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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SMO Dec 21. 2021

종교에서 과학으로

장미의 이름•움베르트 에코 | 책리뷰

stat rosa pristina nomine, nomina nuda tenemus.

지난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


5세기에서 15세기 약 천 년간 중세 유럽은 종교의 세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가톨릭의 영향력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래서 종교 권력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교황의 권력은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고 했다. 역사는 근대로 넘어오면서 교황권의 부조리는 극에 달하고, 결국 자신의 몰락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른다. 이러한 세기말적 시대상과 그 당시 유럽의 중심이었던 이탈리아 북부 고즈넉한 수도원이 이 소설의 시간적, 공간적 배경이 된다.


수도원에서는 끔찍한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셜록홈스와 왓슨은 중세에도 있었다. 그 시기에 수도원을 방문한 외부인, 즉 윌리엄 수도사와 아드소 수련생이 사건의 원인과 범죄자를 추리해 나가는 것이 『장미의 이름』의 전체 줄거리이다.


사건을 파헤칠수록 수도원의 비밀과 부패가 점점 드러나게 되고 사건의 주요한 원인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권’과 깊이 연관되어있음이 드러난다. 소설 속에서는 등장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1권은 ‘비극’을 다루고 제2권은 ‘희극’을 다루었을 것이라고 많은 전문가가 예상했다. 실제로 『시학』제2권은 비슷한 책이 존재할 뿐 출처가 분명한 책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중세 종교적 세계관의 아지트인 수도원. 그곳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의 원인이 희극, 즉 ‘웃음’을 연구한 책 때문이라는 역설은 수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또 저자인 움베르트 에코가 『장미의 이름』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역사의 큰 흐름은 종교의 시대는 가고 기술과 과학의 시대가 오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 그러나 여기에 믿음을 기울이기 위해서는 우선 보편 법칙의 존재를 전제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그 전제를 믿을 수가 없다. 보편 법칙과 기정 질서라고 하는 개념의 존재는 하느님이 이런 개념의 포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절대 자유로운 분이시고, 원하셨다면 일거에 세상을 바꿀 수 있으셨던 분이 아니냐?


이 책을 범인과 범죄의 원인을 추적하는 '추리소설'로 읽는 것도 물론 좋겠지만, 그러한 흥미진진한 서사 뒤에 있는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면서 읽는다면 더욱 의미 있는 독서가 될 것이다. 복잡한 이야기 구조 속에서 에코가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일까? 중세를 대표하는 종교나 신앙이 시대의 큰 흐름을 거부하며 보이는 위선과 욕망으로 인간에게 어떤 일까지 저지를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신앙과 과학의 경계에서 그리고 중세와 근대의 경계에서, 갈등하는 세력이 서로의 신념을 지키겠다는 명목으로 보여준 추악한 행태들은 선량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희생을 강요했다.


『장미의 이름』에서 '장미'는 앞에서 언급한 중세 그 자체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중세 말 종교의 부패, 탐욕, 권력, 부조리 등 화려한(?) 과거의 모습을 중의적으로 표현한 것이 장미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희곡'과 '웃음'은 근대의 정신 혹은 과거의 부조리를 벗어나기 위한 시대정신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거대한 시대의 흐름에도 과거의 영광을 지키기 위해 '살인'까지 저지르는 종교의 행태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책은 900페이지가 넘기 때문에  두꺼운 편이다. 기호 전문가인 에코가 숨겨놓은 모든 디테일을 일일이 확인하면서 읽기 위해, 주석과 본문을 자주 오가다 보면 정작 중요한 서사의 흐름을 놓치기 쉽다.  그렇게 읽다 보면 쉽게 지쳐 책의 진도도 더디게 된다. 신앙과 과학 혹은 중세와 근대의 경계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책을 읽는 것이 오히려  많은 것을 얻을  있는 독서가  수 있다고 본다.


장미의 이름•움베르트 에코 | 열린책들
지식/정보 : ★★☆☆
감동/의미 : ★★★☆☆
재미/흥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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