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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토끼 Jul 18. 2024

우리가 헤어진 진짜 이유

그 남자 그리고 그 여자 이야기(4)

더위가 한 꺼풀 지나간 지난가을, 처음으로 그녀의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다.


번화가에 위치한 유명한 고급 중식집.


황금색 사이사이로 보이는 빨간 장식품,

돌아가는 동그란 테이블에 놓인 이름은 본 적 있지만 한 번도 주문해 본 적 없는 음식들이 놓이기 시작한다.



“우리 아빠 술 좋아해! 엄마는 와인 말고는 술 안 마시고”

지리산자락을 걸으며 넌지시 던진 말에 신경 써 사간 와인.

따라주시는 고량주 한 잔을 받으니 선물이 더없이 초라해 보였다.


“그래서 자네는 골프 좀 치는가.”

“아, 아니요.”

질문 하나하나에 애꿎은 술만 들이켠다.


속이 타들어가는 건 술 때문만은 아니겠지.


자리에 앉는 순간부터 일어설 때까지 탐탁지 않아 하던 그 표정.


한 없이 작아졌다.


자신이 없어졌다.


어른들에겐 각자 노력으로 만들어낸 현재는 중요하지 않았다.




탐탁지 않아 하던 건 그녀의 부모님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부모님과 만난 후 몇 주 뒤,

두 손 가득 백화점에서 산 고급 비타민과 과일바구니를 들고

그녀와 함께 그의 집에 처음으로 방문했다.


그녀는 어른들 앞에서도 구김 없고 해맑던 표정으로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미래를 거침없이 이야기했다.


“어머님 아버님이랑 같이 골프 치러 가고 싶어요.

저는 잘 못 치지만 부모님이랑 가끔 가는 데

함께 필드를 돌면서 보내는 시간이 좋더라고요!”


진심 어린 바람 뒤에 돌아온 말은 날카로웠다.

"카페를 한다며요? 새벽부터 저녁까지."


“네, 베이커리 카페라 새벽에 출근해요.

빵을 직접 구워서요. 대신 마감을 조금 일찍 해요.”


"오메, 그럼 우리 아들이랑 일하는 시간이 정반대네.

나는 여자는 집에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하하… 그렇죠. 서로 시간이 다르죠.

어머니 생각은 그러시군요.”


대화가 이어질 때마다 점점 굳어가는 표정.

목구멍에 무언가 걸린 것처럼 까끌거리는 그 느낌.


그녀를 집에 바래다주고 집으로 돌아오자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사람이 고생 한 번 안 해봐서 맑고 티가 없더라.

살아가는 데 있어 성격, 가치관만큼 경제적 배경이나 지내는 환경도 중요하단다.

너도 그 아이도 우리와 함께 할 생각이 있는 거지?

서로 상의해 보고 이 결혼 진지하게 생각해 보거라.”


그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기존의 가족과 함께 할 것인가.

새로운 가족과 함께 할 것인가.




그의 부모님을 만나고 서로 시간을 가지자고 이야기했다.

그동안 서로 간단한 안부만 묻는 게 고작이었다.

생각할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싶었지만 일주일 뿐이었다.

일요일에 방문하기로 예약된 협찬 장소가 있었다.


눈 덮인 산길이 굽이진 곳.


경쾌한 음악이 차 안을 채우고 있지만 서로 말이 없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정적을 깬 목소리가 들린다.


“왜 말이 없어. 무슨 말 좀 해봐.”

애처롭다 못해 애달픈 그녀의 목소리가 차 안에 퍼진다.


“어른들이 우리 결혼 반대해서 그래? 응?

나 반대해도 결혼할 거야. 내가 우리 부모님도 설득했어.

그러니까 우리 좀 더 노력해 보자. 내가 더 잘할게."


그는 괜찮다고 그럴 필요 없다 답했다.


“우리 서로 사랑하잖아.

내가 내 일 하겠다고 욕심부려서 그래?

부모님이 원하는 집에 있는 여자가 아니라서?

우리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끝내 그녀의 두 눈 가득 눈물이 고인다.

그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빠르게 훔치는 그녀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만하자. 일단 일부터 하자.”

그는 체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도 알았다는 듯 천천히 두어 번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매달리지도 붙잡지도 않았다.


우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미팅을 하고

협찬 장소의 사진을 찍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

서로 여전히 말이 없었고

삭막한 공기가 공간을 채웠다.

“미안”

이게 나의 마지막 인사.


지난밤 남겨진 문자를 확인했다.

[우리, 여기까지겠지? 다시 만날 일이 있을까?]

[응, 그럴 일 없도록 알아서 해결할게.]

답장을 보냈다.


연락 온 일을 해결하기 위해 사무실로 향했다.

다시 단조로운 일상으로 돌아왔다.


블로그 속 함께 한 기록을 지웠다.

함께를 약속했던 모든 위약금을 물었다.

어른의 이별이란 무릇 이별을 고한 쪽에서 많은 비용을 치러야 했다.


나의 선택에 후회하지 않는다.

아직 나에겐 미래의 가족보다 현재의 가족이 더 중요했기에.

그 비용이 전혀 비싸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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