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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Jan 29. 2022

'결말 포함 리뷰'에 대한 생각들

창작자의 의도대로 작품을 온전히 감상하는 일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스틸컷

최근에 블로그 댓글로 나눈 대화 중에 그런 게 있었다. 읽고 싶고 보고 싶고 가고 싶은 것/곳들이 나날이 쌓여가는데 늘어나기만 하는 위시리스트를 우리는 다 소화할 수가 없고 앞으로도 그렇다는 것. 지도 앱에 체크해둔 장소가 얼마 뒤 폐업하고 기억해둔 신작 영화를 극장에서 보지 못하며 하트 표시해 두었던 시리즈를 시작도 못 했는데 얼마 뒤 그 작품의 새 시즌이 나온다. 관심을 두는 것의 범주와 범위가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수반되는 현상이라 어쩔 도리가 없다.


요즘의 흔한 화두 중 하나는 "'결말 포함 리뷰'로 그 영화를 다 봤다고 생각하더라"라는 것이다. 일단 이 범주의 영상들이 영상의 소스가 되는 저작권 문제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영상을 편집하는 데 드는 수고를 제외하면 크리에이티브 콘텐츠로서의 가치는 거의 전무하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이러한 소비 패턴 변화는 단순히 '사람들이 콘텐츠를 소비하는 집중력과 참을성이 떨어져서'라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일반적인 집중력과 참을성이 떨어진 경향성은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 스틸컷


수많은 플랫폼에서 콘텐츠가 연일 쏟아지고 그것들 중 상당수는 트렌드의 최전선에 있어 놓치기 아쉬운 마음을 나 또한 가지고 있다. 볼 것은 많은데 시간은 한정적이고 저마다의 일과 관심사로 우리는 충분히 바쁘니까. 그런데 문제는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즉 정해진 속도대로 보지 않으면 그건 '간접 경험'이 아니라 그냥 '정보'에 불과해진다는 것이다. '그 영화에 누가 출연한다'라든가 '주인공은 죽는다' 같은. (그러고 보니, 디즈니+에는 배속 재생이 없네?) 삶은 요약될 수가 없고 그건 삶을 투영한 스토리와 스토리텔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앞에 언급한 대화 중 내게 특히 기억에 남았던 건, 그가 '끝까지 보고 나오기 때문'에 극장에서 영화 보는 일을 좋아한다는 대목이었다. 창작자의 의도를 존중하고 헤아리기 위한 노력이 제대로 된 작품 감상에 필요하다고 믿는 내 입장에서는, 창작자가 의도한 속도대로 보지 않는 건 그 작품을 존중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다. 극장은 영화를 만든 이들이 뜻한 바대로 그것을 감상하는 것에 최적화된 공간이자 환경이다. 몇 장면을 건너뛰거나 편집된 채로 영상을 보면 어떤 말을 하기까지 캐릭터가 하는 고민과 그 전후의 맥락 등을 무시하게 된다. 잘 만든 작품일수록 단 한 프레임도 필요하지 않은 대목이 없다.


롯데시네마 신도림 1관에서(2022.01.19.)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능동적으로 감상하는 일은 경험이 되지만, 줄거리 요약은 단순한 정보를 넘어서지 못한다. 누가 "ㅇㅇㅇ 봤어?"라고 물을 때 "ㅇㅇㅇ 하더라"라고 답할 수 있는 정도에 불과한 것이다. 요즘에는 외국어로 되어 있지 않은 영상 콘텐츠도 국문 자막을 지원하는 경우가 늘었다. 조금 나아가면 이것도 배속 재생을 선호하는 이들을 위한 배려 아닌 배려가 아닌지 짐작되기도 한다. 쓰면서 보니 넷플릭스와 같은 OTT가 많아지고 독점적으로 공개되는 오리지널 콘텐츠가 늘어날수록 그걸 향유하는 입장에서는 마냥 행복한 고민만은 아닌 것이다 싶기도 하다.


쓰고 보니 이건 거의 "요즘 애들은 책을 안 읽어" 류의 말에 그칠지도 모른다. 콘텐츠 감상과 소비의 양태도 나날이 바뀌는데 전통적 의미에서의 '극장에서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본다는 것'만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극장이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이 생각을 바꿀 생각은 없고, 극장에서 계속해서 영화를 볼 수 있으려면 극장 경험이 주는 가치를 옹호해야 한다고 아직 믿는다. 정보는 경험과 동의어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 스틸컷

*인스타그램: @cosmos__j

*모임/강의 등 공지사항: bit.ly/cosmos__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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