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다시 살게 하는 도시

2025년 12월, 도쿄에서

by 김동진

1.


7박 8일. 이 정도의 긴 여정은 2017년 겨울에 떠난 뉴욕 이후 8년 만이었다. 조금은 다른 시간을 살고 있는 것 같다는 감각은 정말이었다. 폭설 같은 첫눈의 질퍽거림을 서울에서 만난 직후 떠나온 도쿄는 아직 겨울이 와 있지 않았다. 아직 낙엽이 되지 않은 채 나무에 마지막처럼 매달려 있는 노랗거나 붉은 단풍들과 물닭 등의 처음 본 새들과 호숫가에서 꾸벅꾸벅 하는 가창오리들이 있었다. 친구와 그런 얘길 했다. 이 도시는 내향이 어떤 미덕처럼 다가오는 곳이라고. 혼자 어디로든 가도 상관없다는 듯이 엉뚱한 출구로 나와도 지하철을 제시간에 못 타도 가려던 식당이나 바에 자리가 없어도 아무 방향으로든 가도 괜찮을 곳이라고. 메가시티의 광막함이 내게 온통 내리는 압도감이, 감당할 수 없는 외로움인 동시에 언제든 다음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설렘을 동반하는 것 같다고. 소음 곁에서도 침잠할 수 있는 어떤 안전감과, 혼자를 이해해 주는 여유와, 떠나온 뒤를 돌아보는 마음도 헤아려 주는 자상함이 뒤섞인 나날들과 공간들에 있었다. 이 도쿄라는 곳에 대해 말하자면.


완전히 혼자의 시간이기만 했던 건 아니었다. 아오모리 연안의 지진 소식에 내게 잘 있냐고 안부를 물어온 이도, 여기는 꼭 가보라고 구글맵에서 몇 군데를 정성스레 짚어 말해준 이도, 이 도시가 주는 정서에 대해 비슷한 공감대를 나눈 이도 있었으니까. 무엇보다 제 업을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진심을 다해 방문객을 맞이하는 이 무심한 듯 다정한 도심과 골목의 상인들과 점원들이 여기저기 있었으니까. 하루하루 생각하거나 말했다. 이런 말들. 나 여기 다시 오고 싶어. 돌아가기 싫어. 여기 너무 좋아. 다음엔 누군가와 같이 오면 좋을 것 같아.


올 때마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노래가 나오던 숙소 근처의 스페셜티 카페에서는 기내에서 읽던 시집을 이어서 들추거나 편지지를 꺼내 긴 답장을 끼적이거나 지나가는 사람 구경을 했다. 몇 군데의 오뎅 바와 이자카야에서는 내일이 없을 것처럼 쇼추를 몇 잔씩 시키고 먹고 싶은 안주 들을 이것저것 원없이 주문했다. 새벽의 긴자 거리를 거닐던 동안에는 사소한 농담들을 생각했고 바로 이런 장면들로 여행의 추억이 각인될 것이라고 짐작했다. 기내에서 들을 요량으로 미리 만들어 오프라인 저장해 둔 유튜브 뮤직 재생목록의 노랫말들은 그 노랠 듣지 않는 동안에도 곁에 있었다. "전쟁터에 나갈 때 네가 진짜 할 일은 친구가 누구인지를 아는 거야"* 같은 말이나 "계절이 바뀌지 않았으면 해"**라든가 "우리가 살아가는 일은 마치 귀를 막은 채 화음을 쌓는 일 같지만 난 그 노랠 사랑해"*** 같은 말들. 때로는 말 없이 가만히 내려앉는 피아노 음계들.


