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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토끼 Jun 13. 2024

새해 첫 날, 헤어졌습니다

그 여자이야기

“해피뉴이어!”

서로 새해 인사말을 주고받는 소리가 들린다.


바다 끝과 하늘이 만나는 지점, 그 어디로 해가 떠오른다. 오늘 날씨는 평년보다 춥고 구름이 낀다고 했지만, 해를 보겠다고 몰려든 사람들은 여전히 많았다.


내 마음도 소란스럽다.


같이 온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 사진을 찍는다. 나도 그 틈에 끼어 아무 일 없었듯이 포즈를 취한다.


[그래, 우리 이제 헤어진 거야. 다시 만날 일 없겠지.]


마지막 문자를 보내고 그의 연락처를 지웠다. 메시지도 수신차단, 많지 않지만 쌓여있는 ‘우리’ 사진도 지운다.

그렇게 또 한 번의 연애가 끝났다.


우리의 끝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지난밤 이야기한 이별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제 더 이상 세상이 무너질 듯이 울지 않고,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술로 나를 위로하지 않는다.




다음날, 출근 준비를 한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일상으로 돌아간다.


어른의 이별이란 그렇다.


추억이 쌓인 물건들 중 함께 주고받은 편지는 버리고 지난달 신상으로 나온 무선이어폰은 챙긴다.


그 사람이 몇 번째 남자친구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이제 적당한 사람 만나서 결혼해야지' 하고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끊임없는 소개팅과 맞선으로 지친 내게 운명처럼 다가온 사람.


5인 미만 자그마한 대리운전 회사를 운영하는 기업 대표.


그를 만난 건 인생 일대의 기로 앞.


직원과 사장 사이.


그 중대한 결정에 기꺼이 힘이 되어주겠다고 말했다.


모든 과정이 처음이었기에 서툴렀고 어려웠고 서글픈 순간이 생겼다.


그럴 때마다 내 손을 꼭 잡아주던 그 사람.


내 남은 인생을 함께하기 괜찮은 사람이라 믿었다.




1년 6개월.

짧지 않은 시간이었기에 결혼을 꿈꿨다.


2년 후면 함께 할 집이 지어진다.

예쁘고 음식 맛이 좋은 식장을 찾아보고 용한 점집에서 언제 결혼하면 좋을지 날짜도 탐색했다. 


처음부터 결혼으로 가는 과정이 쉬웠던 건 아니었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부모님의 뜻을 거스른 적이 없었다. 어머니가 운영하는 카페 사업을 이어갔으면 좋겠다는 바람. 그 바람을 지키기 위해 커피를 배우고 빵과 과자 굽는 법을 익혔다.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던 일은 아니다. 하고 싶은 일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가장 믿고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기꺼이 그 뜻을 헤아렸다.


그 사람은 부모님이 생각한 미래의 사위와 많이 달랐다. 그는 대표지만 대학을 나오지 않았고 매달 많은 돈을 벌지만 부모님을 부양해야 했으며, 집과 차는 있었지만 숫기가 없었다.


내 생각 반대편에 서 있는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해 애썼다.


“그래도 내 딸이 원하는 사람이니, 미래니, 내가 져줘야지.”


강철로 지어진 기둥처럼 꺾이지 않을 것 같았던 반대는 사랑 앞에서 힘없이 부러졌다.

그렇게 함께하는 우리의 미래에 한 발짝 다가갔다.


그랬던 우리가 헤어졌다.


평범한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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