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OSMO Sep 27. 2023

물리학이 너무해

⟪다정한 물리학⟫•해리 클리프

1.

수학에서 애틋한 그리움을 느끼고 화학에서 연민과 동경을 떠올리며 물리학에서 다정함을 느낀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답을 내놓기에 앞서 필자와 같이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생경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굳이, 그와 비슷한 감정을 상상해 본다면 마치 공사장 근처 쌓여있는 벽돌을 보며 눈시울을 붉히는 것과 비슷하다. 아니면 설거지를 기다리고 있는 밥그릇과 수저를 보고 향수를 느끼는 것과 유사하다. 한 마디로 평생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감정이라는 말이다. 오히려 수학, 화학, 물리학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두려움, 어려움, 후회, 좌절, 그리고 포기다. (부디 많은 분이 공감해 주길) 그런데 『다정한 물리학』이라는 무서운 제목을 가진 책이 있다. 과연 어떤 책일지 무척 궁금하다.


이 책의 저자인 해리 클리프는 작가이기 이전에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유럽 입자가속기센터(CERN)에서 입자를 집요하게 탐사하는 ‘실험물리학자’이다. 뉴턴과 아인슈타인을 비롯해 우리가 알고 있는 위대한 과학자의 대부분은 ‘이론물리학자’이다. 물론 이론과 실험의 구분이 불분명했던 시절에는 그 둘을 모두 혼자서 감당해야만 했다. 용기 있는 가설과 철저한 증명, 어찌 보면 이 둘은 과학이라는 학문의 가장 중요한 가치이자 과학자를 꿈꾸고 있는 사람의 로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눈길을 끄는 것은 저자의 실험물리학자라는 정체성이 독자들에게 제시하는 과학, 특히 입자물리학 분야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이다. 거기에는 열정과 인내뿐만이 아니라 자연을 사랑하는 인간의 순수한 마음이 함께 있다.


책이 다루는 내용은 ‘무에서 시작하는 사과파이 만들기’이다. 별것 아닌 것을 왜 책까지 썼는지 의구심이 드는 독자도 있겠지만, 사과파이를 제대로 만드는 일은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니다. 특히, 무(無)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 다시 말해 ‘아무것도 없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빈 곳이라는 개념은 누구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우주의 시작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상식적이고 직관적인 감각으로는 지금 내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여기저기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입자물리학의 세계에선 원소, 원자, 전자, 원자핵, 양성자, 중성자 등이 넘쳐나서 좀처럼 빈 곳을 찾을 수 없다.




여기서 잠깐 물리학의 흐름에 대해 알아보자. 물리학 이론은 1920년대 이전과 이후로 크게 나눌 수 있고, 전 시대는 뉴턴의 만유인력이 이후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물리학의 발전을 이끌었다. 뉴턴과 다르게 아인슈타인은 3차원 공간에 시간의 차원을 추가함으로써 시공간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정착시켰다. 현재는 사물의 미시 세계를 다루는 양자역학이 자리매김했다. 양자역학이란 물질과 빛이 연출하는 모든 현상을 서술하는 도구이며, 원자 규모의 미시세계에 주로 적용된다. 이 이론에 의하면 우리는 임의의 물체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알 수 없다. 이처럼 원자의 핵 속의 운동과 법칙을 발견하기 위한 과학자들의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알게 된 것은 미비하다고 할 수 있다.


‘거대한 우주와 물질의 기원을 탐구하고 싶을 때’라는 부제에서 추측할 수 있듯이 책은 입자물리학의 변천사를 다룬다고 할 수 있다. 원자 모형을 상상했던 과학의 태동기를 시작으로 표준모형, 힉스입자, 초대칭, 반물질, 암흑물질에 이르는 입자를 향한 입자물리학자들의 혁혁한 발걸음을 저자만의 다정한 언어와 친절한 설명으로 풀어낸 책이 바로 『다정한 물리학』이다. 필자의 시선을 끌었던 사실이 하나 더 있다. 저자인 해리 클리프도 칼 세이건을 무척 좋아한 것으로 보인다. 책의 이곳저곳에 칼 세이건을 향한 애정과 존경심이 느껴졌다. 애초에 저자가 사과파이 제조법으로 책을 시작하는 이유도 1980년대에 방영한 <코스모스>에서 칼 세이건의 유명한 멘트를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태에서 사과파이를 만들려면, 먼저 우주부터 만들어야 한다.


사과파이를 맛있게 그리고 제대로 만들려면 결국 우주의 시작 시점까지 가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존재하는 우주에서 엔트로피가 줄어들 일은 없기에(시간이 거꾸로 흐를 확률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우주의 시작은 온전히 상상의 영역이다. 물리학자들도 아직까진 최초의 ‘0’에 도달하진 못했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우주의 시작에 빅뱅이 있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빅뱅 후 1조 분의 1초가 지난 시점까지는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입자물리학자를 비롯한 현대 물리학의 위대한 업적이자 값진 성과이다. 인간의 아름다운 탐구 정신은 이제 우주의 시작을 코앞에 두고 있다. 자연의 신비함에 매료되었기 때문에 입자물리학을 파고들었다는 저자의 말처럼 물질의 기원이 궁금한 독자에게 이 책을 권한다.


이미지 출처 : 교보문고


2.

지난 수백 년 동안 과학자들은 자연의 가장 근본적인 구성요소와 그들의 출처를 밝히고, 이로부터 우주를 만드는 조리법을 알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이 책은 바로 그 여정에 관한 이야기다.


▶︎ 자연의 가장 근본적인 구성요소와 그들의 출처를 밝히는 일. 즉, ‘우주의 조리법’을 알아내는 여정이 이 책의 목적이자 이유다.



샬럿: 오늘 저녁 별빛이 유난히 아름답지 않니?
후테르만스: 정말 그러네요. 그런데 저는 별이 빛나는 이유를 바로 어제 알았어요.


▶︎ 별이 빛나는 이유는 핵융합. 후테르만스는 로버트 오펜하이머(맨해튼 프로젝트의 아버지)의 연적이었다. 별(태양)의 일생, 태양은 언제 생성되었고 어떻게 사멸하는가? 혹은 물질(탄소, 산소, 질소)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결국, 별의 일생을 통해 코스모스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물질은 만들어진다. 우리가 ‘별의 아이’인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웨이터가 세이건에게 갓 구운 사과파이를 권하자, 그는 카메라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다음과 같은 첫 대사를 날린다 -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상태에서 시작하여 사과파이를 만들려면, 우선 우주부터 만들어야 합니다.”


▶︎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려면 그 근원에는 우주가 있다.


3.

실험 물리학 에세이


이런 분께 추천드려요!

현대 물리학의 기조가 궁금한 분

'존재'의 근원을 알고 싶은 분

친근한 물리학을 찾고 있는 분


다정한 물리학

저자 : 해리 클리프
번역 : 박병철
출판 : 다산사이언스(2022)

지식/정보 : ★★★★☆
감동/의미 : ★★☆☆☆
재미/흥미 : ★★★☆☆
이전 03화 향모가 가르쳐준 것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