가장 마음이 탁 트인 순간은 영화 <퍼펙트 데이즈>(2024) 속 히라야마가 살던 집과 근처 스카이트리의 빛과 정경을 보던 저녁이었다. 히라야마가 매일 아침 출근 전 집 앞에서 가만히 미소 짓던 순간이 스쳤다. 세상이 아직 잠에서 덜 깬 얼굴을 하고 제게 비친 그림자가 짧아져 있을 시간에 늘 하루를 시작하던 사람. 그림자가 길어지고 희미해지고 어둑어둑한 도시가 조금씩 잠을 청하려는 시간에 그 수많은 아침을 떠올렸다. 그거야말로 비일상적으로 시간을 사는 방법이 아닌가 하고. 골목 어디에나 있을 것 같은 지극히 평범한 다세대 주택의 드문드문 불 켜진 풍경과 주차된 1톤 트럭과 자판기 앞의 모습에서 어쩐지 다른 장소로 떠나고 싶지 않았다. 한참을 서 있다 결국 걸음을 떼었고 금세 허기가 져 지하철역 근방의 작은 카페에서 치즈 감자 고로케와 커피를 시켰다.


이방인이 된 덕분에 비로소 아직 다가오지 않은 내일을 기꺼이 맞이할 수 있게 된 것 같은 기분에 대해 생각한다. 로밍한 스마트폰이 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돌아가야 할 곳의 그것과는 거의 무엇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 날들 동안 하루가 조금 느리게 가길 바랐기 때문인 것 같다. 동시에 이 고요한 밤낮이 내게 먹먹한 기억으로 결국 남게 될 것이라는 예감. 그 예감이 정말인 감각이 될 것이라는 예감도.



2.


처음 잡았던 일정은 6박 7일이었다. 그러다 이 도시에 오기도 전부터 스스로 이곳을 아주 좋아하게 될 것이라는 기미가 엄습해오고 있었다. 주변에 도쿄를 좋아하거나 자주 가는 이들이 여럿 있어 그들로부터 받은 영향도 물론 있고 특히 떠나기 이 주 전부턴 몇 사람과 도쿄 이야길 하면서 구글맵에 저장해 두는 장소가 하나 둘 늘어나면서 기대감도 더 커졌다. 근미래의 어떤 작정을 하는 일이 지금 미리 주는 행복감도 물론이다. 어딜 떠나든 돌아갈 곳이 있어야 하고 일상을 지켜야 하므로 여행지에서 지나친 낭만으로 비일상을 신화화 또는 신격화 하는 일을 어느 정도는 경계하려 하는 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여행만큼은 어딘지 내게 연말결산 같은 시간이 될 것이라는 직감이 있었다.


지금의 회사에 만 5년을 근속하면서 받게 된 5일의 장기근속 휴가. ERP에 휴가가 정말로 부여되기도 전부터 미리 예약해 둔 항공편과 숙소. 이 도시가 내게 대단한 선물을 주진 않겠지만 하루빨리 저 같은 표준시를 쓰는 천이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의 시간을 만나고 싶다는 설렘이 자랐다. 다시 말해 그저 기억 한 조각을 추가하는 게 아니라 한 시절의 추억을 만들고 올 수 있겠다는 어떤 떨림과도 같은 예감이었다.


나 하루 더 있을래.


도쿄를 좋아하는 친구와 에세이 이야기를 하다 도쿄 이야기를 경유해 제법 충동적으로 예약을 변경했다. 동네 자주 가는 바에서 트립닷컴 앱에 들어가 항공권을 변경하고 1박 더 머무를 숙소를 잡고 구글 캘린더에 저장해 둔 일정을 수정한 건 출국하기 불과 5일 전이었다.


