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도의 막이 내릴 때'(2018) 리뷰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을 생각할 때 흔히 ‘추리’ 내지는 ‘스릴러’와 같은 키워드를 떠올릴 수 있지만, 당장 영화로 각색된 몇 작품을 떠올려봐도 그 장르 혹은 결을 단어 몇 개로 단순화하기는 쉽지 않다. 최근 개봉작 중 예로 들자면 라이언 존슨의 <나이브스 아웃>(2019) 같은 소위 ‘정통 추리물’(이라고 부르는 게 썩 정확하게 다가오지는 않지만) 같은 작품들이나 아니면 애거서 크리스티 소설과도 조금은 거리가 있어 보인다. 영화 <기도의 막이 내릴 때>(2018)를 보며 다시 그렇게 생각했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스토리텔러로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 있지 않을까 하고.
표면적으로 <기도의 막이 내릴 때>의 이야기는 두 개의 사건을 둘러싼 누군가의 행방을 쫓는 두 명의 형사가 중심이 된다. ‘마츠미야 유헤이’(미조바타 준페이)는 수사를 거듭하면서 오랜만에 사촌이자 다른 지역에서 근무하는 형사인 ‘카가 쿄이치로’(아베 히로시)와 재회하고, 그런 ‘카가’는 사건을 파헤칠수록 과거 자신의 어머니가 남긴 흔적이 이 사건과 관계 있음을 깨닫게 된다.
단서가 잡힐 듯 말 듯하면서도 실마리는 쉽게 보이지 않는다. 유력한 용의자일 것이라고 생각한 인물이 실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주변인으로 밝혀지거나 하는 일들이 계속된다. 그러나 <기도의 막이 내릴 때>는 범인이 누구인지를 찾는 일 자체보다는 그 범인이 ‘왜 그랬을까’를 설명하는 게 더 중요한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중반 이후로 접어들면 관객도 조금씩 배후를 짐작할 수 있을 만큼 <기도의 막이 내릴 때>는 완급을 조절하면서도 진실의 내막을 서서히 드러낸다.
"거짓은 진실의 그림자, 그 그림자에서 무엇을 볼 것인가. 그건 분명 비극만은 아니다. 거짓이 비추는 것은 사람의 마음 그 자체니까."
-카가 쿄이치로, 영화 후반부의 내레이션 중에서
아니, ‘거짓의 내막’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마침내 모든 진실이 밝혀지고 나면 (물론 범죄 자체를 미화하거나 정당화하는 게 아니라) 범인을 향한 적개심이나 심판의 마음이 생기기 보다는 오히려 그 사연에 일부 마음이 움직일 만큼의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게 된다. 터널 안에서 펼쳐지는 후반부 어떤 장면은 꽤 슬프기까지 하다. ‘왜 죽였을까’보다 차라리 ‘어쩌면 그를 죽이기를 선택해야만 했을지도 모르겠구나’ 싶게 되는 마음. 추리 자체에 목적을 두기보다 형사를 주인공으로 하여 한 사건이 일어나기 십수 년 전 과거의 사연들을 들추어내는 <기도의 막이 내릴 때>는 어쩔 수 없이 치밀한 단서와 증거보다는 등장인물들의 회상과 독백, 설명이 후반부 전개의 중심이 된다.
<기도의 막이 내릴 때>의 원작 소설은 ‘가가 형사 시리즈’로 유명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열 편의 연작들 중 마지막 편에 해당한다. (그중 국내에는 일곱 편만 번역 출간돼 있다) 열 편 중 8편에 해당하는 <신참자>는 드라마로도 만들어졌고 이는 물론 아베 히로시가 연기한 ‘카가 쿄이치로’가 주인공이다. 말하자면 <기도의 막이 내릴 때>는 ‘영화’라기보다 ‘드라마의 극장판’에 더 가깝다.
그러나 여느 시리즈들의 속편 혹은 최종편과 달리 <기도의 막이 내릴 때>는 소설 전작들의 배경을 알지 못해도 감상에 지장이 없다. 여기서 밝혀지는 일들이 드라마나 소설 상으로 전작에서 나타난 주인공의 어떤 행동을 설명해주거나 하는 일들은 있지만 전작의 정보를 습득해야 본작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내용을 자세히 말할 수 없지만 이제 제목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차례다. ‘기도의 막이 내릴 때’라는 건 범인으로 밝혀지는 어떤 인물이 후반부에 행하는 (그랬던 것으로 밝혀지는) 어떤 일과 관계가 있다. 자식에게 행복을 선물해주고 싶었던, 그러나 스스로가 짊어진 짐을 도저히 자식에게 전가할 수 없어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만 했던 한 인물과, 그 선택을 온전히 이해해 훗날 그 사람을 진정으로 위하는 또 하나의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다른 인물의 이야기.
극한의 상황으로 막다른 길에 내몰렸을 때 사람들은 저마다의 선택을 한다. 그 선택을 최종적으로 하기까지, 그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할까.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히가시노 게이고는 인간 세상의 필연적인 비극을 말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영화로 옮겨진 <기도의 막이 내릴 때> 역시 그것을 충실히 전하고 있다. (2020.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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