은 기업 활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총 이윤이 고정되어 있다는 뜻이다. 쉽게 말해 기업들에게는 제로섬 게임이 된다는 것이다. 기업들 모두가 성공할 수는 없고 하나의 기업이 성공하고자 한다면 다른 어떤 기업의 이윤을 빼앗아야 한다. 그런데 사실 그건 뭐 성장을 하는 중인 경우에도 꽤나 비슷하긴 하다. 대부분은 늘 특정 시장의 규모를 판단하고 각 회사가 그 파이의 몇 퍼센트를 먹고 있는지 나는 얼마나 먹을 것인지를 놓고 경영하니 말이다. 그렇다면... 문제가 없는 거 아닌가? 처음에 쉽게 답을 찾을 수 있으리란 기대와는 달리 GDP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상황을 상정하고 나니 생각보다 문제가 없어 보였다. 이대로 잘 유지되면 우리가 더 많은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고 삶의 질이 더 높아지지는 못할지라도 나름 괜찮은 이 삶을 유지할 수 있다는 거 아닌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자. GDP가 일정하게 유지된다면 그 나라의 세수, 즉 수입도 사실상 일정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이때 국가의 지출은 세수보다 크거나, 비슷하거나, 작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지출이 더 크다면 그러니까 나라가 버는 것보다 많은 돈을 쓰고 있는데 GDP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상황이라면 GDP는 유지되지만 자본은 지속적으로 줄어든다. 자본이 지속적으로 줄어든다면 당연히 국가가 사용할 수 있는 돈이 점점 줄어들 테니 GDP를 같은 수준으로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GDP가 유지되는데 지출이 세수보다 작은 경우라면? 내가 내린 결론은 이 경우는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다. 다만 현실적으로 생각을 해본다면, 이 경우는 국가의 자본이 점점 늘어남을 뜻하는데 국가가 그 자본을 아무 곳에도 투자하지 않고 그대로 처박아 두면 GDP가 유지되는 것이니 그 돈을 소비해 사용한다면 사실 GDP가 늘어날 것이다. 그러니까 이 경우는 남는 돈을 굳이 썩혀두고 GDP를 그냥 유지만 할 필요가 없다. 그걸 사용해서 성장을 하는 게 더 이득이 될 테니까. 국가의 세수와 지출에 괴리가 있는 이 두 가지 경우가 비현실적이라면 마지막 한 가지 경우만 남게 된다. GDP가 일정한 국가라면 국가의 지출과 수입은 비슷한 수준이어야 하고, 국가의 자본은 증감 없이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이 상태에서 체제 유지가 불가능하게 붕괴를 촉진하는 무언가가 있어야만 한다. 사실 이 답을 찾기까지 치열한 논의를 했는데 찾아낸 해답은 부채였다. 각 국가들은 늘 국채를 발행해 부채를 지고 있고, 이 부채를 새로 발급하고 또 갚아나가며 운영한다. 물론 GDP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국가라면 당연히 부채를 늘 갚던 대로 잘 갚아나갈 것이고, 새로 발행하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자율이다. 돈을 빌렸으니 이자를 줘야 하는데 이 이자율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달라진다. 많은 사람들이 사고자 한다면 더 낮은 이자율로도 돈을 빌릴 수 있고, 수요가 별로 없다면 더 높은 이자율로 빌려야 할 것이다. 사실 GDP가 일정한 국가라면 신용에는 문제가 없을 수 있다. 그런데 수요 관점에서 본다면 조금 얘기가 다르다. 많은 다양한 나라들이 있고 채권을 구매하는 구매하는 그중에 가장 매력적인 상품을 택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에게는 당연히 성장률이 높은 국가들이 매력적인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내가 GDP가 일정한데 어느 다른 나라에서는 GDP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성장하는 곳이 있다면 한정된 자금은 그쪽으로 더 쏠릴 것이고, 상대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발행하는 국채는 수요가 줄어들게 된다. 그러면 이자율이 늘어나는 것이다. 이자율이 늘어나게 되면 국가의 수입과 지출의 균형이 깨지고 아까 예시처럼 국가의 자본이 점점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 문제는 자본주의에 한한 문제가 맞는가? 그래야 처음 명제가 의미가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 이 문제의 핵심은 시장경제체제와 자유경쟁에 있기 때문이다. 결국 국가 간의 거래가 자유롭게 뚫려있는 상황에서 타 국가와의 경쟁을 통해 그 지위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늘 성장하는 경쟁자가 있다면 나도 따라서 성장하지 않고서는 현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 핵심이다.
생각보다 답을 찾기가 어려웠지만 한 가지 답을 찾아냈다. 물론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드는 생각은 부채와 국가 간 경쟁 때문이라면 이게 없는 상황이면 유지가 가능한가? 자본주의 국가가 나 하나뿐이고 다른 나라에 빌린 부채가 없을 수도 있지 않은가. 이 경우라면 그러면 GDP가 일정한 상황에도 아무 문제가 없을까? 부채와 범 국가 간 관계에 의존하지 않고도 문제가 생기는 부분을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고민을 마치고 다시 좀 더 찾아보니 학계에서도 이미 이런 논의를 하던 사람들이 있던 모양이다. 생태경제학(Ecological Economics)이나 탈성장(Degrowth) 진영에서는 지금까지 논의했던 "현재 GDP 수준에서 잘 유지하면 되는 거 아냐?"를 주장하는 것이다. 다만 이들의 주장은 지금의 체제에서 그대로 GDP를 유지하면 된다기보다는 GDP가 증가하지 않아도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경제 모델인 정상 상태 경제로의 전환을 주장하고 있는 듯하다. 사실 성장의 한 가지 모순은 무한히 성장하는 게 가능한 지이고 우리의 과소비를 통해 경제를 성장시키는 것이 결과적으로 더 인류에게 좋은지 의문이 드는 만큼 충분히 논의해 볼 만한 주제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