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진 Oct 22. 2019

악인을 악하다고 말하는 것 그 이상의 이야기

영화 <조커>(2019)를 보고나서

등골이 서늘해진 채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오리진 스토리. <조커>(2019)는 범죄를 찬미하거나 악인을 미화하는 영화로 보이지 않는다. 어떤 범죄에 대해 단지 범인이 나쁜 사람이어서 그렇다고 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는 그가 어떻게 그런 사람이 되었는지 배경과 과정을 살펴보는 것에 있다. '자기애적 성격 장애가 있어서 그래' 하고 선뜻 진단해버리는 일 역시 (서사적으로도 흥미가 떨어질뿐더러) 사회적, 윤리적 성찰이나 탐구의 과정을 결여한 채 결과만을 좇는 일이 되겠다.

<조커>는 연출과 신(Scene)의 분량 및 완급 조절이 아주 탁월하다기보다는 촬영의 방식과 음악의 배치(오리지널 스코어보다는 찰리 채플린, 프랭크 시나트라 등의 삽입곡이 더 인상적으로 남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배우의 얼굴만으로 이야기의 완결성을 만든다. 누군가를 조롱하고 무시하고 모멸하는 매 순간, 그 누군가의 마음에서는 악의 씨앗이 자라난다.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고 해도, 몰랐다고 해도, 애초에 아는 듯이 굴었어도 안 될 일이겠다. 사람들은 지하철 광대의 살인이 그 시작은 정당방위에 가까웠음을 알지 못하고, 토마스 웨인은 자신이 빈민을 구제해서 잘 살게 만들겠다는 공약을 권위적이고 위선적으로 꺼낸다. 여기서 얼굴에 미소를 '넣는'다고 해서 행복해질 리는 없다.

모두가 모두를 모르는 세상에서, 자욱한 연기와 진동하는 피 냄새 속에서 '아서 플렉'은 모멸감과 피해의식을 동력 삼는다. 자신의 존재감을 짓밟는다고 여기는 대상들을 짓밟고, 불특정 다수의 가면들 속에서 그는 일어선다. <조커>는 코믹스의 상징적 빌런 '조커'를, 고담이라는 가상공간의 인물을, 현실 세계로 끌어올리는 도발을 선뜻 감행한다. 개인들 사이의 일이 사회의 부조리를 만들어내거나 키워낼 수도 있음을 말하면서. 훌륭한 이야기꾼(Author)이자 재능 있는 희극인이 될 수도 있었던 한 사람은 상처와 얼룩진 삶의 굴곡으로부터 일어나지 못하고,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한 채 자신의 세상에 불을 지른다. 불길 속에서 일어서는 그의 모습은 영웅적이기보다 오히려 쓸쓸하고 처량하다. 처음부터 그의 입이 웃을 때 그의 눈은 눈물을 짓고 있었기 때문에. (★ 8/10점.)




*이메일 영화리뷰&에세이 정기 연재 <1인분 영화> 11월호 구독자 모집: (링크)

*글을 읽으셨다면, 좋아요, 덧글, 공유는 글쓴이에게 많은 힘이 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새로운 자아로부터 시작된, 여러 개의 이야기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