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세이건의 말⟫•칼 세이건
인류는 자신의 한계를 철저하게 인식했기에 사회를 구성함으로써 그 한계의 벽을 하나씩 넘어왔다. 또한 벽을 넘기 위해 겪어야 했던 수많은 인내와 노력은 현재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찬란하게 살아남았다. 추상적인 개념으로 ‘인내와 노력’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그 안에 담긴 역사는 처절했고 간절했다. 특히, 과학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며 인류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사했다. 과학은 인간이 자신은 물론 자신을 둘러싼 주변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도구였다. 그렇기에 인류가 막막하기만 했던 환경의 벽을 수월하게 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반대로 전 인류를 한순간에 쓸쓸한 과거의 추억으로 만드는 힘을 가진 것 또한 과학이다.
어찌 되었든 과학은 인간이 사회를 구성하는 데 꼭 필요한 조건이자 여건이 되었다. 과학을 제외하고 인류의 미래를 계획하는 일은 이제 불가능하다. 모두가 과학의 이러한 소중하고 특별한 가치를 인정하고 있지만, 과학을 잘 안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중요하지만, 알기 어렵다는 말은 괴변처럼 보이지만 답답한 현실이기도 하다. 중요한 사회적 결정을 내리는 데 과학이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지만, 과학을 제대로 몰라 아무런 의견을 가질 수 없다면 얼마나 우울한 일인가. 그런데 여기에 누구보다 친절하게, 어떤 말보다 정답게, 그리고 그 어떤 과학자보다 정확하게 과학을 알려주는 사람이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칼 세이건은 과학의 대중화에 가장 큰 업적을 남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례로 ⟪코스모스⟫는 지금까지도 교양 과학 서적의 빛나는 고전으로 남았다. 한편, ⟪칼 세이건의 말⟫은 그가 TV, 잡지, 라디오 등에서 인터뷰한 내용을 시간순으로 정리한 책이다. 텍스트로만 만났던 천문학자의 문학적 감성을 ‘음성’으로 만날 수 있다는 점은 이 책의 가장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1) 우주의 경이로움과 2) 과학적 접근을 통한 합리적 사유의 가치는 칼 세이건이 저술한 대부분의 책에서 일관되게 등장하는 주장이다. ⟪칼 세이건의 말⟫에 등장하는 그의 인터뷰 역시 이 두 가지 화두를 담고 있다. ⟪코스모스⟫가 아직은 부담스러운 독자가 있다면 이 책을 통해 칼 세이건의 세계를 예습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과학적 회의주의를 잠깐만 이야기하고 넘어가야겠다. 칼 세이건은 평생 그의 글과 말을 통해서 과학적 회의주의를 (어떻게 보면 지독할 정도로) 반복해서 강조했다. 특히 '인간'이라는 존재가 이토록 하찮고 소소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으로 추측했다. 코스모스의 변방 중에서도 지독하게 외면된 곳에 존재하는 태양계. 그 태양계에서도 중심이 아니라 태양에 종속된 (여기가 '태양계'라고 불리는 이유다) 행성 중 하나라는 사실이 지구의 혹독한 현실이다. 칼 세이건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구는 '창백한 푸른 점'일 뿐이다. 더욱이 인간은 광막한 지구 연대기에 찰나에 불과한 순간에 존재했다. 지금까지 지구의 나이는 46억 년쯤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46억이라는 숫자가 어느 정도인지 와닿지 않는다면 다음과 같이 비유하면 좀 더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다. 만약 46억을 12시간, 즉 시계가 한 바퀴 도는 시간이라고 가정한다면 인류가 처음 지구에 등장하는 시간은 11시 59분이 훨씬 지난 때이다. 당연히 인간은 부족하고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이에 칼 세이건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 것이다. '우리의 지혜와 신중함은 자신의 불완전함을 이해하는 데서 나옵니다.' 불완전한 인간은 확증편향을 선호해 왔다. 한마디로 사실 그 자체를 믿지 않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 과정에서 진실보다는 익숙한 것이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학적 회의주의는 문명의 진보에 있어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마지막으로 글이 아닌 칼 세이건의 목소리가 듣고 싶은 독자에게도 이 책은 반가운 선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물론 그의 목소리가 생생히 기록된 책이긴 하지만). 과학이 어려운 이유는 어렵게 가르치기 때문이다. 과학은 흥미진진할 뿐 아니라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고마운 친구이다. 만약 과학이라는 학문에 정당성이 있다면 광범위한 인정과 수용에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권위에도 반박할 수 있기에 과학을 찬란한 발전을 거듭할 수 있었다. 뉴턴과 아인슈타인은 그런 관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막막하고 어렵기만 할 것이라는 우주 이야기가 얼마나 서정적이고 다정할 수 있는지 경험하고 싶은 독자가 있다면, 이 책 ⟪칼 세이건의 말⟫을 적극 추천한다.
여기 지구에서 청명한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별이 수천 개쯤 보입니다. 그 별에 모두 행성이 딸려 있고, 그 행성에서 어떤 존재가 자기가 우주에서 제일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있을지 우리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라는 보잘것없는 행성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은 정확히 어떤 의미일까? 밤하늘을 보며 상상도 못 할 문명이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인식하는 일이 가능할까? 합리적인 이성으론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 ‘반드시’ 있는 일이 되기 위해서는 엄청난 역효과를 감내해야만 가능하다. 지적 생명체의 존재 여부를 함부로 단언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것이 있는 쪽이든 혹은 없는 쪽이든 상관없다.
세이건: 네. 가령 300광년이라고 가정해 볼까요. 그렇다면 그들이 우리에게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하는 신호를 보내고 우리가 거기에 대해서 "그럼요, 덕분에 잘 지냅니다" 하고 대답을 보내는 데는 600년쯤 걸릴 겁니다.
페리스: 600년이라. 그건….
세이건: 토마스 아퀴나스의 어머니가 살았던 시대쯤 되려나요.
▶︎ 오랜 기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유구한 시간적 간격을 표현하는 유용하고 지적인 방법을 하나 발견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어머니가 살았던 시대!
과학이 발전하는 길에는 죽은 이론들이 무수히 흩어져 있습니다.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이론들이죠. 그러나 과학의 장점은 과학자들이 - 조금이라도 괜찮은 과학자들이라면 - 기꺼이 나쁜 이론을 기각하고 좋은 이론을 채택한다는 점입니다. 발전은 그렇게 이뤄집니다.
▶︎ 칼 세이건이 과학을 선호하는 이유. 그가 말하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는 ‘자기 수정’이 가능한 사고를 말한다. 기꺼이 자신의 불합리를 인정할 줄 아는 인간, 타인의 이론을 진정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인간이 합리적 인간이다.
칼 세이건 입문서
이런 분께 추천드려요!
천문학을 알고 싶은 분
읽을만한 교양 과학 서적을 찾는 분
칼 세이건의 목소리가 궁금한 분
칼 세이건의 말
저자 : 칼 세이건
번역 : 김명남
출판 : 마음산책(2016)
지식/정보 : ★★☆☆☆
감동/의미 : ★★★☆☆
재미/흥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