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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Jul 24. 2017

모순적이고 슬프며 상처를 남기지만, 그래도 살아남아라.

<덩케르크>(2017), 크리스토퍼 놀란

일반적인 상업영화의 문법에(만) 익숙한 관객이라면 <덩케르크>는 다소 당황스러운 작품일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언제나 바뀐다. 멜로, 전쟁, SF, 스릴러, ... 등의 장르는 흥행에 의해 사후적으로 규정된 것이지, 창작자가 스스로 정형화 시켜 만든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이건 전쟁영화가 아니야!"라는 말에는 달리 할 말이 없는 것이다. <덩케르크>는 다이나모 작전을 '소재'로 한 실화 모티프의 영화일 뿐이지, '전쟁영화'가 아니니까 말이다. 이를테면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 스티븐 스필버그)나 <블랙 호크 다운>(2001, 리들리 스콧), 혹은 비교적 근작인 <론 서바이버>(2013, 피터 버그) 같은 영화들이 우리가 흔히 떠올릴 '전쟁영화'라면.


최근 영화들의 명확한 트렌드 중 하나는 종합선물세트다. 전달하는 정서도 그렇고, 표현의 방식도 그렇고, 소재도 그렇다. 창작자의 세계관이 제작자의 계산과 적절히 만나 모든 게 하나쯤은 다 있는 영화가 탄생한다. 여기에는 흥행을 위한 공식을 성립시키는 각 항목들이 들어가지만,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경험" 자체에 대한 고려는 경시된다.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영화는 스타성과 상품성에 의존하게 되고, 또 선택을 받기 위한 자극적인 표현에 신경 쓰기 쉽다. 한국 영화든 마블 코믹스 원작 영화든 간에 특히 지난 몇 년 사이의 상업영화들을 보며, 다수의 작품들을 그럭저럭 재밌게 감상하긴 했으나 '좋은 영화', 혹은 '(이 시대에) 필요한 영화'라고 여겼던 작품들은 아주 드물었다. 그 피로를 깨는 영화가 모처럼 등장했다.


말하자면 <덩케르크>에서는 있는 것을 찾기보다 없는 것을 찾는 게 더 쉽다. 수많은 리뷰나 기사에서 이 이야기가 등장했겠지만, 시각적 스케일을 강조하는 대규모 전투 시퀀스가 있지도 않고 피범벅 된 아군의 모습도 보이지 않으며 (당연히 적군도 없다) 사연도 없다. 등등등. 전세가 기울어 탈출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의 앞에서, 이런 설명과 보여줌은 불필요하다. 10대 소년부터 노병에 이르기까지 '살아남는 것'에는 차이가 없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담고 있는 것은 '살아남으려는 사람들의 여러 모습들'이다. 그게 전부다.


흔한 재난 영화에서도 살아남는 인물들은 대체로 해박한 지식을 순발력 있게 적소에 활용하는 이들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인물들의 실명이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는 것도 물론이지만, 자신의 뛰어난 역량으로 살아남는 인물을 찾을 수 없다. 그냥 살아남은 것이다. 운 좋게 포탄이 머리 위로 떨어지지 않았든, 아니면 누군가 나타나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끌어내어 주었든 간에 말이다. 그 '살아남음'의 유일한 이유는 그들이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영화의 세 시점은 자연스럽게 '당시 덩케르크에 있었거나 그곳으로 향했던 사람들의 시점'이 된다. 앞서 짧게 감상을 정리하며 '주인공이라 할 만한 캐릭터를 구축하지 '않지만' 한 프레임에라도 등장하는 모든 인물을 주인공으로 만들어버리는 영화'라고 적은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영화가 중심인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관객이 인물에 공감하거나 몰입할 수 있도록 인물의 성격이나 사연 등을 추가하기 마련인데, <덩케르크>는 그럴 생각이 아예 없는 영화다. 애써 '주인공'을 인위적으로 찾자면 일주일(The Mole) / 하루(The Sea) / 한 시간(The Air)이 그에 간신히 해당된다. 특정 시점이나 인물 하나를 강조했다면 이 영화가 주는 몰입감이나 체험의 정도는 되려 감소했을 것이다. 해안에 포위되고 고립된 사람들, 군인들을 구하기 위해 바다로 나선 사람들, 탈출 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하늘로 출격한 사람들. 이 영화에서 하나의 절정을 찾자면 자연스럽게 그 팽팽한 균형의 세 시점이 마침내 하나로 만나는 지점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각자 다른 위치에서 그들은 의도와 관계없이 함께였다. 전쟁을 이어갈 수 있었던 건 뛰어나고 탁월한 이들이 아니라, 운 좋게 살아남은 이들이었다. 영웅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후세에 영웅이 된다. <덩케르크>가 낭만적이고 이상적인 영화가 아닌 또 하나의 이유.



