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삶의 춤을

El Jaleo(엘 할레오).1882.John Singer Sargent

by 정혜원



여기 왼쪽 팔을 길게 뻗은 무희가 있다. 뒤쪽 의자에는 박수를 치는 남자, 두 명의 기타리스트, 머리를 뒤로 젖히고 졸고 있는 남자, 그리고 몇 명의 무희들이 앉아있다. 몇 년 전 내가 오른 작은 무대에는 여섯 명의 긴장한 초보 무희와 옆쪽에 두 명의 기타리스트가 있었다. 무대 앞쪽은 첫 공연을 축하하러 온 가족과 친구들이 앉아있었다. 무대 분장을 하고 혹시나 안무 순서를 잊을까 두근두근 하는 내가 있다. 내 인생 계획에 없던 플라멩코가 어느 날 갑자기 들어왔다.


오래전 외국에서 사는 아이들을 만나며 나중에 필요한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리고 2016년 오랫동안 꿈꿔왔던 일을 준비하기 위해 영국 에든버러를 향했다. 어학연수도 하고 영국의 유치원과 초등 교육 과정을 경험하고 싶었다. 에든버러에 머문 지 한 학기가 되기도 전에 영국이 유럽 연합을 탈퇴하면서 비자법이 바뀌었다. 나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남은 생의 꿈을 위해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힘으로 어찌해 볼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울면서 기도했지만 길이 끝난 것처럼 암담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무엇이라도 집중할 것을 찾았다. 몸을 움직여 우울을 떨쳐야겠다 생각했다. 운동을 우선순위로 두었다. 정기적이면서 꾸준하게 할 수 있는 운동이면서 즐길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 것이 스포츠 댄스였다. 그중에 플라멩코를 선택한 첫 번째 이유는 파트너 없이 춤을 출 수 있기 때문이다. 파트너에 신경 쓰지 않고 춤을 배우고 즐기는 것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두 번째는 구두를 포함한 섹시한 듯 우아한 의상 때문이다. 굽의 높이가 5센티 정도인 플라멩코 구두는 나무 바닥을 치며 소리를 낸다. 구두는 악기와 같은 역할을 하기에 꼭 플라멩코용 구두여야만 한다. 치마는 힙선까지 타이트하다가 밑으로 폭이 넓어 춤을 추었을 때 여성의 몸매를 최대한 아름답게 한다. 춤을 추는 시간에 의상만으로도 무희의 여성성을 한껏 드러내 보일 수 있어 좋았다.


그러나 이것들보다 더 앞선 이유가 있었다. 플라멩코는 애잔한 기타리스트의 연주와 함께 시작되기도 한다. 연주에 맞춘 느릿하고 우아한 춤사위는 어느 순간 감정이 폭발하는 듯 구두소리(사파테아드), 손뼉 치는 소리(팔마)와 함께 빠르고 격정적인 춤이 된다. 다시 마무리하는 음조에 무희는 그림 속 <엘 할레오>의 무희처럼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관객인 나도 정화되는 듯한 느낌. 억압된 감정이 해소되며 의자에 앉아있는 주황색 무희처럼 나도 모르게 ‘올레이’!! 라며 호응한다. 내가 그 당시 플라멩코를 선택한 것은 어렵게 맘먹고 행했던 일이 타의에 의해 의지가 꺾인 후, 답답한 무언가를 분출하고자 하는 강렬한 내적 동기가 아니었을까.


길게 감동의 여운이 남는 플라멩코. 플라멩코 공연에서 모두가 하나가 되었을 때 플라멩코의 힘은 최고조에 이른다. 그러기에 무대 위에서 혼자 춤을 출지라도 플라멩코는 결코 독무일 수 없다. 나 역시 혼자 삶의 춤을 출 수 없다. 아름다운 삶의 춤이 되기 위해서는 적절한 시기, 함께 춤 출수 있는 사람, 호응하는 관객이 있어야 한다. 걷고자 하는 길의 방향을 정했으니 머뭇거리지 않는다. 매일 조금씩 걷다 보면 같은 뜻을 가진 좋은 벗들과 내가 있어야 할 곳을 만나게 될 것이다. 오늘도 나는 춤춘다. 춤인양 걷는다. 길 위에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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