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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SMO Dec 17. 2021

Flex의 역사

유한계급론•소스타인 베블런 | 책리뷰

유한계급(有閑階級, Leisure Class)

생산적 노동에는 참여하지 않고 소유한 자산으로 비생산적 소비 활동만 하는 집단.


저자인 소스타인 베블런은 자본주의 폐단의 가장 중요한 적폐 세력으로 유한계급을 주목했다. 이 계급의 특징은 생산활동에 대한 혐오 때문에 노동 면제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그들의 소득에서 생존에 필요한 소비 이외의 재화를 경쟁우위를 증명하기 위한 ‘과시적 소비’에 열정적으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이런 ‘낭비’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실제보다 더 크게 보이게 하려는 목적이 있는데 그것을 위해 그들은 돈, 시간, 에너지를 아낌없이 소비한다.


유한계급의 이러한 특성은 그 사회를 구성하는 공동체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결국 공동체의 진보와 발전을 지연시키고 방해한다는 것이 베블런 주장의 핵심이다. 책의 구성은 전반부 3개 장은 유한계급의 기원, 정의, 특성에 관한 이론을 설명하는 총론에 해당하며, 후반부는 그 이론과 관련된 세부적인 사례들을 제시하고 있다. 3장 이후는 모두 각론이라고 할 수 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이 책의 저술 목적이다. 이 책의 부제를 '사회적 제도의 진화에 관한 경제학적 연구'라고 명명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의 목적은 근대인들의 경제적인 삶에서 유한계급이 차지하는 위치와 가치를 논하는 데 있는 것이라고 저자인 베블런은 분명히 밝힌다. 유한계급에 대한 정의와 특성을 설명하는 데 있어 비난하거나 혹은 장려하려는 의도는 절대 없으며, 철저한 관찰을 통해 밝혀진 객관적 사실임을 강조하는 모습이 책 이곳저곳에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다시 말해 저자가 설명하려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살펴보니 이렇다'는 것이다. 『유한계급론』을 읽으며 독자들이 느낄 통렬함은 철저히 독자의 개인적인 감정이지 저자의 의도는 아님을 미리 알려주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저명인사들의 추천사만 살펴봐도 상류층의 실체를 신랄하게 비판했다는 의견을 많이 볼 수 있다.


소스타인 베블런 (1857~1929)

1857년 미국의 위스콘신 매니터웍에서 태어난 베블런은 미국으로 이주한 노르웨이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여러 도전에 실패를 거듭하던 그는 아버지의 농장에서 7년 동안 독서에만 빠져 지냈다. 그런 와중에 출판한 첫 저작 『유한계급론』으로 그는 일약 유명 인물이 되었고 그를 학자로서의 한계를 뛰어넘어 사회비평가로서의 명성도 가져다주었다. 1926년 그는 강의활동을 그만두고 캘리포니아로 돌아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오두막에서 의붓딸과 함께 지내면서 여생을 보냈다.



베블런 이론의 배경


베블런 효과 : 가격이 오름에도 불구하고 일부 계층의 과시욕이나 허영심 등으로 인해 수요가 줄지 않고 오히려 증가하는 현상. 과시적인 소비를 하는 소비자는 낮은 가격의 상품을 소비하지 않으며 남들과 대비되어 우월감을 얻기 위하여 고가의 사치재를 소비한다. 따라서 사치재의 가격이 상승할수록 구매자 또한 늘어난다.


당시(19세기) 주류 경제학자들은 수요와 공급은 일반적으로 반비례 관계로 보았다. 하지만 베블런은 유한계급의 특성을 근거로 다르게 생각했다. 지배층인 유한계급의 소비패턴은 주류 경제학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그들은 생존선 이상의 소득을 생산적인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이러한 소득은 경쟁우위를 증명하는 과시적 소비와 낭비로 이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즉, 재화의 가격이 높아져도 오히려 수요가 증가하게 되는 예상 밖의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베블런의 아이디어는 시대를 앞선 놀라운 예측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현재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자본주의를 경제체제로 하고 있는 모든 나라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미국의 비주류 경제학자의 ‘탁월한 가설’은 120여 년의 임상실험(?)을 거쳐 유명한 ‘베블런 효과’로 불리게 되었다. 이 밖에도 이 책에는 쉽게 접해보지 못한 베블런만의 개념과 가설이 자주 등장한다. 책의 후반부까지 반복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저자의 논거를 온전히 따라가기 위해 정리해 둘 필요가 있다.


