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칼 마르크스
우리가 고전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시공간을 초월해 사람의 마음을 훔쳤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무엇이든간에 하나의 원인이 결과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아마 이외에도 수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가 고전에 빠지게 된 이유는 혼자 수없이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묻고 답했던 수많은 질문들에 대한 여러가지 대답중 하나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인생을 살아갈때 선택의 기로에 놓이거나 나를 다시 한번 되돌아볼때 나의 철학적 세계관을 확립하도록 도와준 많은 철학자들의 생각을 엿보고, 남은 여백은 나의 윤리적 잣대와 약간의 아집이 첨가된 사유속에서 자유로운 선택을 한다.
내가 책을 읽고 간단한 독후감을 쓰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기록을 위함도 있고, 그냥 자기만족을 위해서도 있다. 또한, 나를 포함해서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책의 내용보다는 책이 나에게 주는 물음 그리고 지성인이 되기 위한 지적호기심의 발걸음을 함께하고, 각자만의 철학적 세계관을 만들어가서 더 단단한 사람이 되었으면 해서이다.
첫 책을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정치경제학 비판>으로한 이유는 나의 정치경제적 사상이나 철학적 세계관을 대변하기 위함이 전혀 아니라 20세기 가장 위대한 철학자이자 사상가중 한명인 칼 마르크스, 그리고 지금은 실패했다고 평가받고 있는 그의 이념아래 한 때 전세계의 약 50%에 해당하는 영토를 물들였던 본질에 대해서 호기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동시에 너무도 유명한 정치경제학 고전인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과 신자유주의 경제학자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을 읽어보고 싶어서이다. (서론이 너무 길어져서 지루할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다. 사실을 적고 싶은 말이 훨씬 많지만 최대한 최대한 줄인것이다.) 나는 책뿐만이 아니라 편향을 가지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읽고싶거나 관심가는것 또는 나의 사상에 반대되는 것을 꼭 읽어보고 고민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으로 알고리즘은 편향제조기다, 내가 보고싶은것만 보고 듣고싶은것만 듣는다면 그 속에서 분열과 갈등의 열매는 더 쉽게 열릴 것이다. 동시에 알고리즘이 주는 편리성은 이제 더 이상 알고리즘이 없던 시대를 상상하고 싶지 않게 만든다. 이렇게 모든 것은 누구에게는 양면적이고 가끔은 모순적이다, 사람도,이념도,갈등도,역사도,언어도, 철학도 그렇다. 양면성이 있다는 것은 아주 건강한 것이다. 하지만 자본론을 읽다보면 너무도 위대하고 통찰력있는 내용과 함께 약간은 교조주의에 빠진듯한 그의 철학적 세계관과 신념에 비판이 그의 공산주의 이념속에 들어갈 틈이 비좁아 보였다. 하지만 부제에서 말하듯이 '정치경제학 비판', 지금은 고전경제학자라고 말하는 애덤 스미스, 맬서스, 데이비드 리카도, 존 스튜어트 밀등의 주류 경제학자(?)의 이론이였던 초기자본주의(자유시장경제,자본제 사회,자유방임주의...)를 비판하는 내용은 아마 현대인에게 많은 통찰력과 깊은 울림을 줄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실상 <국부론>을 비판하는 책이기도 하다.)
글의 구조도 모르고, 그저 나의 생각을 전달하기 위한 내용에 치중되어 있어서 아쉽긴 하지만 나의 목표는 이 글을 읽고 독자가 자본론에 대해 조금이라도 호기심을 가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에 집중해보겠다.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런 고전책을 읽을때는 특히 더 저자에 대해 알고 넘어가야한다. 어떤 관념이 그의 이론적 토대가 되어 그 위에 글을 적었는지, 어떤 삶을 살았고, 누가 영향을 주었으며 등등 수도 없이 많다. 마르크스에 대해 내가 아는 모든 내용을 다 적고 싶지만 그렇게 된다면 이미 지루한 글이 더 지루해질 수 있기 때문에 이 글을 읽고 어떤 질문이든지 나에게 물어봐준다면 언제든지 고마움을 느끼고 대답해줄것이다.
