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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삭스 전시에서 만난 스페이스 프로그램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29

by 김동진

덕트 테이프나 골판지, 그 외 두루마리 휴지처럼 일상 여러 곳에서 구할 수 있는 물건이나 부품, 재료 들을 질료 삼아 핸드메이드로 만드는 브리콜라주 기법의 작품을 만들어 온 톰 삭스(Tom Sachs)의 '스페이스 프로그램-무한대'를 테마로 한 전시를 보았다. 5만 개의 휴대전화 PCB에서 추출해 낸 금으로 만든 요다 상처럼 거의 장인의 손길로 빚어낸 듯한 작품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런 것도 덕지덕지 이어 붙이면 뭔가가 되는구나' 싶을 만큼 투박해 보이지만 신기롭게 근사한 형태를 갖춘 우주 탐사 도구가 된다. 정밀하게 만든 기능적인 제품이기보다는 사람의 손으로 만든 하나의 조각 같다.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29 톰 삭스 전]에서 선보인 작품들은 그의 취향과 지향점을 알 수 있는 것들로 가득하다. "피카소 작품과 화장실 청소 도구 사이에 어떠한 가치의 차이도 없다"라며, 누군가 만들 수 있을 만큼 완벽한 무언가보다는 자신다운 것으로 만드는 데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고 말하는 그의 작품들은 유년 시절 찰흙으로 만들었다는 니콘 카메라처럼 그의 살아온 여정이 보이는가 하면, 브릿 에클랜드 같은 배우의 사진이 무심히 등장하기도 하고 아타리 사의 클래식 비디오 게임을 연상케 하는 설치 작업도 숨어 있다.


내게는 톰 삭스의 작품들이 적어도 스페이스 프로그램에 한해서라면 어떤 풍자나 은유보다는, 일상의 그 어떤 것도 예술의 소재가 되거나 스토리텔링의 일환이 될 수 있으며 마치 영화가 사이언스픽션/스페이스 오페라의 형태로 우주를 탐험하듯 그가 매료된 테마에 대해 과학 기술의 힘을 빌어 '보여주기'에 집중한 결과물이라는 인상이 전해졌다. (물론 대량 생산/소비보다 수공예의 형태로 직접 만드는 것의 가치에 대해 무언가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이 즉흥적인 아날로그적 재현의 산물들이 꽤 아름답게 몰입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는 점이 신기하기도 했고.



다 보고 나니 데이비드 보위의 'Starman' 같은 음악이 자연스럽게 아른거렸다. 영화가 아닌 것들에 대해 쓰는 기록은 이렇게 비루하지만, 한 예술가의 작업물에 현대 인류의 도전과 실패와 반복의 과정이 누적되어 있고 인간다움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 집약되어 있는 건 꽤 근사한 체험이기도 했다. 톰 삭스가 인터뷰에서 말하듯 우주 탐사는 "경제적인 이익이 창출되지도 않는데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계속되고 있는" 프로젝트다. 톰 삭스의 스페이스 프로그램이 아니어도, 어쩌면 여러 예술 자체가 그와 마찬가지가 아닐까. 단지 이해의 노력과 과정 자체의 의의가 헛되지 않다는 믿음만으로 오랜 세월 지속되어 왔던 것들일지도 모른다.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29 톰 삭스 전]

(2025.04.25.~2025.09.07., 동대문디자인플라자)

https://mobileticket.interpark.com/goods/25006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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