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에 대한 고찰
아우, 이건 왜 이렇게 안 떨어져
창문에 이전 세입자의 흔적이 아직까지 남아있다.
유리창마다 뭘 그렇게 붙였는지 다년간 햇볕에 녹아내린 접착자국은 약물을 써도 말끔하게 지워지지 않는다.
원상복구를 깐깐하게 요구했다면, 청소를 시키든 비용을 받든 말끔해졌겠지만 주인은 그러지 않았다. 부동산 거래는 이렇기도 하다. 법으로는 규정되어 있지만 따져대면 피차 좋은 소리는 못 듣는다. 다수는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좋게 좋게 매듭짓는다. 이사 날짜도 원복의 정도도 계약 형태도 모든 게 유연하다. 집이든 상가든 삶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파리에서 집을 구하기 위해 면접 보던 이야기를 썼다. 구하는 것만 힘들었던 게 아니다. 프랑스에서 월차 계약을 하면, 바로 열쇠를 받는 경우는 드물다. 계약은 우리로 따지면 계약금과 계약서를 쓰는 정도로 보통은 이때는 개인 수표를 준다. 월차료는 입주 시에 치르는데 이때 또 서류를 준비해야 한다.
세입자는 집보험을 집주인은 집 상태 확인서를 준비한다. 특히, 학생이나 초년생처럼 목돈 마련이 어려워 보이는 경우, 입주보다 먼저 집보험이 시작되는 걸 요청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보험비는 사고가 터지지 않는 한 거의 오르지 않지만, 배관 막힘이나 재난으로 인한 파손, 현관문 도어록 교체 등 집주인이 담당해 주는 수리의 거의 모든 비용을 커버했다. 무엇보다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집주인이 준비하는 상태 확인서는 그런 분쟁 발생 시 책임 여부를 가늠하는 기준이다. 세입자 보호를 위해 제정되었지만, 하자가 있는 집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경우가 오히려 드물다. 입주순간 모든 게 정상작동한다는 서류에 사인을 하면, 그다음 발생하는 사고는 높은 비율로 세입자의 보험사에 전가된다. 집주인과 세입자가 싸우는 일은 거의 없다. 싸움대신 청구서로 넘기는 게 이 시스템의 요지다. 그래서 친절한 어른들은 내게 학생 보조가 있는 학생 보험사나 거래 은행에서 집보험 계약을 추천해 줬다.
우리 집 상태 확인서
집 상태를 확인하는 서류를 프랑스는 에따데류(Etat-des-lieux)라고 한다. 입주와 퇴거 시 작성이 의무로 명목은 세입자 보호다. 부동산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확인하는 문서로 창문 여닫음 상태나 배관, 냉온수, 난방기 등 모든 세부 사항이 정리되어 있다.
보통은 세입자와 집주인, 당사자 두 사람이 함께 확인하며 작성하나 경우에 따라서 제삼자인 법무사(huissier)가 참관하기도 한다.
입주 시에만 작성하는 게 아니다. 퇴거일에도 마찬가지다. 서류를 작성한 뒤에야 열쇠를 돌려줄 수 있다. 작성된 두 서류를 교차 검증하고, 집에 관련된 공과금 및 외관상 확인 안 되는 문제를 확인한다는 명목으로 보증금 반환도 최대 2개월까지 연장할 수도 있다.
임차를 하는 당사자가 갑일수는 없다
임차기간이 늘어날수록 합법적으로 공제할 수 있는 보증금도 늘어났다. 벽에 생기는 얼룩처럼 감가가 발생하는 인테리어 장식들도 그렇지만, 서류적인 문제도 있다. 예를 들면, 모든 건물에는 관리비가 발생하는데 임차료가 임차료+관리비로 정해져 있다면, 법에 보호를 받는 임차료는 그대로지만, 매년 오르는 관리비에는 차액이 발생될 수 있다. 퇴거 시에 보증금에서 관리비를 제하고 주던 집주인도 있었다.
보증금을 돌려받아야 해서 그럴까. 세입자들은 협조적인 편이다. 무엇보다 부동산 약속 시에 제출해야 되는 서류에 끼땅스(quittance)라는 월세납입 영수증을 최소 3개월을 제출해야 한다. 영수증에는 당연히 이전 집주인의 정보가 있어 세입자의 정보를 알고자 하면 알아낼 수 있다.
그래서 그럴까. 프랑스에서도 살고 있는 집에 방문하는 경우도 있다.
법대로 하는 게 늘 좋은 것은 아니다.
모든 제도는 처음 취지는 좋다. 그러나 적용은 다른 이야기다. 특히 검소한 유학생 살림처럼 취약층에게 법과 서류가 끼어있는 계약은 위협적이다. 이 제도는 분쟁을 가정한다. 누구든 하나가 분쟁을 시작하면 먼저 양보한 사람은 바보가 된다. 서류가 계약이 종료되는 순간까지 절차대로 진행하도록 상황을 몰고 간다.
나는 보증금을 모두 돌려받기 위해서 청소 및 복원 전문가가 됐다. 벽의 얼룩은 페인트로 가리고 깨뜨리거나 빠진 가구는 새로 채워 넣었다. 내가 떠나는 즉시, 바로 다음 세입자가 들어올 수 있는 상태의 집으로 만든다. 나는 여덟 번의 이사 중 단 한 번도 청소 때문에 보증금을 덜 돌려받는 일은 없었다. 그러니 남아있는 전 세입자의 흔적에 투덜거릴 자격은 있지 않을까.
어쩌면 그래서 일지도 모른다.
프랑스인들은 이사를 자주 하는 편이 아니다. 그건 세간이 비교하듯, 임차 시장이 안정적이어서 그럴 수도 있다. 월세가 반고정적이고, 모든 도시가 정착하기 좋으며, 일자리가 안정적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보다 현실적인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내가 파리에서 지냈던, 레지던시-친구집-하녀방-관광지 1층-파리외곽 셰어하우스-파리중심 셰어하우스-번화가 3층-기숙사까지, 개별 계약 시에는 입주와 퇴거가 어렵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심지어 셰어하우스조차 깐깐했다. 단지 기숙사만 아주 간단한 절차였는데, 그건 내가 있던 기숙사가 한국관으로 한국에서 운영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에서 집을 찾아야 한다.
2025년 부동산 시장은 다시 요동치고 있고, 무주택 세대주에게는 위협적이다. 예전에 쓴 파리의 세입자 면접을 설명할 때는 오늘 이런 세세한 이야기까지 굳이 쓸 필요가 없었다. 월세가 집값의 4%라고 감안해도 한국이 훨씬 괜찮았다. 오히려 부동산이라는 자산 임차 계약조차 유연하게 처리하던 우리가 더 대단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내가 알던 한국 부동산 시장은 사라지고 있다. 전세는 없어지고, 임차료를 올려야 좋은 집주인이라는 이상한 주장도 들었다.
다시 중심을 잡을 필요가 있다. 부동산을 빌리는 건 터전을 빌리는 것과 같다. 빌려주는 사람도 빌리는 사람도 금전 거래 이상의 가치를 주고받는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그 가치는 당연히 분쟁을 가정하는 법이나 시장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다. 우리는 더 잘살기 위해 부동산이 필요한 거다. 그 과정에서 금전적 이득을 추가로 얻을 수도 있지만, 이득만 쫓으면 우리 미래는 서류에 갇혀 작은 친절도 베풀지 못하는 괴물들의 세상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