칼 마르크스는 1차 산업혁명이 태동하고 자리를 잡기 시작한 19세기 초반에 프로이센 트리어(지금의 독일위치)에서 태어나 생애동안 유럽을 떠돌다 영국에서 무국적자로 생을 마감했다. 그에 대한 간단한 배경설명만 하려고 한다. 베를린대학교 시절 헤겔의 영향을 받아 이후 그의 중요한 철학관인 유물론적 변증법이라는 철학적 접근방식을 제시하였고, 이는 그의 글에 철학적 토대가 되어준다. 졸업후에는 언론사에서 일을 하게되었는데 프로이센 정부를 비판하는 기사와 성향으로 인해서 추방을 당하고 만다, 그리고 파리에서 그의 사상적 동반자이자 든든한 후원자인 프리드리히 앵겔스를 만나게되고, 1848년에 그와 <공산당 선언>을 공동집필하였다. 1년 후인 1849년 다시 한번 독일 쾰른에서 추방이 되어 런던으로 거처를 옮겼고, 다시 돌아갈 수 있을거라 믿던 그는 나머지 여생을 런던에서 보내다 1883년에 자본론 2,3권을 집필하며 그의 동반자인 앵겔스 앞에서 숨을 거두었고, 사후 앵겔스가 그의 글을 모아 자본론 제2권과 3권을 출간하였다.
그렇다면 그의 아주 중요한 철학관인 유물론적 변증법은 무엇인가? 나도 아주 자세히는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최대한 내가 이해한 선과 이해를 돕기 위해 가볍게 설명을 해보겠다. 유물론적 역사관은 기본적으로 서양철학의 큰 역할을 했던 관념론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사회의 변화와 역사의 발전의 근본 원인을 물질적 조건, 경제적 생산 관계에서 찾는것이라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해서 물질이 의식의 근본이고, 의식이 물질의 산물이자 물질세계에 의해 사회가 결정된다는 이론이라고 이해해도 될 것이다.
그렇다면 변증법은 무엇인가?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해서 헤겔을 통해 더욱 유명해진 변증법은 모순을 통한 진리 탐구가 핵심이며 정반합의 기본 구조가 반복을 통해서 사물이나 개념이 발전되는 것이며 정은 현재 상태, 반은 현재 상태의 모순, 합은 정과 반의 대립을 통해 만들어진 새로운 상태라고 보면된다. 헤겔은 좀 더 관념론적 변증법으로 역사는 정신의 자기실현 과정이며 모순과 갈등을 통해 더 높은 단계의 정신으로 발전된다고 하였다, 이에 반해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변증법은 사회 변화의 핵심은 물질이며 경제적 기초와 상부구조의 모순,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과 대립이 변화와 발전을 이끈다고 설명한다.
그의 유물론적 변증법은 그의 책 전반의 토대가 된다, 대표적으로 그의 계급투쟁 사관과 그가 언급하듯 그는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과 갈등이 계급투쟁을 통해 사회주의 사회로 변혁되어야한다고 생각하였다. 자본주의라는 정, 모순이라는 반, 사회주의라는 합이 도출된다고 생각하였고 사회는 혁명적 변화를 통하여 사회주의로 가게되고 결국 공산주의에 도달하게 된다고 설명하였다.
