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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나본데,

어떤 후일담

by 김동진

몇 년 전 어떤 사람이 다른 기자/평론가 리뷰의 문장들을 도용해 자기 글처럼 인스타그램과 블로그에 올리고 있는 걸 정말 우연한 계기로 발견하고 문제를 제기한 일이 있었다. 그날 그 영화를 극장에서 관람하지 않았더라면, 보고 나서 인스타그램 해시태그를 훑어보지 않았더라면 찾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처음에는 그가 순전히 저작권에 대해 잘 몰라서, 그냥 그 기자/평론가의 문장이 마음에 들어서 자기 글에 스크랩하듯 옮겨 적은 게 아닐까 선의로 해석하려고 노력했고 문제 자체를 꺼낼까 말까도 일주일 동안 고민했었다. 이유는 하나였다. 내가 저작권자는 아니었으니까. 전수조사까지 하지는 않았지만 그때 찾았던 도용 사례만 8개 매체로부터 30건. 그 절반은 해당 저작권자인 기자/평론가에게 직접 연락할 수 있는 것들이었으며 나머지 절반도 해당 매체의 편집장/데스크에게 직접 연락하거나 한 다리 정도를 거쳐서 저작권 침해 사실을 알릴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먼저 그에게 대화를 시도했다. 처음에는 나를 차단하고 몇몇 게시물을 지우기 바빴지만, 저작권자에게 직접 알릴 수 있고 개선되지 않을 시 당신을 공개할 수 있음을 경고하자 그는 결국 잘못을 인정하고 차단을 해제한 뒤 자신의 글들을 모두 지웠다. 워낙 문제 될 글이 많았던 것인지 글을 지운 게 아니라 아예 블로그/인스타그램을 싹 밀어버린 결과물이기는 했지만.


원하던 바에 미치지는 못했음에도 어떤 하나의 일이 그 사람의 살아온 삶과 살아갈 삶 전부를 판단하고 지시할 유일한 근거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닐지 모른다고 믿는 마음을 조금은 가지고 있었기에 이후에는 그 일에 대해 생각 자체를 하지 않고 잊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어느 날부터 그가 비공개 가(假) 계정으로 내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염탐해오고 있었음을 알게 된 게 바로 최근의 일이다. 스토리를 열람한 사람 목록에 보이기 시작한, 낯설지만 분명히 나를 향해 불쾌감을 주는 걸 넘어 어떤 위협 내지 적개심을 가지고 있는 듯한 아이디. 나는 가만히 앉아 글만 쓰는 사람이 아닌데 그렇게 해도 모를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겠지. 몇 가지 경로로 계정의 주인이 그 사람이라고 특정하고 검증하는 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경영권 분쟁 속에 여러 정보를 어떻게든 찾아내야만 하는 상황도 자주 겪다 보니 거의 광기에 가깝게 어떤 주제에 대해 검색할 수 있는 역량 같은 게 타의적으로 생겼다고 해야 할까...


그 계정의 ID는 'kill_dongjin'이었다. 이거 봐라. 날 죽여버린다고? 아니, 그보다 며칠 전에 눈에 띄었던 ID는 'I_will_fkill_u'였고. 오호라. (I know who the f**k you are!) 그건 단순히 어떤 분노를 담은 아이디였을까. 그냥 심술과 장난일까. 딱히 누구에게 원한을 산 적도 없고, 그 정도가 아니더라도 36년을 넘게 살면서 인간관계에 있어서 누구와도 트러블을 만든 적이 없어서 굳이 자세히 뒤져보지 않았더라도 그 비공개 계정의 주인이 누구인지 아마도 간파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노출시킨 적 없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더 가지고 있다. 비공개 계정으로만 날 훔쳐보고 자기 계정으로는 날 차단한다고 해도 소용없다는 뜻이다. 오히려 내 입장에서는 그가 스스로 떳떳하지 못한 게 있어서 내가 자기 계정을 못 보도록 하는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당시 나는 명백한 저작권 침해에 대해 다른 책 모임을 하면서 알게 된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님의 자문도 받았고, 충분히 더 공개적인 방식으로 그 사람에 대해 공론화할 수도 있었다. 문제제기를 위한 글을 올렸을 때도 그를 특정할 수 있는 정보는 아무것도 포함하지 않았었다. 그가 스스로 문제를 깨닫고 개선해 나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름대로는 가능한 선에서 선처해 준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었는데. 저작권자도 아닌 사람이 주제넘게 나서는 건 아닐까 하는 고민도 들었었고 말이다. 아무래도 내가 그때 잘못 판단했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이걸 더 문제 삼아봐? 그는 자기 잘못이나 실수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단지 운 나쁘게 나 때문에 게시물들을 지워야만 했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건 차차 더 생각해 보겠다.


그는 영상 관련 전공을 거쳐 단편 영화를 만드는 것으로 보이고 본업인지 부업인지 아마 카페를 운영하는 것도 같다. 연출만 하는 게 아니라 촬영, 편집도 하고 각본도 쓰는 듯한데... 그보다 정작 더 중요한 것은 배우지 못한 모양이다. 문화예술계에 종사하는 창작자로서 선을 넘지 않는 것. 그는 그때에도 그랬고 지금도 이미 선을 넘었다. 궁리 중인 것은 넓은 의미에서 두 가지다. 하나는 지난번보다 본격적으로 나아간 조치를 검토하고 법률 자문을 거쳐 실행하는 것. 두 번째는 '일단은' 더 지켜보는 거다. 일단 전자. 저작권에 대해서라면 그가 당시 올렸던 글 들은 이미 다 삭제되어 있고 내 캡처로만 남아 있기 때문에 지금에 와서 쓰는 건 모호하다. 아마도 생각해 볼 관건은 저 아이디 자체에 대한 부분. 그럼에도 아직은 후자로 충분하기를 바라고 있다. 누구든 당신을 주시하고 있거나 보고 있을 수 있으니 행동거지에 조심을 기하라는 무언의 신호. 그래서 그가 자신의 행동이 진정 잘못되었다는 걸 깨닫고 염탐을 멈추는 것. 다시는 같은 문제를 반복하지 않고 자기만의 길을 자기 힘으로 걷는 것. 영화 연출이든 각본이든 뭐든 자기 분야에서 스스로 성숙하고 성장한 사람이 되는 것. 사람이라면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성찰할 줄도 알아야만 하니까.


당시 내 인스타그램에 문제제기를 위해 올렸던 게시물은 아직 지우지 않은 채 그대로 있다. 보다 공식적인 차원의 문제를 삼기 직전까지 수집했던 증빙 자료들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그때도 충분히 알아듣게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선을 넘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것은 그 선의 두께만큼이나 미세한 차이에서 비롯한다. 지금 드는 생각은... "재밌군, 재밌구먼." 곧이어 그는 내 본 계정을 차단했는데, 이건 비공개 계정으로 나를 염탐하면서 의식하고 있다는 점에 한 번 더 쐐기를 박는 것 같았다. 문제는 확실할 때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삼아야 하니까 조용히 두고 보는 중이다. (2025.07.01.)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있는 것이다. 아래는 그로부터 더 두고 보다가 얼마의 시일이 지난 뒤 보낸 메시지이다. 기록용으로 남겨둔다.


https://brunch.co.kr/@cosmos-j/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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