가지고 간 미러리스 카메라로 찍은 몇 백 장의 사진들 만큼이나, 보고 듣고 감각한 것들을 단어와 문장으로 나열하면 끝없이 이야기를 펼칠 수 있을 것만 같다. 늦은 밤 숙소 체크인을 한 다음날 처음 조식으로 먹은 어니언 콘소메 수프의 맛. 첫 아침 공기. 처음 손에 쥔 지하철 패스권의 낯선 촉감. 현지에서 처음 마신 쇼추의 맛. 직접 노트의 표지와 속지 재질과 마감을 선택할 수 있는, 문구 덕후라면 몇 시간이고 홀릴 수 있는 문구점. 주문 제작한 노트가 완성되길 기다리는 동안 아사쿠사바시 거리를 걷다가 무심코 만난 중고서점과 대충 눈에 띈 카페 벨로체에서 마신 블랙 커피와 옥수수 빵. 우에노 공원의 호숫가에 가득 줄지어 정박된 오리배들의 곁에서 고요히 낮잠 자는 수십 마리의 오리들과 펜스에 홀연히 서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중얼거리는 것 같은 붉은부리갈매기 한 마리. 블루노트에서 재즈 공연을 보고 난 뒤 오모테산도 역 앞에서 처음 만난 크리스마스 일루미네이션 장식. 발가락에 물집이 잡힌 것도 모른 채 하염 없이 걷다가 대뜸 만난 도쿄타워 앞에서 느낀 고독감과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린 시바 공원변을 걸으면서 만난, 캐롤이 흘러나오던 밤공기와 바닥에 깔린 터진 은행 냄새.


신바시 인근에서 우연히 찾아 간 2층 바는 거짓말처럼 완전했다. 스시야의 안쪽으로 커튼으로 된 문을 살며시 밀고 들어가면 만나게 되는 낮은 조도와 차분한 공기를 가진 곳. 호두나무로 된 등받이가 편안한 의자와 그보다 조금 더 밝은 갈색의 오크나무 테이블은 앉는 순간 이미 뜨거운 물수건을 손에 쥔 것처럼 포근했다. 바는 조명이 너무 밝은 곳보단 어두운 쪽이 좋고 천장이 낮으면 편안함을 준다. 세련된 품위가 느껴지는 이곳에서는 클래식 올드패션드 칵테일에 말차와 블랙 소이빈 티 등을 포인트로 가미한 이스트 엔드 패션드 칵테일이 눈에 띄었다. 바텐더는 영어가 유창해 스몰토크도 위스키 이야기도 막힘이 없었다. '일상에 미묘하게 녹아든 특별한 순간을 선사하기 위해' 마련했다는 공간의 모토는 적확했고 오픈한 지 불과 몇 개월 밖에 되지 않았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의 양감이 있는 곳이었다. 새벽으로 건너가기 전 밤을 더 붙잡는 기분으로 두 번째로 주문할 칵테일을 이미 마음에 자연스럽게 담고 있었다. 오늘은 다음 장소로 옮길 필요 없겠구나. 여정의 후반부에 그렇게 다가서고 있었다.


돌아갈 날이 가까워올수록 중요하게 생각하고 싶은 것들을 제외한 나머지가 더 흐릿해졌다. 별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나 가고 싶지 않은 모임, 타협하고 양보할 수 없는 것, 내게 호의적이지 않거나 내가 도망쳐 올 수밖에 없었던 걸 소거하면 현재를 하나의 시절로 기억하게 되었을 때 남기고 싶은 것들만이 또렷이 곁에 남았다. 적어도 지금 가장 중요하게 떠오르는 한 사람에게 편지를 썼고, 마음이 가장 의지하고 믿는, 그들 삶의 법정에서 기꺼이 내 증언을 보탤 이들을 위해 살 것을 골랐다. 무엇에도 쫓기지 않고 음악을 듣고 그림을 보고 도시의 낯선 얼굴들 틈에 젖어 있었다. 돌아갈 수 없는 날들 대신 지나가고 있는 시간들이 눈처럼 날 덮어주고 있던 새벽이었다. 나 이렇게 가을을 잘 보냈구나, 하는 다독임 속에 호텔 베개에 몸을 옆으로 뉘였다. 도망치듯 떠나오고서야 이제는 도망치지 않고 마음속 핀 조명을 밝혀둔 내 남은 몇 조각에 더 헌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와 같이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본 적도, 날 이해해 주는 이들의 기척에 기대어 본 적도 없었구나. 이 페이지 들을 절대 놓치지 말아야지. 돌아가면 앞으로 올 사랑을 포기하지 않아야지. 서울에서 웅얼거리기 시작한 것들을 도쿄에서 입 밖과 손 안에서 자음과 모음으로 발화했다.



3.


