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머리카락은 죄가 없다.
머리에 붙어 있을 때는 아름다움의 상징이자, 사랑하는 연인이 한 번쯤 쓰다듬고 싶어 하는 매혹의 대상이다. 그런데 이 소중한 머리카락이 욕실 배수구에 시커멓게 뭉쳐 있으면 어떤가. 우리는 기겁한다. "으악, 징그러워." 인상을 한껏 구기고, 맨손으로 만지기 싫어 고무장갑부터 찾는다. (심지어 그게 방금 내 머리에서 나온 것일지라도 말이다.)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단지 놓인 '위치'가 달라졌을 뿐이다. 제자리에 있을 때는 소중하지만, 있어야 할 곳을 벗어나는 순간 그것은 치워야 할 오물이 된다. 나는 '비교'라는 녀석의 처지도 이 젖은 머리카락 뭉치와 매한가지라고 생각한다.
2023년 가을, 나는 《비교리즘》을 펴내며 "비교는 나쁜 게 아니다, 관계를 파악하는 유용한 도구다"라고 꽤나 그럴싸하게 말했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책을 덮은 뒤에도 나는 여전히 새벽 2시의 '비교 지옥'에서 허우적거렸다.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가슴은 타인의 성취와 나의 초라함을 견주며 부지런히 괴로워했다. (작가가 자기 책대로 못 사는 건, 의사가 충치 생기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변명해 본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나는 내 책의 두 번째 장을 다시 펼쳤고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그동안 비교를 '경쟁의 배수구'에 방치하고 있었다. 우열을 가리고, 등급을 매기고, 기어이 패배감을 맛보고야 마는 그 축축한 곳. 그곳에 놓인 비교는, 아무리 좋은 논리로 포장해도 결국 혐오스러운 오물일 수밖에 없었다.
비교는 죄가 없다. 우리가 그 녀석을 엉뚱한 곳에 두고 오용하고 있을 뿐이다. 비교는 "내가 너보다 낫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흉기가 아니다. "너와 내가 이렇게 다르기에 각자 고유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이해의 도구'여야 한다. 《비교리즘 2.0》은 하수구에 빠진 비교를 건져내어 벅벅 씻긴 다음, 판단과 혐오의 자리에서 이해와 공감의 정원으로 옮겨 심는 작업이다. 타인의 속도와 나의 방향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삶이 '어떻게 다른지'를 확인하며 세계를 넓혀가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비교의 본질이다.
이 책은 내게 '아픈 손가락'을 치유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지난 책을 쓸 때, 결이 맞지 않거나 내 내공이 부족해 서랍 속에 슬그머니 밀어 넣었던 소재들이 있었다. 돌이켜보니 그것들은 비교를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꼭 필요한 부품들이었다. 속도보다는 방향을, 평가보다는 인정을, 사과보다는 변명을 구분해 내는 그 예민한 시선들. 나는 그 안타까운 자식들을 다시 불러와 먼지를 털고, 단단한 문장으로 일으켜 세웠다. (먼지 털다 보니 꽤 쓸만한 녀석들이었다.) 이 책은 그렇게 복원된 12편의 이야기와, 현실의 파도를 넘으며 덧붙인 치열한 기록이다.
이것은 오류를 수정하는 반성문이 아니다. 거센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집을 짓기 위해 벽돌을 더하고 시멘트를 덧바르는 '보강 공사'다. 설계도는 틀리지 않았다. 다만 그 논리를 현실에서 버티게 할 기둥이 좀 더 필요했을 뿐이다. 사랑에 호혜성이 있어야 아름답듯, 비교에도 호혜성이 있어야 한다. 나를 깎아내리는 칼날이 아니라,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야 한다.
설계도는 다시 펼쳐졌다. 이제 하수구 뚜껑은 덮고, 비교를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부디 이 책이 당신의 삶에 들이닥친 비교의 고통을, 깊은 이해로 바꾸는 작은 연장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