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애드 아스트라'(2019) 리뷰
'우리의 대답은 언제나 질문으로 시작해서 질문으로 끝나지. 청춘은 다 고아지. 헛된 비유의 문장들을 이마에 새기지. 어디에도 소용없는 문장들이 쌓여만 가지. 위안 없는 사물들의 이름으로 시간을 견뎌내지.'
-이제니, '발 없는 새'에서, 『아마도 아프리카』 수록(창비, 2010)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제임스 그레이 감독의 첫 SF 영화, <애드 아스트라>(2019)를 보고 난 뒤 떠오른 이제니 시인의 위 시는 한없는 적막과 쓸쓸함, 생의 무용함 같은 것을 담고 있다고 느끼며 영화 이야기를 시작하는 인용으로 삼는다. <잃어버린 도시 Z>(2016), <이민자>(2013), <투 러버스>(2008) 등을 연출한 제임스 그레이의 이 영화를 두고, <그래비티>(2013)나 <인터스텔라>(2014), 혹은 <마션>(2015)과 같은 우주 배경의 사이언스 픽션 영화 흥행작을 떠올리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주인공 '로이 맥브라이드'(브래드 피트)는 '써지(Surge) 현상'으로 불리는, 지구에 일어나기 시작한 전류 급증 현상의 원인에 십수 년 전 '리마 프로젝트'를 위해 떠난 아버지가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아버지가 실종된 해왕성 대기권을 향해 떠난다. 이것은 <애드 아스트라>의 큰 줄기를 최대한 짧게 요약해본 것이다. 그러나 여느 영화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고 여기는 바, 특히 <애드 아스트라>에 있어서 사건과 소재 위주의 줄거리를 간추리는 건 딱히 의미가 없어 보인다. 이 이야기는 '로이 맥브라이드'의 내면으로 한없이 깊게 들어가는 감정의 파노라마에 가깝기 때문이다.
'로이'의 아버지가 중심이 된 리마 프로젝트는 지구 밖 미지의 생명체와 인류의 미래를 찾아 나선 탐사 계획이었다. 우주를 향한 인류의 여정에는 줄곧 질문이 있었다. '인간 말고도 우주에 다른 생명체는 있는가?', 그리고 '인류는 지구 바깥에서 살 수 있을까?'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들려오는 뉴스 중 하나는 어떤 행성에서 생명체가 살기에 알맞은 '물의 흔적' 같은 것을 발견했다는 소식이다. 얼마 전에도 태양계 밖, 지구로부터 수십 광년 떨어진 행성에서 물의 흔적을 관측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이것은 오직 흔적이고 추측일 뿐, 인류는 지금껏 실질적으로는 지구를 벗어나지 못했고 숱한 UFO의 출현에도 다른 생명체의 존재를 확신할 만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정말 외계 생명체가 태양계에는 없다면? 적어도 이 시대에는 인류가 지구를 벗어난 삶을 개척할 수 없다면?
앞서 살짝 언급했듯 영화 <애드 아스트라>에서 중심이 되는 건 우주 개척이 아니라 '로이'의 내면에 휘몰아치는 끝없는 질문이다. 아버지는 아직 살아 있을까? 어디에 있을까? 왜 실종되었을까? 십수 년 전 실종된 아버지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고 떠난 '로이'의 여정에는 삶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돌아보게 하는 물음도 따른다. 우주 밖에는 무엇이 있을까. 아니, 인류가 그렇게 열망하고 갈망하는 우주에는 인류가 상상하는 것처럼 대단한 발견이 과연 있을까.
영화가 시각적으로 훌륭하게 묘사하는 건 (물론 붉은 이미지의 화성과 푸른 이미지의 해왕성, 흑백의 달을 대비적으로 그리지만) 태양계 행성들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끝 모를 광막함과 끝없는 '없음'의 세계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우주 저 너머를 무표정하게 바라보는 '로이'의 시선에는 탐사에의 의지보다는 그저 지금 살아있다는 것의 공허함이 더 잘 드러난다. <애드 아스트라>는 '로이'의 시선으로 우주 정거장의 동료들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우주를 개척하는 인류가 앞만 보고 달려가면서 어떤 것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묻는다. 나아가 삶에서, 오지 않은 미래를 향하는 동안 주변의 소중한 많은 것을 쉽게 흘려보내는 것은 아닌지도.
'로이'의 담담하면서 일정한 높낮이의 목소리로 전해지는 내레이션은 그래서 한 번 더 묻는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무엇으로 살아 있는가. 생각해보면 삶에는 '삶'만이 있지 않다. 굳이 '죽음'이라는 테마에까지 이르지는 않더라도,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대단하고 거창한 발견과 성취만이 곁을 찾아오지는 않는다는 점을 상기하는 건 그래서 도움이 된다. 어디로 흘러갈지 자신도 알 수 없는 불확실함 가득한 생에서, 사람은 컬러풀한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것보다 지금 이 순간 '살아있음'을 간신히 유지하는 동안에 진정한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될지 모르겠다. <애드 아스트라>는 우주라는 공간을 빌려와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감과 불안과 쓸쓸함을 '시네마'의 힘으로 삼는다. 이런 이야기는 그래서 필요하다. 살아 있다는 것의 무게를 상기하게 만드는. (2019.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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