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맛있게 얌얌-
오늘은 어떤 글을 쓸까?
냉동실에 잠들고 있던 스지를 압력밥솥에 삶았는데 추가 돌더니
검은 수증기가 잔뜩 흘러나와서,
허둥지둥 가스를 끄고
김이 빠지기를 기다리는 시간에
방에 있는 노트북을 주방으로 데려온다.
여전히 춥다고 하는데
아직 수련활동은 하기 전이다.
(오늘은 햇살 가득한 시간대에 갈 듯 하다)
아이의 학교 추천 도서인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라는 책을 어제 저녁에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서 펼쳤다.
편지 형식이라는 것은 책을 구입한 날 알고는 있었다.
한번 읽으니 놓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결국 끝까지 읽다가 울었다.
아이에게 물어본다
"너도 울었니?"
"저는 아이를 안 낳아봐서 그런지
쪼금 살짝 눈물이 나올랑 말랑 했어요."
"나만 운 거야?"
아침에도 뒷부분을 읽다가 또 눈물이 나왔다.
청소년 도서가 나에게는 쉽고 감동적인 면도 있다.
여유로운 날이고
반찬 하기도 귀찮아서
어제 아이랑 오늘은 외식하기로 약속을 했는데
늦게 일어나기도 하고
왠지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을 해치워야 할 거 같아서
9시부터 반찬을 하기 시작한다.
감자 두 개 - 신기하게 색이 초록색
자색 고구마 몇 개 - 이건 한살림껀데 일주일은 지난 듯
제주무 - 산지 5일이 더 되었나?
당근 - 산지 이틀?
파래 - 3일?
양파 잘라 놓았던 거 - 일주일 지남?
브로콜리- 언제 샀지? 상태는 괜찮음
(엄마는 직장이 집이죠?
엄마가 브런치에 쓴 글 읽은 거야?
아뇨, 엄마는 연중무휴네요~~~~
맞아, 월화수목 금금금금
어머님, 감사합니다.
지금 글을 쓰면서
아이와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언제 샀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는 식재료들로
무엇을 만들까?
카레와
파래생체
스지 수육? 은 두 번째 도전이다. 첫 번째는 다 태워먹어서 버렸던 기억이 난다.
(가공식품은 한살림을 주로 사용하는 편이고 야채는 상황에 따라 동네 마트나 한살림 것을 사용한다.
요즘은 헬스장 가는 길에 공판장에서 야채가 보이면 사고 있다.)
냉동실에 등심카레용 돼지고기도 있네.
감자랑 자색고구마, 당근, 잘라놓았던 좀 마른 양파, 브로콜리 밑동, 양배추 심 잘라놓은 것.
내가 할 수 있는 환경보호는
최대한 다 먹기다.
그래서 과일이나 야채는 거의 껍질채 먹는 편이다.
농약을 친다고 해도 껍질을 먹는 것이 더 이롭다는 어떤 의사의 말을 나는 믿고 있다.
양파 껍질과, 대파 뿌리는 냉동실에 얼려놓아
오늘 같이 스지를 삶을 때 사용한다.
신랑은 나랑 다르게
감자 껍질, 당근 껍질을 다 벗겨서 버리는 편이다.
그런데 내가 잔소리를 몇 번 해서 그럴까?
어느 순간부터 요리랑은 결별한 듯도 한데,
나랑은 달라~~~
나랑 다른 부분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지~~~
껍질 벗겨서 먹는 게 죄도 아닌데
내가 너무 타박을 했었나?
사과 껍질도 두껍게 깎아서 버리는 경우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 사과 껍질을 버리지 않고 모아두는 날도 있어서
그 껍질은 내가 냠냠 해치운다.
스지는 우선 압력밥솥에 삶기만 했는데
어떻게 먹으면 맛있을까?
자색 고구마는 카레에 처음 넣어 보았는데 달고 맛있다.
무 파래 무침에도 자색 고구마랑 당근을 넣었는데
설탕은 넣지 않고 매실청만 넣었는데 달다.
반찬 대신 샐러드처럼 간을 보면서 밥을 먹기 건에 흡입한다.
제주무가 꽤 커서 채칼을 쓰면서 오른쪽 팔이 아팠다.
어제 헬스장서 상체 머신을 몇 개 연습하고 난타 수업이 있어서 살짝의 후유증일 수도 있다.
오른쪽 팔이 조금 쑤시는데
큰 제주무를 들기가 버겁긴 했다.
그래도 작은 채칼을 써야 무가 더 길게 나와서 그것을 사용한다.
그런데 자색 고구마를 채칼로 사용하다가
왼쪽 엄지 손가락을 살짝 베였다.
자색 고구마는 무보다는 단단해서 힘이 더 들어가는 거 같은데
작기도 하고 단단하기도 해서
베인 손가락에 피가 예상보다는 많이 나긴 하네.
손가락을 베여도
무, 당근, 자색 고구마를 넣은 파래 무침이 맛있어서 괜찮다.
내가 만든 요리를 맛있게 먹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아이도 맛있게 먹어주면 좋으련만
나랑 식성이 달라서 아쉽지만
뭐 어쩔 수가 없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라는 책에서는
육식을 거부하는 딸에게
억지로 육식을 강요하는 가족이 나온다.
아, 그것도 폭력이구나!
내가 해준 반찬을 가족이 먹어주면 감사하고
안 먹으면 내가 다 먹을 수 있으니 땡큐지.
이렇게 생각하기로 한다.
창이 가득한 마루 덕분에
바깥 기온이 영하여도
해님이 오시면
따뜻하다.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내가 만든 반찬을 맛있게 먹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카무트를 넣은 밥의 풍성한 식감을 느낄 수 있어 감사합니다.
해야 할 집안일들을 알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손가락을 잘 움직일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냉장고에 잠들어 있던 식재료를 사용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감동적인 책을 읽을 수 있어 감사합니다.
근면하고 성실한 신랑에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