그의 글을 보면 분명 역사발전의 단계와 원인에 대해 단순화하고 공산주의로 가는 과정의 폭력성과 결정론적인 요소들에 대한 비판은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철학은 그 시대의 아들이다" 헤겔의 유명한 말중 하나이다. 나는 세계와 인간 그리고 삶의 본질을 묻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시대를 뛰어넘어 수많은 인류가 이에 대해 고민하고 각자의 답을 구하는 과정속에 있으며 그 과정이 결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대의 모순에 대한 대답을 구하는 과정과 더 나은 시대로의 발전을 위한 과정속의 사유는 그 시대의 아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본론은 그 시대의 아들이다. 하지만 여전히 자본론이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은 지금은 많이 성숙해졌지만 여전히 우리가 자본주의 경제체제라는 토대속에 살고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시대적 배경에 대해 아주 간단히 짚고 넘어가보자. 19세기 중반에 쓰여진 자본론은 18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1차 산업혁명과 함께 자본주의가 급속히 확산되던 시기였다. 증기기관,방적기 그리고 이를 활용한 기계를 통한 기술혁신이 이루어졌고, 이를 통해 대량생산과 공장 시스템이 도시화를 촉진하였으며 이는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을 형성하였다. 이 당시(1차 산업혁명) 공장노동자의 삶을 보면 정말 열악하기 그지 없다, 이에 대해서 깊게 설명하고 싶지만 간단히 요약하자면 정말 비인간적이고, 양심이 무너지고 착취가 일상화가 된 조건속에서 노동자가 노동을 하였다. 이로 인해 계급대립이 심해지고 노동운동이 성장하였으며 정치적으로는 1789년 프랑스 혁명, 1848년 유럽혁명등 정치적으로도 혼돈의 시대였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등에 업고 사상가이자 혁명가이자 철학자인 마르크스의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를 건들여 1867년 <자본론: 정치경제학 비판> 제 1권이 탄생하였다.
자본론은 마르크스 스스로 자신은 이전의 도덕적 설득과 개인적 양심에 호소하는 공상적 사회주의와 다른 과학적 사회주의라고 칭할만큼 자본주의의 구조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사회주의로 변환되는 과정에 대해 체계적으로 제시하였다. 자본론은 전체적으로 자본주의의 원리와 모순 그리고 한계를 설명하는데 집중하였고, 상품과 화폐,절대적 잉여가치와 상대적 잉여가치, 임금, 자본의 축적과정(시초축적), 노동의 이중성에 대해 설명하는 구체적 유용노동과 추상적 인간노동, 이윤율의 일반적,경향적 저하의 법칙등 많은 과학적이고 구조적인 자본제 사회의 내부 모순을 고발하여 어떻게 사회주의로 갈 수 밖에 없는가에 대해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다는 면에서 자본제 사회를 다시 더 깊게 돌아보게 해준다.
자본주의 사회란?
그는 첫장 상품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지배하는 사회의 부는 방대한 상품 더미로 나타나며, 개개의 상품은 이러한 부의 기본 형태이다. 그러므로 우리 연구는 상품의 분석에서 시작한다" 부는 모든 사회에 존재하지만 부가 주로 '상품의 형태로 나타나는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뿐이라는 뜻이다. 노동도 상품인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상품에 의한 상품 생산이 일어나게 되고 상품의 생산,유통,소비를 통해 이루어지는 사회이며 본질적으로 자본증식, 가치증식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의 특징에 대해 5가지를 말하였다. 생산수단의 사적소유, 노동력의 상품화, 잉여가치 생산, 계급대립, 과잉샌과 주기적인 경제위기이다.
그렇다면 상품이란 무엇인가?
아마 이 이야기를 자세히 나누려면 반나절은 족히 걸리지 않을까 싶다, 사실 자본론의 모든 장이 그렇다 그 부분에 대해서 더 깊게 이야기를 나누려면 적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간결하고 쉽게 설명해보겠다. 상품은 교환으로, 공동체 밖에서의 교환으로 탄생이 된다. 상품이 교환되기 위해서는 상품의 가치 알아야한다. 가치는 크게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로 나뉘는데 사용가치는 유용성이라고 보면 되고, 교환가치는 상대적이고 시공간에 따라 변화하는 현상형태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기에 고유한 내재적 교환가치가 있다는 말은 자체적으로 형용모순이다.
그렇다면 가치는 어떻게 측정이 될까?
