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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글에서 문득 도용된 문장을 발견하는 일

저작권은 준법이 아닌 태도의 문제

by 김동진

몇 년 전 극장에서 신작 영화를 관람한 뒤 인스타그램에서 영화 제목 해시태그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올린 후기 등을 보다 한 게시물에서 익숙한 문장을 봤다. 몇 개 단어나 어미가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특정 부분을 완전히 그대로 출처 및 인용 표기 없이 쓴 대목이었다. 영화 관람 불과 몇 시간 전에 영화 주간지에서 읽은 한 영화평론가의 리뷰로부터 말이다. 언젠가 마음에 들어 메모해 두었다 그 문장이 다른 사람의 글이었음을 잊고 썼던 것일까? 그렇게 선해하기에는 그 게시물이 올라온 날이 영화 주간지 웹사이트에 평론가 리뷰가 게재된 날과 같았다.


그 글뿐이 아니었다. 시간을 조금 더 들여 찾은 도용 게시물은 총 8개 매체를 출처로 한 30건.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도용된 문장은 너무 이질적이라 금방 눈에 띄었다. 어떤 문장은 똑같이 가져다 썼고 또 어떤 문장은 단어가 바뀌거나 접두어 등이 추가되기도 했다.


본능적으로 일단 보이는 것들을 캡처했다. 그때 든 생각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 도대체 얼마나, 언제부터? 그리고 두 번째, 혹시 내가 쓴 문장도? 후자의 생각을 한 까닭은 그가 몇몇 영화 글 쓰는 사람들을 포함해 나도 팔로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쩐지 그가 꼭 전문 기자나 평론가의 문장만 함부로 쓰는 건 아닐 것이란 의심이 들었다. 도용 출처로 확인한 매체들 중 절반은 데스크 또는 편집장, 혹은 해당 리뷰를 작성한 기자/평론가에게 바로 연락할 수 있었고 나머지도 몇 다리를 건너면 직접적인 방식으로 정보를 전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어떤 하나의 일이 그 사람의 살아온 삶과 살아갈 삶 전부를 판단하고 지시할 유일한 근거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닐지 모른다고 믿는 마음을 조금은 가지고 있었다.


추이를 보기로 하며 내 인스타그램 스토리에는 '어라, 뭔가 이 글 내가 본 다른 리뷰랑 비슷한데?'의 뉘앙스로 캡처 내용 하나를 아이디를 가리고 공유했다. 그가 내 스토리를 볼 가능성도 있으므로 스스로 깨달으면 뭔가 행동에 나서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에.



돌아온 것은 '차단'이었다. 내 스토리를 봤겠지. 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인스타그램 계정으로 그의 게시물을 확인해 보는 거였다. 그가 모르는 내 다른 인스타그램 계정 2개로는 접근할 수 있었다. 그는 인스타그램과 블로그 글 몇 개를 급히 삭제하며 흔적을 감췄다. 내 문장을 도용한 것도 아닌데 괘씸했다. 공개적으로 문제를 알리면 더 반응이 있을까 싶은 마음에 한 시간 만에 글을 뚝딱 썼다. "영화 'XXX'를 관람한 뒤 여러 후기들을 보던 중 누군가 다른 평론가의 문장을 출처 없이 무단 도용 중임을 다수 발견했고 고의적인 것으로 의심된다"라는 요지였다.


'바로 올릴까?'


그래도, 그래도 대화 여지가 있지 않을까 하고 차단되지 않은 다른 계정으로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00 님 안녕하세요. 불쑥 메시지를 드리는 것은, 어제 영화 <XXX>를 보고 관련 해시태그를 살피다가 00 님의 피드에서 다른 평론가님의 문장들을 그대로 가져오신 것이 눈에 띄었기 때문입니다. (...) 또한 계정을 비공개로 돌리고 다른 계정으로는 저를 차단하신 것도 의도를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 무단으로 도용한 사실이 없으신 것일까요, 혹은 제가 과민하게 반응을 하는 것일까요?"


그러자, 당황해서 차단한 것 같다,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앞으로 더 생각하고 고민해 개인적인 생각을 쓰겠다는 등의 회신이 왔다. 나는 글을 비공개 처리하는 걸로 해결되지 않으며 사과의 뜻을 공개적으로 표시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담아 다시 회신했다. 알겠다고 했다.



흔히 말하는 '저격' 글은 올리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저작권을 침해하는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그것은 결코 자신의 문장력과 영화를 보는 시선 등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없다는 점, 글 쓰는 사람으로서 묵과할 수 없었다는 점을 담담히 지적하며 그가 문제를 깨닫고 행동해 주길 바랐다. 그런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동이 모여 사회를 이루는 거니까.