<덩케르크>는 탈출과 생존을 멋있고 대단한 것으로 그리진 않는다. '떨고 있는 병사'(킬리언 머피)를 보며 '도슨'(마크 라이런스)과 '피터'(톰 글린 카니)가 하는 이야기가 있다. "공격 받은 충격으로 다신 제정신으로 못 살겠지."(He'll never be himself again.) 꼭 전쟁에서가 아니어도, 어떤 상황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것, 곧 살아남는다는 건 상처를 남기는 일이다. 다른 누군가는 죽기도 할 것이며, 때로는 어떤 사람은 자신이 살아남음으로 인해서 누군가가 '대신' 죽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대신 죽은 게 아니라 그냥 누군가는 살고 누군가는 죽은 것일 뿐인데도 말이다.) 이기든 지든 상처를 남기는 것이 자연한 속성인 전쟁, 그것도 무려 세계대전에서, 아무리 긴박한 철수 작전이 주효했다 한들, 처칠의 명연설로 사기를 진작한다 한들, 생존 자체의 슬프고도 모순적인 그 속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영화가 보여주는 인물들의 모습 역시 처절하거나 안타깝거나 지독할 뿐이다. 그들을 동정하거나 염려하게 만들기보다는 그저 전쟁이라는 상황 자체의 체감도를 극대화하는 것에 방향성이 맞춰져 있다. 스크린 속 인물이 언제 어떻게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 자체가 관객을 그 현장으로 붙잡아 끄는 것뿐이지, 인물 자체에 특정한 감정이나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조국'으로 번역된 'home'이란 대사가 직업 군인으로서의 온당한 표현을 대변할 뿐, 국가 자체도 이 영화에선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달리 말해 인물의 시점이 영국군인 것과, 영화의 정서가 영국적인 것은 같은 문제가 아니다. 방식과 '영화가 보여주려 한 것'에서 나오는 차이다.)


"수고했네."
"살아 돌아왔을 뿐인데요."
"그거면 충분해."


한데 살아남는 것이 그다지 멋지지 않은 일이라면 정녕 그들은 무엇을 위해 살아남았단 말인가. 우리가 역사적으로 익히 알고 있는 '다음'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돌아갈 곳이 있어야 한다. "밀물이 되면 물은 들어온다"는 막연한 믿음 하나. 지금을 '그 어느 때보다 불안한' 시대라고 한다면 이 영화의 가치는 더욱 뚜렷해진다. 명시적인 세계대전이 지금 당장 없을 뿐이지, 국제 정세의 불확실성은 오히려 더 커져가고 있다. 영화를 처음 보면서 자연스레 떠올렸던 문장을 이쯤에서 다시 적어본다.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 지지 않는다는 말이 반드시 이긴다는 걸 뜻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깨달음이었다. 지지 않는다는 건 결승점까지 가면 내게 환호를 보낼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안다는 뜻이다. 아무도 이기지 않았건만, 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김연수, <지지 않는다는 말>, 9쪽 중에서, 문학동네, 2012.)


세상에서 나 혼자 살아남는 일은 무용하다. 같이 살아남아야 지지 않을 수 있다. 여긴 척탄병 줄이라며 (자신이 배를 타야 하니) 다른 데로 가라는 병사들이 있는 곳. 영국군과 프랑스군을 서로 달리 대하는 곳. 내가 살기 위해선 누군가를 죽여야만 하는 곳. 배 안의 사람들을 침수시키기 위해 멀리서 총격을 가하거나 어뢰를 쏘는 곳. 어른들의 전쟁에 소년들이 희생되는 곳. 군인만이 아니라 모두가 다치는 곳. 숱한 위협으로부터 공동체를 지켜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허망하게도 실은 '공동체가 되는 것' 뿐이다. "살아 있다면, 우리가 구해줘야 해."라고 나설 누군가가 있다면, "폭격기보단 작은 배가 나은" 상황이 가능해진다.("폭격기는 이런 날씨엔 안 뜨죠.") 여기에는 국가도 이념도 선악도 물론 없다. 살아남는 것 자체는 숭고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로서 (저기 바다 너머에 돌아갈 곳이 있다는) 희망에 대한 신뢰를 보내는 가운데 서로 연대할 때, 그 생존의 의미는 자연스럽게 달라진다. 사적 동기에 의한 것일지라도 그것이 여럿이 되면 공적인 것이 된다. <덩케르크>는 격동의 역사 속에서도 그것이 가능했다는 걸 상기시키는 영화다. 그에 앞서, 영화가 주는 본연의 경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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