이에 대해 애덤 스미스와 같이 마르크스도 노동가치론에 대해서 설명한다. 쉽게 말하면 가치 = 노동의 양(사회적 필요 노동시간)이다. 현재는 정확한 노동의 양과 노동의 질을 측정할 수 없기 때문에 이는 설득력이 부족하지만 당시에는 매우 이해할만한 이론이다.
그러나 여기서부터가 진짜다, 앞서 말했듯 자본주의 사회는 기본적으로 모든 물질대사(생산,유통,소비)를 상품으로 이루어져잇는 상품경제사회이다. 상품생산과정에서 노동자들은 노동을 팔고 자본가들은 노동력을 산다, 즉 노동자의 사용가치 < 노동력의 교환가치(임금) < 자본가의 사용가치인 셈이다. 그리고 노동력의 교환가치와 자본가의 사용가치의 차이 속에서 잉여가치가 발생이된다. 쉽게 말하자면 내가 회사사장이면 나는 당신을 고용할때 월 300만원을 주고 고용하는 이유는 그 사람이 그 이상의 생산력이 있다고 판단해서이고, 노동자는 300만원에 자신의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판매한것이다. 그리고 이 상품생산과정속에서 자본가와 노동자의 착취관계가 발생되고, 시장에서 상품이 교환되는 과정속에서 자본간의 경쟁관계가 발생된다는 것이 자본주의의 본질이라고 설명한다. 자본주의 사회는 본질적으로 잉여가치를 추구해야 하고, 이 본질이 문제를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더 자세하게 말해보겠다.
그렇다면 잉여가치는 무엇인가?
잉여가치는 크게 절대적 잉여가치와 상대적 잉여가치로 나뉜다. 절대적 잉여가치는 생산을 높여 잉여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동시간을 높이는 것이고, 상대적 잉여가치는 생산성을 높여서 잉여가치를 증대시키는 것이다. 절대적 잉여가치 증대를 위한 노동시간의 증가는 한계에 부딪힌다. 그렇기에 생산성을 높여 상대적 잉여가치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상대적 잉여가치 증대를 위한 기술혁신과 효율적 기계도입은 특별 잉여가치를 획득하게 해주고, 여기에서 발생한 특별 잉여가치는 시간적 차이일뿐 경쟁으로 인해 특별 잉여가치 생산이 제한된다. 경쟁속에 낮아진 상품의 가치는 노동의 가치저하로 귀결되고, 평균이윤율 저하와 함께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노동절약형 기계 즉 새로운 기계, 기술 도입이 가속화되고 이로 인해서 노동비중이 감소하게 되며 이윤과 가격이 하락하고 결국 공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 공황으로 인해 생산수단의 투매로 연결되며 이는 독점자본의 탄생을 야기시킨다 설명한다.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인 잉여가치 추구의 모순에 대한 마르크스의 생각이다.
노동의 이중성과 착취
마르크스는 또한 자본주의 생산방식의 핵심인 노동의 이중성에 대해서 언급한다. 노동은 노동력이라는 상품이고 상품생산을 위해서는 상품의 사용가치를 만드는 구체적 유용노동이 있고, 상품의 교환가치를 창출하는 노동인 추상적 인간노동 즉, 추상적 인간노동은 교환없이는 존재하지 못하는 사회적 노동이다. 즉, 노동투여시간이 상품의 가치인데 노동의 양은 영원히 고정되지 않기에 상품의 가치는 고정되지 않는다. 자본주의 생산에서는 유용성을 지닌 사용가치 창출이 아닌 상품의 교환가치 극대화에 초점을 맞춘다. 상품의 가치는 노동에 투여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자본가는 노동자에게 그가 창출한 가치의 일부만을 임금으로 주고 나머지는 자본가의 이윤으로 들어가는 구조를 형성한다. 이윤의 증대를 위해서는 위에서 말한 지속적인 잉여가치 추구가 동반되며 이는 노동자의 착취로 연결이된다고 설명한다.
