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와일즈 로즈> 개봉을 앞두고
'음악 영화'라는 이야기를 할 때 그게 어떤 영화를 지칭하는지를 짐작하지 못하는 관객은 거의 없겠다. 당장 <비긴 어게인>이나 <라라랜드> 같은 작품을 꺼내놓아도 좋겠고, 내 경우에는 <스타 이즈 본>(2018) 이야기를 자주 꺼낸다. 그렇다면 여기서 '음악 영화'란? 스코어를 쓰지 않는 영화는 거의 없으므로, 이 말은 '음악이 나오는 영화'를 뜻하는 게 아니다. '음악 하는 사람'이 나오는 영화다. 음악 하는 사람. 뮤지션? 아티스트? 일단 둘 다라고 해두자. 음악 하는 사람이 나오는 영화는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가.
이런 식이다.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고 음악을 자신의 꿈으로 생각하지만 가정환경이나 경제적 형편 등의 이유로 그 꿈을 펼치지 못하는 인물이 나온다. 대체로 청소 근로자와 같은, 음악과 동떨어진 일을 한다. 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길에는 홀로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똑같은 일상을 보내던 그는 우연히 음악 경연 프로그램을 알게 되어 거기 참가하는데, 여기서 곧바로 대박이 나지는 않는다. 대중적 관심을 얻게 되더라도 과거에 있었던 어떤 일이 발목을 붙잡거나, 아니면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떨어진다. 그러나 또 우연한 계기로 (주로 한때 잘 나가던, 지금은 퇴물인) 음반 제작자나 비슷한 꿈을 가진 인물을 만나 무엇인가를 함께한다.
당연히, 몇 가지 빠진 것이나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있다. 주인공이 (잠들어 있던) 꿈을 펼치는 계기로 이성과의 로맨스가 개입되거나 멘토를 만나는 경우가 있다. 혹은 오디션의 경우라면 주인공의 재능을 시기하거나 음해하는 세력이 등장하기도 한다. 떠오르는 대로 쭉 적었는데 아마 몇 문장에서 읽는 이는 특정한 영화를 떠올리기도 할 것이다. 어쨌든, 주인공은 결과적으로 대기만성형의 캐릭터로 우여곡절을 딛고 노래로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린다.
지금 말할 영화 <와일드 로즈> 역시 '음악 영화'다. 주인공 '로즈'(제시 버클리)는 지금 사는 곳을 벗어나 컨트리 음악의 상징적인 고장인 미국 내쉬빌에서 스타가 되고 싶어 하는 인물이다. 이미 더 이상 소개하지 않아도 될 만큼 정보가 충분한가? 영화를 보기 전엔 '또 그렇고 그런 음악 영화가 나왔구나'라고 지레짐작할 누군가가 있겠다. 나 역시 영화를 보기 전에는 그렇게 막연하면서도 특정한 종류의 선입관이 있었는데, 정작 <와일드 로즈>는 곳곳에서 우리가 음악영화를 말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을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
주인공의 삶과 주변 환경에 대한 설정 자체는 익숙하다. 과거에 어떤 일을 겪었고 음악을 하고 싶어 하지만 지금 '로즈'는 먹고사는 일과 '사고를 쳐서' 낳은 두 자녀를 양육하는 일에 여념이 없다. 함께 사는 어머니 '마리온'(줄리 월터스)과의 복잡 미묘한 관계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뻔하디 뻔한 전개로 이어질 수 있음에도 영화 <와일드 로즈>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와일드' 한 주인공의 특색을 살려 종종 거칠면서도 매력적인 방향으로 흐름을 시시각각 전환한다. 그러면서 주인공이 노래할 때는 가만히 지켜볼 줄도 알고, 감정적 몰입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한없이 가까이 다가가 내면을 관찰하기도 한다.
이미 상처를 입어왔고 다시 상처를 얻기도 쉬운 주인공 '로즈'에게 <와일드 로즈>는 타의적인 치유의 계기를 섣불리 마련하기보다, 본인 스스로가 어떤 여정으로부터 깨달음을 얻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그러니까, 쉽게 찾아올 것만 같았던 기회는 좌절시킨다. 너무 스포일러가 되지는 않는 선에서 일부 에피소드를 소개하자면 '로즈'가 한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는 일도, 청소부로 일하는 집주인이 '로즈'의 노래 실력을 알아보고 일종의 후원 행사 자리를 마련하는 일도, 글의 도입에서 말한 음악 영화의 흔한 도식을 그대로 답습하지는 않는 방향으로 펼쳐져 있다. 이 '잘 들어야 할' 영화를 글로만 소개하자니 어느 정도의 한계가 있다. 10월 17일 국내 개봉하는 영화 <와일드 로즈>를 직접 한 번 만나보시기를. (★ 7/10점.) (100분, 15세 관람가.)
*'로즈'를 연기한 제시 버클리는 배우이기 이전에 영국 BBC 방송의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준우승을 해 지금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와일즈 로즈>의 주연을 맡으면서 제시 버클리는 아마도 처음부터 배우였을 이들보다 배역을 더 실감 나게 살려낼 수 있었으리라.
*영화의 주된 공간적 배경인 글래스고에서, '로즈'가 공연 무대에 서는 바 이름이 바로 '그랜드 올 오프리'(Grand Ole Opry)다. 이는 작중 '로즈'가 가고 싶어 하는 미국 내쉬빌에 있는 바 이름과도 동일한데, 이러한 작명 역시 중요해 보인다.
*수입/배급: 판씨네마(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