유한계급 : 그들이 하는 일들이 그렇게 분화되어 있긴 했어도 경제적으로 비생산적인 일이라는 공통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한가롭고 비생산적인 상류계급, 즉 유한계급들은 정치, 전쟁, 종교의식, 스포츠 같은 활동을 주로 했기 때문이다.


아니무스(animus) : 사전적 의미는 여성의 남성 지향성, 여성의 (집단)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모든 남성적인 성향의 화신 내지 전형적인 남성상이다. 영웅심, 약탈자들에게 존재하는 심리적 기반 등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제작 본능과 약탈 본능 : 베블런은 근원적인 인간의 본능을 두 가지로 구분한다. 유용하고 효율적인 능력은 취해야 할 우수한 장점이고, 무익한 낭비를 초래하는 무능력은 버려야 할 저열한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제작 본능'으로, 야만 사회로 넘어오면서 자신의 생존을 위해 주변 사회를 전쟁과 강탈로 점령하는 본성을 '약탈 본능'으로 정의한다.


베블런의 시대 구분 : 그는 책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고대, 중세, 근대의 개념을 사용하지 않는다. 0) 원시사회 1) 미개 사회 2) 야만 사회로 구분하며 야민 사회는 다시 a) 약탈적 단계 b) 준 평화적 단계로 정의한다. 미개 사회와 야만 사회의 구분은 '소유권 제도'의 유무이다.


소유권의 기원 : 베블런의 의하면 최초의 소유권은 공동체의 강력한 남자가 여자들에 대해서 소유권을 행사하면서 나타난다. 그런 소유권을 좀 더 일반적인 용어로 그리고 좀 더 정확하게, 특히 야만인들의 생활 이론을 비추어 표현하자면, 여자에 대한 남자의 소유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유한계급의 발생 시기 : '소유권 제도'가 발생한 시기와 동일하다. 윈시적인 미개 사회가 야만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좀 더 정확히 말해서, 평화로운 생활습관이 시종일관 호전적인 생활습관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서서히 출현한다.



기존 경제학과의 차이점


한 남자가 자신의 금력을 다른 남자들의 금력과 차별적으로 비교하여 확인받는 상대적인 성공은 그 남자의 관습적인 행위 목적이 된다.


기존 경제학 대전제 중에 하나인 소비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경제학의 기본적인 분석의 대상은 원자화된 개인이다. 이러한 개인이 모여 가정, 기업, 국가로 단위가 커지게 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월급을 받고, 저축을 하고, 투자를 해서 돈을 모으는 목적은 그 사회가 제공하는 재화와 서비스를 원활하게 소비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베블런은 이러한 전제조건은 일반 생산 계급, 노동계급에게만 유효하며, 이 책의 주인공인 유한계급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재산 축적 자체가 목적이 된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돈은 수단이 아닌 목적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금력 과시 경쟁 자체가 목적이 된다.


부유함이 명예나 존경의 의미와 동일해지고 부의 축적이 소비를 위한 수단이 아닌 목적 그 자체가 된 사회에서는, 자신의 부유함을 사회에 표출하는 것이 지위를 높이는 하나의 방법으로 자리 잡게된다. 그러한 부의 표출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과시적인 여가와 소비이다. 서민들은 꿈도 꾸지 못할 수준의 여가와 소비는 그들의 우월함을 쉽게 보여줄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 된다. 여기서 더욱 발전하면 유한계급의 금력 과시 경쟁을 모방하는 생산계급이 출현하게 된다.


오늘날 부의 축적은 단순히 돈이 많이 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을 도와주는 영웅이나 성공한 사람이라는 상징을 넘어, 치열한 경쟁을 이겨낸 훌륭한 개인이자 명예로운 선망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이제 어느 정도의 부유함은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성공적인 인생의 필수 불가결한 조건으로 자리매김했다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를 경제체제로 삼는 국가에서 이러한 생각은 상식에 가깝다.


