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모를 땋으며⟫•로빈 월 키머러
저자인 로빈 월 키머러는 식물생태 학자이자, 교수이자, 작가이자, 어머니이자, 시티즌 포토와토미 네이션의 성원이다. 포토와토미라는 단어가 조금 낯설게 들리겠지만 쉽게 말해 아메리카 원주민인 포토와토미 부족 출신의 식물학자라는 말이다. 작가가 가지고 있는 이런 복합적인 정체성은 저자 자신에게 많은 서사를 만들어 주었으며 이 책을 구성하는 하나의 중요한 요소 이기도 하다. '향모 sweetgrass'는 풀의 이름이다. 아래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향모이다. 향모를 실제로 본다면 굉장히 좋은 향기를 맡을 수 있다. 그래서 향모의 학명도 'Hierochloe odrata'이다. 뜻을 풀이하자면 '향기롭고 성스러운 풀'이라는 의미이다.
저자인 키머러가 속한 부족에서는 향모를 '윙가슈크 wingaashk'라고 부른다. 책의 표지에도 초록색으로 땋인 매듭을 볼 수 있다. 우리에게 생소한 식물인 향모는 이 책이 담고 있는 메시지를 전달해 주는 중요한 상징이기도 하다. 향모는 저자의 고향, 즉 아메리카 원주민의 탄생 설화에 최초의 식물로 등장한다. 그만큼 향모는 그들에게 영적인 존재이자 귀중한 식물이다. 키머러가 인디언 부족원으로서 배운 토박이 지식, 그리고 식물학자로서 배운 과학 지식을 얽어서 만든 책이 바로 『향모를 땋으며』이다. 이 책은 부서져 버린 대지와 인간, 그리고 동물과 사회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쓰인 책이다. 그러기 위해서 잊혀버린 전통과 지혜, 그리고 자연에 주목하고 있다.
저자인 키머러는 미국 역사에서 지워진 인디언 부족의 전통과 토착적 지식을 되살려내 과학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인간과 대지의 조각나고 부서진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새로운 지식은 어떤 것인지를 모색한다. 책의 첫 장은 작가가 속한 포토와토미 부족의 탄생설화, 즉 아메리카 대륙의 탄생설화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책 전체의 주제와 맞물리는 중요한 얘기이기 때문에 간단히 살펴보자. 그리고 무엇보다 아름답다. 태초에 어느 날, 한 여인이 하늘에서 떨어진다.(하늘 여인) 땅에 살던 동물들은 힘을 모아 여인이 잘 살 수 있게 도와주게 된다. 또 자신들의 희생을 무릅쓰고 보금자리도 만들어 준다. 하늘 여인은 동물들의 도움을 받아 대지를 만들고 하늘에서 가져온 온갖 식물과 열매, 씨앗을 땅에 심고 돌본다.
이때 땅에서 가장 먼저 자라난 식물이 윙가슈크, 향모였다. 이렇게 동물의 도움을 받고 자라난 식물들은 다시 동물을 먹이게 되고, 이런 선순환의 과정 속에 땅은 풍요와 번영의 시대를 맞이한다. 짧지만 아름다운 이 이야기에는 아주 중요한 가치가 한 가지 숨어 있다. 바로 '호혜성'이다. 호혜성이란 서로 혜택을 누리게 되는 성질을 말한다. 결국 서로 좋은 것을 주고받는 것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책 전반에 걸쳐서 끊임없이 반복되고 강조되는 단어이기 때문에 이 책을 아우르는 아주 중요한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바로 위에서 이야기했던 아메리카 대륙의 탄생설화를 보면 동물들이 하늘 여인을 도와주고 하늘 여인이 식물을 주고, 식물이 동물을 먹인다. 이러한 구조가 바로 호혜성을 주고받는 구조이다.
저자인 키머러는 인간과 자연 사이에 이런 호혜성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과거의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자연과 호혜적인 관계를 중시하며 살아왔지만, 오늘날의 우리는 자연의 것을 일방적으로 착취하고 인간 혼자만 이득을 보는 구조가 되었다. 이것은 순환고리를 끊는 행위, 인간 스스로 자멸하는 행위이다. 인간의 큰 착각 중 하나, 자연은 인간이 관리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정작 인간을 키우는 것은 광활한 대지이다. 우리는 자연을 효율적으로 착취함으로써 내가 가진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 인류가 생존할 가능성은 줄어들고 있다. 탄생설화와 얽힌 이런 호혜성의 이야기는 얼핏 들으면 상당히 교조적이고 감성적이다.
하지만 『향모를 땋으며』가 정말 탁월한 점은 이 같은 호혜성의 원리를 과학적 사례를 제시하며 객관적으로 보여 주는 데 있다. 이 책을 '과학' 에세이로 분류하는 근거이자 가장 주목할 만한 요소이다. 그것은 바로 '세 자매' 이야기다. 옥수수, 콩, 호박. 저자는 이 세 작물을 일컬어서 '세 자매'라고 표현했다. 셋을 함께 땅에 심으면, 가장 먼저 옥수수가 크게 성장한다. 그다음에는 콩이 이 옥수숫대에 의존해서 덩굴처럼 자라난다. 이렇게 자라난 콩은 식물에게는 늘 부족한 질소를 공급하게 된다. 호박은 가장 늦게 땅을 덮으면서 자라난다. 넓게 퍼지면서 자란 호박잎은 옥수수와 콩 밑동에 수분을 보호해준다. 충분한 습기를 제공하고, 또 빽빽하게 자라나서 다른 식물이나 해충의 접근도 막아준다.