당시 독서모임을 몇 달 동안 같이 하면서 알게 된, 문화예술과 창작자 생태계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변호사 분이 있었다. 그 무렵 한 영화 시사회에서 뵙게 되어 간략히 고민을 말씀드리고 이튿날 티타임을 같이 하며 의견을 구했다. 그때 처음 저작권이 법률적으로는 아주 세세하게 구분된다는 걸 배웠다.


1. 저작 인격권
- 1) 공표권, 2) 성명표시권, 3) 동일성 유지권

2. 저작 재산권
- 1) 복제권, 2) 공연권, 3) 공중송신권, 4) 전시권, 5) 배포권, 6) 대여권, 7) 2차적 저작물 작성권


당시 변호사님 표현을 빌리자면 인격권은 정신에 해당하고 재산권은 신체에 해당된다. 몸과 마음은 거의 예외 없이 동시에 침해당하기 마련이다. 언론에 송고된 기사나 칼럼 또는 출판사에서 출간해 유통 중인 책이 아니어도 인간이 사상이나 감정을 창작물의 형태로 표현하는 순간 그 사람은 저작권자가 된다. 내가 발견한 도용 게시물들은 원문을 쓴 기자나 평론가의 저작권 전반을 침해한 것으로 보인다는 판단을 얻었다.



도용, 표절 등 저작권 침해에 대해서는 저작권 침해 금지 청구 또는 손해배상 청구와 같이 민사적으로 접근할 수 있으며 벌금 또는 징역과 같은 형사적인 접근도 가능하다.


[저작권법]

제136조(벌칙) 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거나 이를 병과(倂科)할 수 있다.

(...)

②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거나 이를 병과 할 수 있다.

(...)


나는 저작권자가 아니어서 직접 대응에 한계가 있었다. 제일 확실한 것은 캡처 등 증빙을 토대로 해당 저작권자(들)에게 침해 사실을 알리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곧장 제보하는 대신 문제제기를 먼저 택했다. 며칠 전 이미 써두었던 글 초안에서 내가 봤던 그 문제의 영화 제목은 물론 그 사람을 특정할 만한 걸 모두 지우고,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고 판단될 경우 도용된 각 글들의 저작권자에게 직접 해당 내용을 알리는 방법을 검토하고 실행하겠다"라는 내용을 담아 글을 올렸다.


당시 글을 올린 후 내 스토리에는 이렇게 언급했지만, 정말로 저작권자에게 알려야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다. 박제하듯 그의 글을 공개하는 것은 더더욱.



내 글을 본 지인이나 팔로워 분들이 글에 많이 반응하고 공유해 주셨고, 그는 사과문을 올리고 모든 글을 삭제했다. 원하던 방식은 아니었지만 일단은 그가 책임 있게 글을 쓰기 바라며 저작권자들에게 직접 제보하지 않았다. (그때 캡처한 것들은 여전히 가지고 있다) 내게는 우연히 운 좋게 발견된 것이지만 그에게는 운 나쁜 일이었겠지. 그는 더 이상 날 차단하지 않지만 아이디 등을 바꿔서 글을 쓰고 있고 사실은 그 일이 있은 며칠 뒤부터는 그의 글을 더 확인해 보지 않았다.


그때 내가 문제 삼지 않았다면 그는 지금도 다른 사람들의 문장을 가져다 쓰고 있었을까. 그건 그가 내 문제 제기를 재수 없다고 생각했을지 깨달음 내지 성장의 계기로 삼았을지에 달려 있다. 다시 말해서 그게 글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저작권을 지킨다는 건 법을 떠나 다른 창작자의 수고와 고민을 헤아리고 존중할 줄 아는 일이다. 스탠드와 노트북 백라이트에 의지한 채 눈을 비벼 가며 원고 마감을 지키느라 골몰하는 모든 '쓰는 사람'들의 밤을, 그리고 성실하게 보내는 하루하루를 말이다.


저작권자가 아닌 제3자인 내가 주제넘게 나선 것은 아닐까 가끔 생각한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의 노력을 쉽게 편취하는 대신 나다운 문장을 고민하는 일이 사회적으로 당연한 것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날의 흔적을 돌이킨다. 그때 인스타그램에 쓴 내 글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인스타그램: @cosmos__j

*모임/강의 등 공지사항: linktr.ee/cosmos__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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