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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게 알고 믿던 세계의 '모가지'를 날리는 일

영화 '어쩔수가없다'(2025) 리뷰

by 김동진

그의 영화에서 매번 그래왔듯 뒤틀리고 불화하는 것들이 서사를 움직이고 이미지화하는 동력이 된다. 그렇지만 어쩐지 관객과 인물 사이에는 끊임없이 쌍안경 너머로 보는 듯한 거리감이 생긴다. 너무 열심히 사느라 시대에 뒤처진 인물의 표상은 얼핏 보편적이거나 익숙한 모습이지만 이것은 그저 가장들 간의 자조에 (의도적으로) 그치고 살인할 재능도 의지도 없는 인물이 이유를 찾기 위해 면접을 지속하는 과정은 어느새 그 행로를 가늠할 만하다.

장난스러운 특유의 유머가 장벽을 낮추고 종종 무심한 듯 등장하는 의뭉스러운 카메라의 위치도 여전하다. 당신이 지금 보고 있는 건 박찬욱의 영화가 맞다고 여기저기서 모든 방식으로 말해주고 보여주고 들려주며 지시하고 있지만 어쩐지 깊이 일렁이는 마음으로 거기 흠뻑 빠져든 채 젖어 있게 만드는 영화이기보다는 가벼운 팔짱을 낀 채 컷과 신을 되감고 싶게 만드는 영화에 가까웠다. '상대적으로' 직전 영화보다는 덜 좋았다는 뜻인데 (이렇게 들어선 세계도 나쁘지는 않았다) 이렇게 제대로 형언하기도 어려운 마음과 감상에 대해서는 누군가를 붙잡고 한참은 더 이야기를 꺼내고 듣고 싶게 된다. 이 관람 경험도 여지없이 다시 거기 걸어 들어갈 수밖에 없게 되는 세계를 만나는 일이었다.


영화 '어쩔수가없다' 스틸컷


어금니가 뽑힌 자리에 치아는 다시 자라나지 않지만 살과 뼈 위에 심은 사과나무는 함구해도 속아줘도 계속해서 거기 그 자리에 뿌리내린다. 어떤 '평범한' 정상가족 일상의 지속마저 끊임없이 누군가를 또는 스스로를 대체해 버리는 방식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음을 상기하게 한다. 자기 손으로 이루었다고 생각하거나 거기 기어이 도취될 만큼의 업적도 실은 곁에서 비밀을 함구해 주는 사람이 있어 가능했고 수없이 그럼에도 안부를 물어주는 사람이 있어 지켜졌기도 하다는 점을 잊을 수 없다.


사실 복잡한 마음으로 상영관을 나서게 된 이유는 조금 다른 데 있었다. 종이가 그랬거나 그렇게 되고 있듯 언젠가 영화도 다른 무엇에 대체되어 버릴까. 내가 만나오고 살아온 세계도 별로 대단할 것 없고 그저 누군가의 잔영을 좇는 안간힘 정도에 지나지 않게 될까. 후반부 한 장면. 걸어가는 인물의 뒤로 커다랗게 공허한 공장의 조명이 한 걸음씩 꺼지며 어둠이 따라온다. 그 속도는 분명 걷는 속도보다 빠른 듯하다. 마치 지금 알고 믿는 세계도 언제든 힘없이 무너지고 대체될 수 있다고 도끼로 찍어 내리는 것 같다. 지금껏 내게 인생의 영화는 주인공마저 언젠가 불 꺼진 어둠 너머로 사라질 것임을 암시한 채 끝나는 영화보다는 함께 나를 붙잡고 세상 밖으로 나와 이것이 영화였다고 이 영화에 기대어 우리 다시 일어나 보자고 고개를 들어주는 영화에 가까웠다. <어쩔수가없다>는 전자였고 나는 흙 묻은 손으로 조금 찢어진 우산을 든 채 거기 마침 비도 내리고 있음을 알면서 걸어 들어가려 한다. 내가 만나지 못한 무엇이 거기 있어, 아니 그 세계가 지금 이리로 오고 있어서 아직은 망설이는 채로. (그래서 일단 영화를 한 번 이상 더 보고 생각을 보충해 볼 작정이다.) (2025.09.27.)


영화 '어쩔수가없다' 포스터


'불가능한 대화와 불충분한 대화

비에 젖은 창문과 빗물조차 들어올 수 없는 복도

우산을 든 손과 들지 않은 손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인과 시인은 함께 읽었다

비에 젖은 몇 편의 시를'

-나희덕, 「그들이 읽은 것은」


영화 '어쩔수가없다' 스틸컷
영화 '어쩔수가없다' 스틸컷
영화 '어쩔수가없다' 스틸컷

(9월 24일 개봉, 139분, 15세 이상 관람가.)



*인스타그램: @cosmos__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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