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봄∙레이첼 카슨 | 책 리뷰
내가 한 가지 확실히 알고 있는 건 자연의 아름다움을 파괴하면 인간의 정신의 성숙도 지연된다.
해석하기 힘든 데이터와 복잡한 그래프가 뒤섞여 있기 때문에 읽기 어렵고 난해한 고전일 것이라는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책의 시작은 따뜻한 문학작품처럼 서정적이었다. 푸른 초원과 숲, 그곳에 살고 있는 생명체의 아름다움을 마치 시처럼 풀어내는 나지막한 목소리가 담겨있다. 하지만 저자가 준엄하게 지적하고 있는 절대 용납하기 어려운 미국 정부와 화학업계의 만행, 그리고 환경문제에 관한 대중의 미약한 인식 때문에 책의 내용이 전개될수록 독자들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질 것이다.
레이첼 카슨이 말하는 현실은 그야말로 참혹했다. 『침묵의 봄』에 등장하는 화학 방역제의 무분별한 남용으로 인한 자연파괴의 사례들은 충격을 넘어 공포로 다가왔다. 지저귀는 새소리, 바람에 너울대는 나뭇잎 소리처럼 숲을 산책할 때 듣던 익숙한 소리가 없는 ‘침묵의 숲’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이러한 화학 방역제, 다시 말해 살충제는 크게 두 가지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한 가지는 DDT로 대표되는 염화탄화수소 계열이고 또 다른 그룹은 말라티온과 파라티온으로 대표되는 유기인산 계열이다. 이들은 생명계의 뼈대를 이루어 ‘유기물’을 만드는 탄소 원자를 기본으로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유기물은 모든 생명체의 기본적인 작용과 연관되어 있지만 특별한 변형 과정을 거치게 되면 죽음을 초래하는 유독 물질로 바뀌기도 한다.
침묵의 책임은 다름 아닌 우리들이다. 인류는 마치 지구에서 가장 우월한 종처럼 행동하고 있다. 자연과 환경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거만한 사람들에게 저자는 그러한 생각의 결말이 인류의 종말처럼 끔찍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19세기는 영국의 과학혁명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극소수의 지식인을 제외하면 대부분 사람들에게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은 전무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사람들에게 인간과 사회, 인간과 국가는 화두로 쉽게 오르내렸지만, 환경문제는 그렇지 못했다. 막연히 개인의 윤리와 도덕성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인식했다. 이어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과학자들은 살상용으로 사용했던 화학 무기에 조금의 변화를 주면 곤충 박멸에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박멸의 대상이 곤충이나 잡초가 아닌 인간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제야 깨닫고 있다.
경제적인 이익과 정치적인 편협함 그리고 부족한 정보를 핑계로 자행되었던 화학적 방역은 우리 주변의 생명체를 파멸의 길로 이끌었다. 부메랑처럼 인류에게도 암, 백혈병, 유전자 변이, 생식 불가 등의 치명적인 부작용을 초래했다. 이러한 무분별한 방역은 해충박멸이라는 목적이 제대로 수행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오히려 더 큰 피해를 주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저자는 미국에 무역을 통해 유입된 불개미 사례를 소개한다. 미국 농무부, 살충제 제조회사, 언론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환상의 협업을 선보인다. 불개미에 의한 쇼크사 사건이 발생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언론에서는 '불개미, 당신 목숨이 안전합니까'와 같은 자극적인 헤드라인의 기사를 쏟아낸다. 이어 농무부는 불개미 퇴치계획을 엄숙하게 발표하고 대중들은 공중 살포되는 화학 방역제를 자랑스럽게까지 바라본다. 21세기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들에게도 낯설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자연을 통제한다는 말은 생물학과 철학의 네안데르탈 시대에 태어난 오만한 표현으로 자연이 인간의 편의를 위해 존재한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응용 곤충학자들의 사고와 실행 방식을 보면 마치 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간 듯하다. 그렇게 원시적 수준의 과학이 현대적이고 끔찍한 무기로 무장하고 있다는 사실, 곤충을 향해 겨누었다고 생각하는 무기가 사실은 이 지구 전체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크나큰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침묵의 봄』이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관심을 끈 이후 그녀 주장의 신빙성을 확인하기 위한 연방정부와 주정부 차원의 조사가 이루어졌다. 살충제 공중살포를 허용한 위원회는 유독성 오염물질 살포에 반대하는 시민 차원의 조직을 만들기 시작했다. 입법부는 모든 정부 차원에서 이런 눈에 보이지 않는 유독물 살포를 금지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매년 4월 22일 지구의 날이 제정됐다.
20세기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책. 이 책은 자연을 통제, 정복, 개조하려는 인간 중심의 패러다임을 자연생태계를 존중하며 우리가 그 일원임을 정확히 인식하고 지속 가능한 삶, 공존하는 삶으로 전환해야 함을 강조했다고 생각한다. 언론의 비난과 이 책의 출판을 막으려는 화학업계의 거센 방해에도 저자는 환경 문제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대중의 적극적 지지를 끌어내며 세계 정책 변화의 움직임을 유도하고 지구 환경 운동 촉발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인간의 오만함은 항상 문제이다. 레이첼 카슨은 겸손한 자세로 지구환경 전반에 대한 이해를 기반한 생명 친화적인 방역 대책만이 인류의 미래를 보장한다고 말하고 있다. 지식의 성배를 주장하던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무지를 인정해야 했다. 과학계는 물론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사피엔스에게 환경보호는 내가 몰라도 되는 누군가의 문제가 아니며 급박하고 절실한 우리 모두의 문제임을 일깨워주기 충분한 책이었다.
책 한 권이 자본주의 체제를 바꿀 수는 없지만 그녀의 도전에서 과학과 정부가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는 시민환경운동이 시작되었다. 환경파괴와 관련된 지식을 집대성하고 이를 쉽게 책으로 풀어냄으로써 정계, 경제계, 과학계는 물론 일반 대중에게도 환경문제 인식의 저변을 넓혔다는 점은 레이첼 카슨의 전무후무한 업적이라고 생각한다.
침묵의 봄∙레이첼 카슨 | 에코리브르
지식/정보 : ★★★☆☆
감동/의미 : ★★★★☆
재미/흥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