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세상에서
미래는 너무 가속한다.

by 제트오

뉴턴은 물체의 위치가 변화하는 운동이라는 개념을 정리하기 위해 시간을 정의했고, 그 시간은 영원한 우주속에서 절대적으로 존재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과 함께 절대적 시간의 개념은 무너지고 시간과 공간을 시공간이라는 하나의 연속체로 통합하여 관측자의 운동 상태에 따라 상대적으로 변화한다고 정의한다. 그렇다면 존재를 탐구하는 학문인 형이상학에서는 시간을 어떻게 다룰까? 일단 시간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것이다. 우리의 인식속에 존재하는가 아니면 실체로서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시간은 무엇으로 구성되어있는가 시간은 흐름일까 위치일까와 같은 상당히 철학적이면서 존재론적인 접근을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열역학 제2법칙에 따라 엔트로피는 계속 증가하고 열역학적인 시간은 계속해서 한 방향으로 팽창할 것이라고 설명할 것이다.


그렇다면 한 개인에게 시간은 무엇일까? 우리는 분명 모두 같은 시공간속에 존재한다. 하지만 모두의 세계가 다르듯 모두의 시간도 다르게 흐른다. 물리학에서의 시간도, 철학에서의 시간도, 열역학에서의 시간도 아닌 그저 나라는 개인에게 있어서의 시간은 각자 다르게 정의된다. 나에게 있어서 시간은 항상 과거다, 나보다 더 미래에 살고있는 사람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항상 과거'인 세상에서 미래는 너무 가속하기 때문에 격차가 너무 벌어지면 어느순간 같은 시공간속에 있는게 맞는가라고 물리학부터 의심을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과거의 세상만을 보고 미래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과거의 세상속에서 미래를 보고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언젠가 미래를 살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기술의 역사는 언제나 인류와 함께 걸어왔지만, 인공지능 기술 발전은 이전의 그 어떤 기술 혁명과도 다른 양상을 띄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은 지수함수적으로 발전하지만 개인과 사회의 변화는 선형적이다. 5년전만해도 그랬다 지금을 기준으로 그리는 미래가 틀 속에서 자유롭지 못할거라고, 하지만 2015년과 2020년에 비해 2025년 현재 미래는 나에게 더 자유롭다. 역사와 시대를 관통하는 말이 있다 '자유는 그만큼 책임이 따른다' 라는 말이다. 상상의 자유는 분명 책임을 동반할 것이다 동시에 책임을 짊어지면 상상하지 못한 자유를 가지게 될 것이다.


불평등과 양극화는 참 어려운 말이다. 이 단어를 원인에 대한 현상으로 봐야하는걸까 아니면 현상에 대한 존재로 봐라봐야하는걸까. 미래를 이야기하자면 불평등이 줄어들 요인보다는 가속할 요인이 더 많아질 것 같고, 그 현상을 받아들이고 피라미드의 꼭대기로 가기위해 발버둥을 치면서 꼭대기에 나만의 성을 쌓으며 위선적이게 불평등을 줄여야한다고 말하는 편이 나을까 눈을 가리고 천천히 나의 과거의 세상을 구축하는게 나을까 세상은 이분법적으로 나뉘지 않기에 아마 내가 하는 모든 질문이 틀렸을 것이다. 하지만 미래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미래를 그리고 스스로에게 질문해야한다. 그것이 내가 시간을 대하는 태도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미래는 어떻게 그려질 것인가?

그 그려질 미래속에서 나는 어떤 포지션을 가져가야하는걸까?


앞으로 미래는 어떻게 그려질 것인가, 너무도 어려운 질문이다. 정답은 없지만 해답을 찾아가보고 그 과정속에서 자신만의 정답이 무엇인지 고민해보는 글이 되었으면 좋겠다.


농업혁명, 산업혁명, 과학혁명...이제는 혁명이 아니다, 이제는 책의 새로운 챕터이다. 헌 것을 버리고 새 것을 입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입는 것이 아닐 수 있다. 어쩌면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인구는 급격히 감소하지 않지만 생산력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의미있는 생산은 이제 인류의 전유물이 아니다, 하지만 압도적인 소비는 인류가 포기하지 못하는 버릇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저항할 것이다. 다음 챕터로 넘어가지 않게 하기 위해 헌 것을 입은 사람과 새 것을 입은 사람들이 방직기계를 파괴할 것이다. 인간은 늘 그랬듯 변화를 위해 근육을 찢고, 썩은 살을 도려내고, 종양을 제거하며 결국 다음 챕터를 열 것이다. 그것은 성장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못하는 인간의 비극이다. 물론 그 결과는 항상 더 행복한 세계로의 초대는 아니지만 새로운 세계는 그저 전보다 더 강한 중력으로 인간들을 끌어당긴다. 다시 돌아와보자 앞으로 미래는 어떻게 그려질 것인가, 과거를 복습하고 새로운 챕터에 그림을 그린다면 그것은 새로운 챕터가 아니라 그저 다음 페이지가 될 것이다. 미래는 관념을 하나씩 부수면서 그려질 것이다, 당연함이라는 고체와 같은 단어를 액체로 만들면서 그려질 것이다. 그 액체는 물감이 되어 새로운 붓들을 만나, 보지 못했던 색감을 낼 것이다. 그것이 새로운 챕터의 본질이다.


글의 길이보다는 그 글이 나를 생각하게 만들어주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생각을 넘어 사유하게 만들어주고 토론하게 만들어주며 행동하게 만들어준다면 그 글은 버려지지 않았다고 느낄 것이다.


그려질 미래속에서 나는 어떤 포지션을 가져가야하는걸까, 이는 단순한 직업 선택이나 기술 습득의 문제를 넘어 자유를 위한 포지션이다. 어쩌면 직업과 기술도 관념이 되어 부숴질 수 있다. 모두의 배경에 따라 층수는 다르겠지만 같은 건물에 있어야한다. 인간은 생산력이 증가한만큼 어쩌면 보다 더 많은 소비를 할 것이다, 또한 어떻게 소비하느냐를 고민할 것이며, 전보다 더 수동적인 생산을 그리고 소비를 할 것이다. 변하지 않는 것과 불변하는 것을 구분짓는 본질을 다루는 포지션은 결국 불평등을 현상에 대한 존재로 봐라보게 해줄 것이고, 과거의 세상에서 미래를 가속하게 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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