역 플랫폼에 서서 기다리고 있으면 다음 열차가 오듯 예정된 귀국날도 결국은 도래했다. 게이세이 우에노 역에서 우리나라로 따지면 공항철도와 ITX 열차를 섞은 듯한 스카이라이너 열차를 타야 하는데 예약한 티켓을 발권하는 데에만 긴 줄을 15분 가량 서 있어야 했다. 나리타 공항에서는 보안 검색대 직원이 내 필통 속 만년필과 파우치 속 공병에 담긴 향수와 마우스스프레이 같은 소품 하나하나에 흥미를 보이며 주목한 탓에 출국 수속에도 긴 시간이 걸렸다. 친구의 부탁으로 출국장 면세점에서 산 술은 면세품이면 따로 실을 수 있을 거라고 짐작했고 면세점 직원도 기내 반입에 문제 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항공사 정책상 기내 반입 가능한 수하물 수 제한에 걸려 당혹스러운 땀을 흘려 가면서 휴대할 크로스백과 짐 칸에 넣을 큰 캔버스 가방 사이에서 퍼즐을 짜맞추듯 공간을 재조정해야 했다. 양손과 어깨에 짐을 이고 지고 통로 좌석 17H에 앉은 시각은 비행기 출발 5분 전이었다.


그렇지만 어떤 해프닝에도 '그래도 괜찮았다'라는 실감이 기억에 남았다. 타지에서의 일주일은 내내 그런 순간의 연쇄로 채워지기도 했다. 지하철 막차가 끊긴 시간이면 충분히 걸어갈 만한 거리이니 걸어가면 된다. 가려던 주점에 자리가 없다면 근처 다른 곳을 찾아가면 된다.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딱히 사고 싶은 게 없으면 그냥 구경만 해도 좋다. 말이 잘 안 통하면 번역 앱을 켜거나 영어를 쓰면 된다. (가끔은 한국어로 메뉴를 안내해 주는 직원도 있었다) 영어나 한국어로 된 메뉴가 없어도 더듬더듬 손으로 짚어 가며 말을 처음 배우는 사람처럼 말해도 결국 통한다. 너그러운 사람과의 대화가 나를 편안하게 하듯이, 비슷한 정서를 가진 도시가 기어이 안겨주는 위로와 안정이 있었다. 아무도 의지할 데 없는 이국에서 나는 그래서 불안하지 않았다.


아무 데나 대충 찾아서 간 식당. 눈에 보인 카페. 저기 갈까 하고 간 주점들은 대부분 구글맵 평점과는 관련 없이 좋은 곳들이었다. 지금껏 여행에서 이렇게 많은 쇼핑을 해 본 적 있었나 싶을 정도로 백화점, 문구점, 서점, 카페, 편집숍 할 것 없이 쓰고 또 썼다. 28인치 캐리어는 내 생각보다 더 품이 넉넉했다. 환전해 간 엔화는 진작 동이 났다. 거기엔 나 자신을 위한 선물 내지 사치도 한가득 포함돼 있지만 가을 내내 마음을 쓰고 나눈 가까운 몇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다고 생각한 물건들이 주저없이 캐리어에 들어갈 만큼 골라져 있었다. 작지만 결 맞는 발향을 가진 인센스 스틱부터 디즈니스토어에서 산 한정판 인형 키링, 향수 체험 키트와 사진집, 말의 해를 기념하는 일력과 엽서와 편지지들까지.



4.


도쿄에서의 시간은 그저 놀고 쉬기만 하는 시간이 아니라 내 인생에 무엇이 필요하고, 어떤 사람과 가치가 중요하며, 장차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내 주변의 어떤 것들을 돌아보고 스치거나 머무를 것인지에 대해 반추하거나 결심해보는 나날들이었다. 같은 시차의 다른 계절을 살고 오니 어쩐지 매년 십이월이 되기만 하면 지금을 앓을 것만 같지만 다시 오고 싶은 장소들이 생겼다는 것, 추억이 된 순간들이 만들어졌다는 건 무엇으로도 어떤 설명으로도 대체될 수 없겠다.