세 자매들은 이렇게 서로의 필요를 채우면서 협력하고 번성하고 발전한다. 결과적으로 이 세 작물은 서로에게 철저히 호혜적으로 자란다. 책의 후반부에서 소비 중심의 삶이나 자본주의의 그늘을 경계해야 한다는 저자의 생각도 함께 살펴봐야 할 중요한 사항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키머러는 전설 속의 괴물 '윈디고'를 언급한다. 윈디고는 먹을게 하나도 없는 혹독한 겨울철에 등장하는 괴물로 사람들이 배가 너무 고픈 나머지 인육을 먹게 되면 이 윈디고가 된다. 윈디고는 먹어도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기 때문에 항상 배고픔에 시달리고, 이런 욕망으로부터 영원토록 벗어나지 못한다. 키머러는 윈디고 이야기에서 소비사회에 중독된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윈디고의 무서운 점은 마치 좀비처럼 다른 사람을 물어서 타인 조차도 윈디고로 만들어버린다는 데 있다. 이것을 지금 우리 사회에 비춰보면 인간의 채워지지 않는 탐닉, 대지와 자연을 파괴하면서까지 나를 채우려는 욕구가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전염되고, 결국에는 모두가 피해자가 되는 것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이 가진 메시지는 자연과 인간이 서로를 돌보고 믿음으로 아껴야 한다는 것, 자연과 인간이 호혜적인 관계가 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명확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도시의 삶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이것을 실천한기가 쉽지 않다. 무엇인가 땅에서 채취하고, 돌보는 생활보다는 그냥 어딘가에서 구매하는 행동에 더 익숙하다.
문명의 발달이라는 이름 아래 자연은 황폐해지고 있지만 그로부터 얻어지는 부산물로부터 완벽하게 벗어날 수 없다. 작가도 이러한 상황을 잘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완벽하지 않지만 돈을 어떻게 쓰는가로 호혜성을 실천할 수는 있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도시 거주자들은 땅과의 호혜성을 직접적으로 실천할 방법이 거의 없기 때문에 우리가 가진 화폐를 호혜성의 간접 수단으로 이용하자고 제안한다. 책을 읽는 내내 사인 함수의 주기처럼 반성과 감탄을 반복했다. 식물학자가 바라본 21세기 우리의 모습은 너무나도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다. 저자가 반복적으로 강조한 '호혜성'은 쓸모없는 것을 넘어 가까이해서는 손해만 보는 멀리 해야 할 가치로 취급받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문명의 출발은 자연과 인류의 호혜성이었다. 저자가 던지는 질문을 하나하나 되새기다 보면 현재를 사는 인간으로서 반성하게 된다. 또한 마음에 새기고 싶은 명문장이 책의 시작부터 끝까지 쉴 새 없이 등장한다. 아름답고 수려한 문장을 만날 때마다 다양한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지혜의 보고를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직접 듣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러한 지적인 문장을 기록해 두는 것만으로도 책을 읽을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필자에게 『향모를 땋으며』는 앞으로 여러 번 만나 싶은 보물 같은 책이 되었다. 책을 펼치면 누구나 이 책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여러분에게도 널리 읽히기를 기대한다.
날개나 잎은 없을지 몰라도 우리 인간에게는 말이 있다. 언어는 우리의 선물이자 책임이다. 나는 글쓰기야말로 우리가 생명 세계와 나누는 호혜적 행위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말은 옛 이야기를 기억하는 말이요, 새로운 이야기 - 과학과 정신을 다시 합쳐 우리를 옥수수로 만든 사람으로 길러내는 이야기 - 를 만들어내는 말이다.
▶︎ 언어는 인류에게 ‘선물’이자 ‘책임’이다. 글쓰기는 단순히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것을 넘어 모든 생명체와 소통할 수 있는 행위이다.
지의류가 있는 숲은 풍성한 식물경이지만, 지의류는 식물이 아니다. 지의류를 보면 개체의 정의가 헷갈린다. 지의류는 하나가 아니라 균류와 조류 둘이기 때문이다.
▶︎지의류는 식물이 아니라 ‘균류’와 ‘조류’로 이루어진 또다른 개체이자 생명체이다.
언어가 죽으면 사라지는 것은 말만이 아니다. 언어는 다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 깃드는 장소이며 세상을 바라보는 프리즘이다.
▶︎식민지를 건설하던 많은 강대국들이 그토록 토착민의 언어를 말살하려했던 이유가 아닐까. 언어는 문자나 대화를 넘어선 정체성과 고유한 문화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땅과 사람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추천할 만한 한 가지가 무엇이냐고 종종 내게 묻는다. 그때마다 내 답은 한결같다. "텃밭을 가꾸세요."
▶︎ 인간의 큰 착각 중 하나, 자연은 인간이 관리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정작 인간을 키우는 것은 광활한 대지이다. 텃밭을 가꾸며 자꾸 흙과 친해지게되면 우리를 ‘사랑하고 있는’자연을 몸소 체험할 수 있게된다.
호혜성의 과학책
이런 분께 추천드려요!
식물에 관심이 있는 분
미국 토착민의 삶이 궁금한 분
설화를 좋아하는 분
향모를 땋으며
저자 : 로빈 월 키머러
번역 : 노승영
출판 : 에이도스(2021)
지식/정보 : ★★★☆☆
감동/의미 : ★★★★★
재미/흥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