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영화를 만나고 난 뒤
GV를 진행하기 위해 스크리너를 다섯 번 보고 캡처만 150장을 하고 원작 소설을 두 번 읽고 19,200자 정도 분량의 원고를 준비하고 여러 외신 기사와 인터뷰들을 읽고 봐도, 오직 현장에서만 만들어지는 그 '순간'이라는 게 있다. 영화를 보러 왔든 내 이야기를 들으러 왔든 간에 여기까지 와준, 극장에 걸음 한 사람들의 시간을 낭비하게 하지 않으려는, 조금이라도 뭔가 얻어갈 것이 생기게끔 하거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담아가게끔 하게 하려는 다짐 하나가 현장의 관객들의 눈빛 하나하나를 만나면서 또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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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과의 대화'가 아니라 나 혼자 1시간을 떠드는 시간이지만 그래도 그 눈빛들을 보면서 무언의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니까 준비는 얼마만큼 해도 미약한 것이고 시간은 늘 한정돼 있다. 어떤 사람들이 올지 모르는 만큼 관객들이 듣고 싶을 만한 이야기보다는 전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주로 담기게 되는 이 '영화를 소재로 마음대로 떠들기'가 오신 분들께 헛되지 않은 시간이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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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영화를 만나면 입버릇처럼 하는 이야기가 좋은 이야기는 그것을 만나기 이전으로 되돌아가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회사에서 직전 사업연도 결산과 주주총회 시즌을 지나 보내는 동안 늦은 퇴근 후 저녁과 밤에는 늘 <끝, 새로운 시작>의 스크리너와 소설과 자료들과 함께였다. 개봉작을 다루는 GV를 몇 년 만에 해서 바쁜 업무 와중에 조금은 더 잘 준비해야겠다는 의무감을 가졌던 것 같다. 아는 얼굴도 모르는 얼굴도 그저 극장에서 영화를 함께해 준 고마운 관객들이었다. 재난 이후의 삶에 대한 이 소중한 이야기를 함께한 분들을 어디서든 영화로 또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2025.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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