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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의 Feb 07. 2023

나와 세계의 거리

나는 힘들어하는 사람을 보고 있는 것에 마음이 많이 쓰인다. 원하는 무엇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무력한 어릴 적의 내가 떠올라서 그런 것 같다. 그때의 나는 너무나도 친절한 누군가가 먼저 나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어 주길 언제나 기다렸던 것 같다. 물론 내 기다림이 보답을 받는 일은 빈번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아무 요청도 말도 없는 조용한 아이를 먼저 생각하며 신경 써주는 가끔의 누군가는 정말 고마운 존재였던 것이다. 내가 무력하지 않다고 느끼게 된 것은 내 삶의 반생, 그것도 채 되지 않는다. 널널하게 쳐봤자 삼분의 일이랄까?

나는 아주 어렸을 때도, 어렸을 때도, 더 이상 어리지는 않았을 때도, 지금까지도 누군가에게 깊이 의지해 본 적이 없다. "의지한다"라는 개념 자체도 낯설다. 그건 내게 문제가 있었든, 없었든, 문제가 크든, 작든 상관없었다. 당시의 나는 충분히 합리적이지 못했기 때문에 나의 세계에서는 다른 누군가를 끌어들이는 선택지는 없었기 때문이며 지금의 나는 나의 문제들에 관해서 다른 누구보다도 나를 믿기 때문이다. 이제는 다른 누군가가 이 오랜 시간을 걸쳐 만들어진 내 세계의 규율을 깰 수 있으리란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떼를 써본 적도 없고, 어느 어른에게 반말을 써본 기억도 없다. 나의 일상을 궁금해하는 누군가에게 친절히 떠들어볼 일도 없었다. 사실 지금까지도 내가 내 이야기를 잘 못하는 건 당연한 것 같다.

지금 돌이켜 보면 어렸을 적의 나는 늘 살얼음판 위를 걸으며 살았던 거 같다. 그때 나는 세상과 너무 가까이 붙어 있었고 작은 사소한 일들 하나하나 지극히 예민했다. 특히 어른의 꾸지람은 마치 그것을 듣는다는 것이 지옥에 떨어지는 것인 마냥 두려운 것이었다. 뭐 이 저주의 진상과 범인에 대해서는 이제는 대충 짐작을 하고 있다. 지금의 나는 세상과 너무 멀어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오랜 시간을 가까이 붙어 있던 세상과 떨어진 나는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초연해진 면이 있다. 어릴 적 용돈 백원 오백 원도 함부로 쓰지 않고 저금하고 아꼈던 나는 지금은 주식이 백만 원이 떨어지든 천만 원이 떨어지는 동요 없이 지켜보는 사람이 되었고 어릴 적 무서워서 인라인스케이트도 잘 타지 못했던 나는 지금은 스노보드를 타다 손목이 부러져도 태연해지고 말았다. 물론 아직까지도 두려운 것도 남아있다. 아주아주아주 많이 줄어들었음에도 사람은 두려운 것에 속한다.

나는 정이 많다. 물론 나의 표정과 나의 말이 이것을 충분히 드러내는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전반적으로는 기억을 잘하는 편인데 그러다 보니 옛날의 모습을 기억하며 지금의 모습을 볼 때 실망하는 일도 잦다. 많은 이들이 가지고 있던 친밀감이든 친한 척이든 긍정적 관심이든 소중함이든 그런 따위의 것들이 너무나 빠르게 부패하는 것을 보곤 한다. 그가 전에 했던 말과 행동, 관심과 다정함을 모두 기억한 채로 그것들이 모두 빠져버린 그를 다시 맞는 것은 조금은 비참한 일이 아닐까? 사실 이제는 원래 사람들이 그렇다는 걸 알지만 이해하는 것과 익숙해지는 것에는 약간의 차이는 있는 것 같다. 그럴 때마다 세상과 한 걸음 더 떨어지는 기분이다. 내가 얽혀 있는 이 수많은 연과 나의 굴레로부터 벗어나는 이질감.

세상과 멀어진다는 것은 삶의 무언가 내가 집착하는 것이 없어진다는 것이고, 나에게 소중한 것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미련이 없어져 간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내가 역동적이고 날카로운 생의 질감을 모르는 것 또한 아니다. 나는 그래도 삶의 하나하나의 장면과 작고 평온한 일상의 가치를 몸소 느끼고 있다고 자부한다. 모르겠다. 정을 좀 더 붙여보면 될 지도. 

한때는 내가 나의 소중한 것들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친구를 그렇게 생각했고, 꿈을 그렇게 생각했다. 언젠가부터는 사랑도 그렇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실 이제는 아무것도 잘 모르겠다. 무엇이 가치 있는 걸까? 친구는 있는 듯하면서도 한순간 별 이유도 없이 거품처럼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고, 하긴 몇 년을 가족처럼 같이 살며 지내다가도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질 수 있는 게 세상인데 당연할지도. 상실이 낯설지 않다는 것은 그게 돈이든 사람이든, 가져도 가진 것 같지 않다는 뜻이다. 그냥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 그저 특별한 이유가 없어 지속되고 있을 뿐이다. 꿈과 하고 싶은 일도 한때 나에게는 삶을 삶으로 만들어줄 만큼 대단하고 중요한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아무리 선망하고 동경하고 꿈꾸고 노력해도 꼭 그걸 가질 수는 없는 것이고, 그걸 가졌다고 해서 생각했던 것과 같은 것도 아니었다. 그럼 내가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냥 말 그대로 꿈일 뿐인가. 이것도 마찬가지다. 그냥 눈앞에 있는 예쁜 물거품 중에 하나일 뿐이다. 돈 같은 건 어렸을 때 강박증이 있었다 뿐이지 애초에 가치 있다고 믿은 적도 없다. 사랑, 사랑이 한 사람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지나고 난 자리에는 무엇이 남는가? 사실 뭐 이건 그냥 잘 모르겠다. 어쩌면 가치 있을 지도 모르지.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얼마나 간사한가? 어떤 사람이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데 가장 중요한 게 뭘까? 내가 생각했을 때 그건 "우연"이다. 그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이유 따위가 있는 게 아니고, 어느 전설처럼 딱 맞는 정해져 있는 운명의 상대가 있어서 만난 것도 아니고, 우연히 접근 가능한 거리와 우연히 연애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되고, 우연히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이 되어야 하는 것. 그리고 어쩌면 또 다른 우연에 의해 언제든 마음이란 건 달라질 수 있는 것. 사랑이란 우연이 가치를 부여받고 추구의 대상이 될 만한 것인가는 잘 모르겠다. 기왕이면 나도 거기에 어떤 신비스럽고 놀랍고 감동적이고 가치 있는 무언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보다 글이 길어졌는데 아주 오랜만에 쓰다 보니 그런 것 같다. 또 생각보다 글이 허무주의적이고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람들 얘기를 들어봤을 때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들었다. 사실 세계로부터 떨어지고 작은 것에 대한 미련이 사라지고 나면 나쁜 일이란 게 그렇게나 별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깊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모든 것들에 무가치하게 느끼는 것도 아니다. 보통은 그 일상의 장면에 몰입하여 열심히 사는 편이다. 그렇다고 특별히 기분이 우울해서 부정적인 글을 썼느냐하면 그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내용은 내가 일반론적으로 삶에 대해 갖고 있는 태도이니까. 그래도 가끔은 아무 생각 없이 찬란한 삶의 경이로움과 감동을 만끽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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