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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Dec 31. 2024

픽션을 넘어선 내전의 생생한 공포와 저널리즘의 무력감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2024) 리뷰

종군 사진기자의 시점에서 펼쳐지는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2024)​는 포격이 오가는 최전선에서부터 내전과 일부러 거리를 둔 채 무관심하게 일상을 보내는 곳, "어떤 미국인"이냐고 물으며 총구를 들이대는 곳까지 오가며 내전이 벌어진 가상의 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다. 연대를 특정하지 않지만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2024년 12월 31일 극장 개봉했다는 극장 바깥의 배경 자체가 이 영화를 다른 방식으로 입체적으로 보이도록 만든다.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 스틸컷


작중 3선 대통령은 FBI를 해체하고 시위대를 향한 진압을 허용하는 등 독재에 가까운 정치 행위를 펼치는 것으로 언급된다. 정부에 반기를 들어 연방 탈퇴를 선언한 각 지역 주들의 연합('서부군' 등)이 세력을 나뉘어 산개한 상황에서, 정부는 분리주의자들이 진압되고 있다고 선전하지만 실상은 워싱턴 D.C. 의 함락을 눈앞에 두고 있다. 사회 치안과 통신은 붕괴되고 화폐 가치는 300 US 달러로 샌드위치 하나 정도를 살 수 있을 만큼 무너진다.


워싱턴 D.C.로 직접 향해 대통령을 인터뷰하기로 하고 떠난 '리'(커스틴 던스트)와 일행의 여정을 비추는 로드무비처럼 전반을 구성한 가운데 <시빌 워: 분열의 시대>는 리의 성격처럼 ("그저 사진을 찍을 뿐, 기록은 다른 이에게 맡긴다") 군인들을 바로 뒤에서 따라가며 소니 A7을 가져다 댄다. 베테랑 기자인 리와 대척점 또는 리의 초보 기자 시절을 보는 듯한 인물로 묘사되는 '제시'(케일리 스패니)가 수동 필름 카메라인 니콘 FE2를 쓴다는 설정도 흥미롭다.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 스틸컷


<시빌 워: 분열의 시대>는 작중 내전이 벌어진 배경 또는 각 세력들의 입장을 적극 조명하거나 설명하지 않는다. 그보다 의도적으로 중요하게 다뤄지는 건 조국에 전쟁에 대해 경고하기 위해 사진을 찍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라 한가운데에서 미국인들끼리 남북전쟁에 이어 또다시 내전을 하게 된 상황에 대해 느끼는 리의 무력감이다. 거기에 저널리즘의 힘을 믿기를 포기하지 말자며 여정을 다독이는 인물과, 위험을 무릅쓰고 정확한 초점으로 총과 피를 담는 인물이 있다. 다만 리를 포함한 인물들은 사건을 주동하기보다 수동적으로 환경에 마주 선 관찰자에 가깝다. 또한 그들의 많은 사진들이 인서트 컷으로 담기지만 이것들이 영화가 끝난 뒤 어떤 '기록'을 만들어낼지는 알 수 없다.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 스틸컷


<엑스 마키나>(2015)나 <서던 리치: 소멸의 땅>(2018) 같은 작품들로 규모감 있는 연출과 각본을 보여주기도 했던 알렉스 가랜드 영화답게, <시빌 워: 분열의 시대>는 마치 풀프레임이 아닌 크롭 된 듯한 컷들 사이에서도 충분한 정보 없이 위험한 환경과 상황에 노출된 사진 기자의 시점과 내면도 생생히 담아낸다. 109분에 불과한 짧은 상영시간에도 이 영화가 간접체험 시키는 세계는 단지 픽션으로만 보고 넘기기 쉽지 않다. 수 세대에 걸쳐 쌓아 온 사회의 토대와 질서나 무너졌을 때 한 시민이 겪게 될 수밖에 없는 무기력과 분노, 질문들이 간접적으로 압축되어 있다. (2024.12.31.)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 국내 포스터




12월 31일, 롯데시네마 신도림에서

https://youtu.be/zw2mIJiwVdQ?si=-PJVRCs5rI3DbnAG



*인스타그램: @cosmos__j

*모임/강의 등 공지사항: linktr.ee/cosmos__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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