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렇게 영화를 애호하는 마음으로

김소미 기자의 산문 '불이 켜지기 전에'(2025, 마음산책)

by 김동진

한때 잠시나마 리뷰를 넘어서 비평을 업으로 삼기를 꿈꿨던 적이 있다. 사실은 직업으로서 현실적인 벽에 많이 부딪혔다.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내게 비평의 자질이 있는가 하는 물음에 있었다. 리뷰 몇 년 쓰고 홍보마케팅(과 약간의 배급) 몇 년 해봤다고 되는 게 아니라 내게는 그만큼의 치열함은 있지 않았던 것 같다. 정말 비평에 가깝다 할 수 있는 글은 가뭄에 콩 나듯 썼다. 리뷰와 에세이에 걸친 그 어느 위치의 글을 쓰면서 '성실한 기록을 꾸준히 할 수만 있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오다 보니 어영부영 글을 쓴 지 13년째가 됐다. 감사하게도 나를 쓰는 사람으로 정의 또는 호명해 준 건 언제나 타자와 타인들이었다. 기고나 출강 제안이 올 때면 이메일에는 언제나 '작가님'(경우에 따라 선생님, 평론가님 등 다양했다) 같은 호칭이 붙어 있었고 브런치(브런치스토리)는 이미 2025년부터 거기 글 쓰는 모든 이를 작가로 명명했다. 그렇지, 어떤 식으로든 글의 형태로 무언가 짓거나 쓰고 있으니 누구나 그렇듯 나 또한 작가지.


9월 12일, 마음산책에서 열린 김소미 기자의 북토크에서


"훌륭한 영화를 보고 난 뒤에 마음 안에 벅차오르는 느낌을 우리는 흔히 감동이라고 일컫지만 어떤 경우에는 충동에 더 가깝다. 앞으로 내 삶이 더욱 제대로 펼쳐질 것만 같은 느낌, 영화로 말미암아 더 나은 마음으로 살아볼 수 있을 것만 같은 충동을 나는 영화로 인해 처음 느꼈다."

-김소미, 『불이 켜지기 전에』, 마음산책, 2025, 30쪽


속에서 이야기가 끓어오르게 해주는 좋은 영화를 만나는 순간 또한 쓰는 사람일 수 있게 해 주는 무엇이었다. 그러니까 내게는 그 정도로 각별한 영화를 마주해야만 겨우 쓸 말이 샘솟듯 자라날 때가 많았다. 그건 극장에서의 관람 경험을 애호하는 마음에 비해 글의 형태로 치열하게 "영화 이후의 삶"을 복기하는 마음은 선택적으로만 발동했을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어디까지나 취미의 영역이었으니까.


안동으로 향하던 버스에서 김소미 기자의 책과 함께였다


덜컹거리는 고속버스 안에서도 김소미 기자의 책을 펼쳐 페이지에 하나씩 머무르고 장을 넘기는 경험은 단지 각별한 정도를 넘어 내게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한, 그러한 문장을 빚는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한 벅찬 마음을 주는 시간이었다. 영화와 극장을 향한 겸허하고 근면한 애정을 갖게 해주는, 그러한 태도를 직업으로 가진 필자의 말들 덕분에 나 역시 앞으로 만날 아직 시작되지 않은 영화들을 가늠해 본다. 아마도 한동안 이만한 산문을 더 만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영화처럼 살 수 없지만 영화로부터 삶의 토템과 리추얼, 주제가를 이끌어낼 수는 있다. 실재하는 '내 책상 위의 천사'들은 사랑하는 영화들의 장면에서 걸어나왔다. 그들과 함께하는 삶의 유치함과 기쁨을 오래 누리려고 나는 이렇게나 길게 쓴다." (197쪽)


https://m.yes24.com/goods/detail/152656785


네, 오래 영화의 친구로 있겠습니다

(2025.09.12.)



*인스타그램: @cosmos__j

*모임/강의 등 공지사항: linktr.ee/cosmos__j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