자본의 시초축적
자본주의는 어떻게 시작이 되었으며 그 자본축적과정은 어땠을까? 일단 시초축적이란 초기조건과 경험이 장기적인 결과를 야기한다는 것인데 자본주의 체제가 성립되기전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확립되기 위해 필요한 초기자본의 축적과정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시초축적과정을 강하게 비판하였다. 농민을 토지로부터 분리시켜 자연스럽게 노동력을 파는 노동자가 될 수 밖에 없게 만들었고, (대표적으로 인클로저 운동이있다) 이는 본질적으로는 노동자를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했다는 것이다. 또한, 초기자본 형성에 큰 기여를 한 대항해 시대의 상업적 약탈 즉, 노예무역과 약탈 그리고 해양탐험이라는 과정의 폭력성에 대해서 강조하였다. 이 과정속에서 국가는 법과 무력을 통하여 인클로저 운동을 지지하였고, 대항해 시대를 주도하였으며 노동자 착취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없었다. 이로 인해 생산수단이 사적소유화되고 노동력이 상품화되며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형성이 되고 가장 중요한 노동을 자본으로부터 분리되는 구조를 확립하였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자연의 섭리라고 말한 정치경제학자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를 자본론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영원한 자연법칙'이 자유롭게 작용하도록 했다"고 비꼬면서 비판하였다.
이외에도 자본론에는 자본의 유통과정, 이자와 상업이윤, 상인자본과 화폐자본등 자본주의에 대한 방대한 양의 분석이 들어가있다. 자본론의 모든 내용을 설명하기에는 나의 역량이 받쳐주지 못하지만 자본론의 핵심은 자본주의의 내재적 모순과 한계에 의해 필연적으로 사회주의로 갈 수밖에 없으며 이를 위해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통해 공산주의에 도달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발견했다고 생각하였으며 진심으로 원시공동체 -> 고대 노예제 -> 봉건제 -> 자본주의 -> 사회주의를 거쳐 공산주의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마르크스는 믿었다. 그 믿음이 현재까지는 결과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그 생각과 자본주의의 체계와 모순을 이렇게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비판한 것은 그 자체로 매우 의미있다. 그리고 실제로 일부 개발도상국에 한해서는 나는 여전히 인류가 만든 유일한 경제체제인 사회주의적 경제체체의 힘이 있다고 믿고있다. 대표적으로 박정희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도 상당히 사회주의 계획경제적인 요소로 되어있고, 이를 통해 한국은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뤄내었다. 자본론의 내용은 현대사람에게 많은 공감을 얻지는 못할 수 있으나 본질과 구조를 분석하였다는 면에서 자본주의가 살아있는 한 그 본질은 언제나 확장성을 가지고 더 많은 사람을 생각하게 만들것이다.
1980년대 말까지 금서였던 자본론을 읽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사실 나도 스스로 내가 자본론을 읽었다고 섣불리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저 자본론, 마르크스하면 공산주의,혁명,붉은색만 떠오르던 때에서 조금 벗어났을 뿐이다. 이 독후감(?)을 읽는 사람도 자본론에 대한 자그마한 호기심과 함께 마르크스 그리고 자본론이 주는 고정관념을 깰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자유토론에서 비판은 더 깊이있게 다양한 관점을 이해하고 토론의 질을 높이는 방법이다. 신자유주의, 경제적 혼합체제, 하나로 딱 말할 수 없는 다차원적인 시스템속에 살고 있는 현대사회 경제체제의 본질은 어찌됐건 자유시장경제이다, 자유시장경제과 함께 인류의 삶의질은 이례적인 번영과 평화를 누리고 있고, 동시에 생각은 자본주의화되고 종속은 심화되며 사람의 가치는 자본에 도움이되는 기술이나 능력에 의해 측정이 되어진다. 자본증식 또는 나의 노동력가치 향상을 위한 투자는 당연한 것이고, 필수적이다 하지만 동시에 더 나은 사람이되고 더 선한 사람이 되며 더 정의롭고 도덕적이며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그 가치는 체제가 변하고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당신의 본질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