대한민국에서도 '개천에서  난다' 이제 고대의 유물처럼 느껴진다. 금수저와 은수저는  이상 겸손의 대상이 아닌 선망과 존경의 대상이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주류 경제학자들에게 그들의 이론적 대전제를 무시하는 베블런의 설명은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충격은 기술발전과 제도의 괴리를 연구의 대상으로 하는 '제도경제학'이라는 새로운 학문분야를 개척했고 지금까지도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보수주의


제도는 지나간 발전과정 중의 어느 한 시점에서 우세했던 상황에 생활방식이 불충분하게 적응한 결과이기도 하다. 따라서 제도는 과거의 상황과 현재의 상황을 가르는 격차 이상의 어떤 것 때문에 틀린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유한계급이 보수주의적인 성향을 나타내는 원인도 언급한다. 대게 동물은 자기가 양육할 수 있는 것보다 많은 개체를 출산한다. 즉, 생존을 위한 경쟁은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생존에 유리한 개체는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개체는 소멸된다. 그렇게 살아남은 개체가 가진 유리한 변이는 유전된다는 것이 다윈의 자연선택설의 내용이다. 다윈주의자이자 여성주의자인 베블런은 인간사회의 '제도'도 변화하는 유기체처럼 인식했다.


시대의 발전에 맞춰 제도도 변하기 마련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은 이러한 제도의 변화에 맞춰 자신의 사고습관, 가치관, 경제관념 등을 바꿔나가기 마련이다. 특히 경제 제도와 관련된 부분은 '생존'과 직결된 사항이므로 구성원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더욱 크다. 하지만 유한계급은 이러한 변화의 영역밖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상류계급은 기술의 발전과 무관하게 기존 질서와 습관에 의존해도 아무런 불이익이 없다. 변화는 그들에게 무용한 것이라는 말이다. 유한계급의 대전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은 옳다'라면 진화론의 대전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은 옳지 않다'라고 할 수 있다. 베블런은 유한계급의 보수적인 성향은 여기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어느 정도 위치에 도달하면 품격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 그것이 자신을 증명한다고 느끼고 있는 것이 사회적 지위가 높아질수록 보수적인 경향을 보이는 이유라고 설명한다. 추가로 빈곤계층의 보수적 성향도 동일한 현상의 다른 측면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그들은 변화에 대처할 에너지가 부족하기 때문에 보수적인 성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베블런이 『유한계급론』을 집필하던 120여 년 전 미국은 자본주의의 성장통을 겪던 시기였다. 록펠러, 카네기 등의 탐욕스러운 부자들이 독점적인 수탈을 일삼고, 사치와 향락에 빠져 있던 시대였다. 그는 이 책에서 산업화된 제도가 사람들에게 근면, 효율, 협동을 요구하고 있지만, 실제로 산업계를 지배하는 사람들은 돈을 벌고 부를 과시하는 데에만 여념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것이 과거에 약탈을 일삼았던 미개 사회의 잔재라고 주장한다. 한편 이 시기에 탄생한 신생 대기업들은 시장의 독점을 통해 발전하기 시작했고, 불필요한 생산의 과잉까지 초래하게 되었다. 게다가 자본의 축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행태는 커다란 사회문제로 대두하였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개발 독재 시대의 일어선 우리나라의 재벌들과 상당히 유사하다.


봉준호 감독의 말처럼 ‘지구에 거주하는 전 인류는 자본주의로 연결된 나라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르웨이계 미국인 경제학자 베블런의 시대를 앞선 날카로운 지적은 그래서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또한, 이 책의 가치는 경제학적 업적뿐만 아니라 인간 사회의 본성에 대하여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훌륭한 종합 인문학 책으로도 손색이 없다는 데 있다.


여담


책의 단점을 굳이 말하자면, 개인적으로 배경지식이 부족한 책을 읽을 때는 장별로 핵심 내용을 요약해서 머릿속에 정리한 후에 다음 장으로 넘어간다. 그런데 정리한 내용의 양이 요약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았다. 변명하자면 독자로서 저자인 베블런은 수식하는 단어가 많은 문장을 자주 사용한다. 형용사, 부사, 접속사를 이곳저곳에 배치해서 문장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다.


이번에 『유한계급론』을 재독 하면서 다른 출판사 책을 읽게 되었는데, 먼저 읽은 문예출판사로 출간된 책의 번역은 그렇게 깔끔하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번역자의 노고에 감사한 마음이야 있지만 아쉬움이 크다. 이번에 읽은 '우물이있는집'에서 출간한 책이 나에게는 좀 더 편하게 다가왔다.


유한계급론∙소스타인 베블런 | 우물이있는집
지식/정보 : ★★★★☆
감동/의미 : ★★☆☆☆
재미/흥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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