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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Aug 01. 2018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보면서

시대를 산 아무개들의 이야기

*커버 이미지가 뜬금없이 [어린 왕자] 북램프인 건, 이 드라마 생각을 하다가 [어린 왕자]에 관한 누군가의 글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아직 8화까지 전개되었으니 "이 드라마는 이런 드라마였다"라는 과거형의 서술은 불가능할 것이므로, 우선 이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역사왜곡' 같은 단어를 언급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이 사실을 다루거나 사실을 기반으로 한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어야 한다. 특정 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와 영화들이 모두 그렇듯 [미스터 션샤인] 역시 (굳이 5화부터 창작물임을 서두에 밝히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지 않아도) 창작물이다. 실존 인물이 아니고 역사를 그대로 재현한 드라마가 아닌 이상 대사나 행동, 사건에 있어 사실과의 대조는 그저 비교를 위한 비교일 뿐이다.


그렇다면 왜곡 대신 미화는 어떨까. 과연 [미스터 션샤인]이 침략을 정당화하거나 친일 행위를 우호적으로 그린다고 할 수 있는가. 모든 건 표현 자체가 아니라 태도에 달린 일이다. 조선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과 경험을 가진 채 미국에서 자란 '유진'과, 조선에서 나고 자라며 격동기를 지켜봐 온 '애신'이 주고받는 이야기만 봐도 명백히, 이 드라마는 기록되지 않았으나 어쩌면 그때 존재했을, 이름 없는 사람들을 주의 깊게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정 인물의 어떤 행동, 어떤 말, 그가 소속된 어떤 단체. 그런 단편적인 것들만으로 작품 전체의 성향과 태도를 '판단'하기란 섣부른 일인 것은 물론, 그 대상의 일부 밖에는 보지 못하는 일이다.


나는 1화부터 [미스터 션샤인]의 주인공이 '애신'이나 '유진'보다는 실질적으로는 '시대' 그 자체라고 느꼈다. 누군가에게는 폭력적으로, 누군가에게는 낭만적으로, 또 누군가에게는 그저 존재하지도 않는 것으로,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아픔이 되었을지도 모를 혼란의 시대. 그리고 여성의 시점에서 그려지는 격변의 시대. 아마도 중반에 접어들었을 이 드라마에서, 이미 미국은 (정황상 일본과의 밀약을 맺었을 시기라) 방관적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일본은 침략을 노골화하고 있다. 작 중 인물들이 어떤 관계를 맺고 무슨 일을 겪든 간에, 대한제국의 패망까지는 익히 알려진 그 경로를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판타지 드라마가 아닌 이상. 암울한 시대에 각자의 자리와 위치에서 저마다의 삶을 살아내고자 했던 이들의 이야기는 진행 중이다.


바로 그 '아무개'들이 왜 나라를 등지거나, 끝까지 나라를 지키거나, 혹은 외세에 협조하는 등의 선택들을 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헤아리려는 노력 없이는 제대로 된 논의가 불가능하다. 어떤 문화 콘텐츠의 '정치적 올바름'을 논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캐릭터의 특정한 대사 같은 부분에 관한 것이 아니라 전체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또 다른 강요가 될 뿐이다. 어떤 사람이 자신은 시작이 반이라 생각한다며 한 영화를 보다가 어떤 캐릭터의 '시대착오적인' 대사가 불편했다는 언급을 하며 그 영화는 다 보지 않았지만 어떤 영화인지 뻔히 보인다는 평가를 해놓았다. 누군가는 그럴 수 있다. 그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배경과 과정을 나는 전부 다 알 수 없다. 드라마는 영화와 달리 각 회차마다의 이야기 역시 존재하므로, 같은 잣대를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보지 않고도 그 영화를 다 안다고 말하는 것이나, 흐름과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부분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폭력적인 장면이 등장한 어떤 영화에 관하여, 그 영화를 곧장 폭력을 옹호하거나 미화하는 영화라고 하는 일은 그 중간 과정을 모두 빠뜨리는 일이다. [미스터 션샤인]에 관하여 이야기할 때 실제 미국인이 조선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시점, 이토 히로부미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시점, 특정 연도에 의병이 사용한 총기의 종류 등 고증의 세밀한 정도를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온당하다. 그러나 드라마 속 어떤 인물의 행적 일부를 들어 '식민사관', '친일미화' 같은 단어를 개입시키는 일 역시, 중간 과정이 빠져 있는 건 마찬가지다. 과연 '논란'이라 부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군함도>를 둘러싼 '논란'들을 바라보며 썼던 글의 일부를 다시 가져와야겠다. "그러나 특정한 소재나 사건, 배경이 등장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는 그 영화에 대해 어떤 것도 설명되지 않는다. 역사든 범죄든 누구든. 영화가 어떤 대상을 다루는 것과 그 영화가 그 대상에 대해 특정한 관점이나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 글을 쓸 때 이런 문장도 적었다. "착하지 않은 조선인이 등장한다고 해서 그 영화가 조선인을 매도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도 물론 그렇게 생각한다. 무조건 미디어의 영향력만 논하기에 앞서 콘텐츠를 받아들이는 대중 혹은 시청자 혹은 관객, 각자의 주체적 감상과 사유가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 간과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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