훗날 지금은 어떤 시간으로 기억될까. 분명히 알 수 있으리라는 또렷한 확신보다는 여전히 아무것도 확신할 순 없겟다는 것들을 한가득 쌓은 채 귀국했다. 그리 쌀쌀하지 않은 가을날을 이국에서 지내고 온 뒤 돌아와 마주한 인천국제공항 입국장 바깥은 눈인지 비인지 모를 것이 쏟아지고 있었다. 정말로 가을이 끝난 것만 같구나.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아야 한다고 하는데 이노카시라 공원의 한 사찰에서 동전과 함께 가만히 향 냄새를 맡으며 빈 소원은 속으로 지금도 중얼거리고 있다.


첼시 부츠를 신고 이 만 보를 넘게 걸은 이튿날부터 눈에 띈, 새끼발가락 한쪽에 잡힌 커다란 물집은 아직도 다 없어지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여행은 아무렇게나 향하는 듯하지만 어쩌면 스스로의 한계점 내지 임계점에 다다른 뒤 마침내 넘어서는 시간들로도 채워진다. 어디로든 끝까지 가도 되겠다는 듯이. 매 시간 세상의 끝을 지나 또 다른 관문에 도착하고 있다는 듯이. 귀국 나흘 전부터 편한 신발만 신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남은 이 물집은 마치 여행의 인장 같다. 새로 산 필통 속 새로 산 만년필을 꺼내고 다이칸야마 츠타야 서점에서 집어든 전 세계 각지 서점의 에코백을 소개한 사진집을 꺼내고 다음 트레바리 모임책의 여남은 페이지를 마저 훑어 넘기면서 그제야 비일상에서 다시 벗어나 일상으로 되돌아왔다는 걸 체감한다. 이제 정말 서울이구나. 이걸 끼적거리고 나니 공항에서부터 내리던 눈비가 그쳐 있었다.


너무 좋은 문학 작품이나 영화 또는 누군가의 글을 만나고 나면 내 삶이 그 이전까지와는 조금 다른 방향의 앞에 있게 되었다는 실감을 근거 없이 덮어놓고 하게 된다. 이번엔 여행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잔향이 남은 손목에 코를 가져다 대면서 지나온 것을 한 번 더 돌아보는 법을 익힌 것 같고 예정이 틀어질 때에도 스스로 먼저 괜찮네, 재밌네, 아무래도 좋겠지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불과 얼마전까진 좋아하는 겨울이 오지 않았으면, 가을이 좀 더 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떠나오고 다시 돌아오기 전까지는. 귀국하기 전날 새벽 일기에는 비로소 이 가을의 끝이다, 라고 썼다. 한 시절이 끝나가는 걸 끊임없이 유예하다가 이제야 비로소 '그래, 이제는 이 계절이 지나가도 좋을 것 같아'라고 뱉어볼 수 있게 되는 마음. 일주일은 마치 살아온 시간 내내에 해당되는 길이만큼 유한하지만 한없이 길게 늘어뜨린 시간이기도 했다. 살아온 전체 만큼의 시간 중 몇 꺼풀을 꺼내 여기서 다시 살고 온 기분. 그러고 나자 아직은 조금 멍한 기분으로 이제 살아갈 삶의 문틈 앞에서 서성이는 상태.


내일이면 언제 휴가를 다녀왔냐는 듯 또 출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또 얼마 뒤면 일하기 싫다며 여행의 기억을 한껏 더 앓으면서 놀 궁리나 쇼핑할 작정 같은 걸 하겠지만, 끝나지 않은 가을을 한 번 더 살아본 기분으로 인생에 레이어 한 겹을 덧댄 감각으로 물집의 흔적을 어루만지면서 다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이 마음도 옅어지고 또 다시 나만의 외로운 시간이 필요하게 되거나 활력이 필요하게 된다면 그땐 한 번 더 짐을 싸고 숙소를 알아보겠다. 어디로 갈지는 그때 결정하겠다.


* Regina Spektor, 「The Call」

** 山崎 まさよし(Masayoshi Yamazaki),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

*** 심규선, 「Leg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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