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인들에게 유행이란...
그런 게 없을 것 같지만, 연구 주제도 인기라는 게 있었다.
내가 사회학과에 있던 2010년대 인기 주제는 젠더(le genre)였는데, 프랑스에서 젠더 연구는 주로 생물학적 성(sexe), 인종(ethnicité), 종교(religion) 세 가지를 포함한 단어였다.
그리고 내 전임 교수님이던 c는 이 분야의 권위자로 이민자 가족 연구에 특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학과 대다수 학생들이 c 교수님에게 논문 검수를 받고 싶어 했다.
넘쳐나는 연구 계획서를 받은 교수님은 하루는 이런 말을 했다.
"아무리 대세라지만, 열 명 중 여덟 명의 주제가 젠더연구면 어쩌자는 거예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사회 문제는 젠더밖에 없는 거예요? 앞으로 젠더 주제는 가져와도 안 받아 줄 거예요. 제발... 생각 좀 해요."
실제로 젠더 연구는 소수자 연구로, 사회 약자를 대상으로 하는 연구다.
가장 필요한 곳에 사회적 노력을 보태겠다는 포부는 좋지만, 소수자는 소수이기 때문에 소수였다. 다수의 연구가 소수에게 몰리면, 정작 다수를 위한 고민은 누구도 하지 않게 되는 불균형한 상황이 된다. c 교수님은 학과의 방향이 소수자 연구에 휩쓸리지 않도록 균형을 잡았던 거다. 그렇게 우리 연도에는 소수자 연구가 금지됐다.
참고로, c교수님의 지도를 못 받는다고, 연구를 못 하는 건 아니었다. 뚝심 있던 다른 동기들은 학과 밖으로 나가 잡지를 만들었고, c교수님은 그 잡지의 소수자 연구 감수를 기꺼이 맡았다.
진짜 아이러니는 그 세 가지 모두가 결여된 나는 완벽한 약자였기 때문에, 별 탈없이 c를 전임교수로 거머쥘 수 있었다는 점이다.
c 교수님은 청소년 자녀를 키우고 있어서 요즘 세대의 유행을 잘 아는 데다가, 사회 전반에 관심도 많았다.
종종 c 교수님의 수업은 시중에 인기 있는 책이나 문화를 언급하는 걸로 시작했는데, 하루는 프랑스 여성들의 가방에 대해 적은 사회학자의 대중서를 가져왔다.
거기서 유행은 단순히 유행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들고, 메고, 넣고, 가지고 다니는 것들에는 시대의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거기서 우리는 시대를 짐작하고, 세대를 구분 짓고 정의하게 된다. 흥미로 시작하는 연구에는 그런 재미가 있었다.
그 이론을 강의실에 적용하면, 다른 것도 보였다.
일테면, 비슷해 보이는 남자애들의 수염 모양이나 귀걸이나 팔찌 같은 액세서리 모양부터 입고 있는 옷 브랜드나 핸드폰이나 노트북 같은 수업 듣는 방식까지 유행이 있었다.
그리고 그 유행에 우리 세대의 정체성도 있었다.
그렇게 하루는 가방 브랜드에 대한 토론을 했다.
한동안 아니 지금도 파리에는 미국 브랜드인 마이클 코어스 가방이 엄청 눈에 들어오는데, 왜 그럴까 하는 질문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샤넬과 루이비통의 도시에 마이클 코어스 가방이 자주 보인다.
첫째 가설은 공급 문제였다.
그 당시 파리 근교에는 새로 아울렛(라발레빌라주)이 지어졌었다.
마이클 코어스는 아울렛 주력 브랜드로, 중저가로 트렌디한 디자인의 가죽 가방을 비교적 저렴하게 판매한다. 그래서 사회 초년생이나 직장인들처럼 서류가방이 필요한 여성들의 데일리 백으로 사랑받았다. 심지어 주제를 던졌던 c교수님도 마이클 코어스 백이 있었다.
어쩌면, 이런 가설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넷플릭스나 미국 드라마를 통한 문화 유입일 수도 있다. 지금은 더 진행됐지만, 당시 프랑스는 미국 대중 문화 유입도가 높았다. 그건 공영 채널의 황금시간대에 방영되는 미국 시리즈 드라마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윽고 스마트폰과 넷플릭스가 대중적으로 보급되자, 프랑스 통신사들은 앞다투어 넷플릭스 정액권을 상품으로 끼워 팔았다. 거기에 몇 년 전부터 주요 상점에는 미국 대표 문화인 블랙 프라이데이 세일이나 핼러윈 축제로 마케팅을 했다.
어쩌면 브랜드 선호는 프랑스인들의 영미권 문화에 대한 호감을 반영할지도 모른다.
나는 갑자기 프랑스 주류 사회는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런데 신뢰할 수 있는 표본이 별로 없다. 그래서 교수님들을 돌이켜 봤다.
c 교수님에게는 마이클 코어스 가방도 있었지만, 제일 자주 드는 가방은 란셀(lancel) 사의 보르도색 서류 가방이었다.
(대화를 하다가 교수님이 뭔가(펜이나 노트북)를 꺼내드는 건, 좋지 못 한 신호였기에 슬프게도 나는 그 가방을 잊지 못 한다...)
란셀은 프랑스 중장년 여성들이 선호하는 브랜드로 질 좋은 가죽 가방을 만든다.
오래된 프랑스 브랜드로 마크가 부각되지 않는 데다가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가져서, 프랑스 내에서는 루이뷔통 정도의 명성을 가졌다. 고 당시에는 생각했다.
왜 착각했냐고 물으면, 나도 억울하다.
그냥, 잘 몰랐다. 제일 유명한 모노그램처럼 로고가 부각된 루이비통의 유명 라인과 단순 가격 비교를 하면 비슷하다고 착각하게 된다. 그러나 소비자의 선택은 조금 더 복잡하다.
문제는 역시, 가격이다.
서류 가방이 필요해지던 2020년, 그때의 편견을 가지고 루이비통에 들어갔다. 소비자의 입장에 놓이자, 비로소 깨달았다. 루이비통에서 같은 크기와 비슷한 무게감의 서류가방을 찾는다면, 란셀 가방보다 세 배는 더 줘야 살 수 있었다.
이 사람들에겐 명품 가방이 아니라, 적당히 격을 높이면서도 깔끔하고 단정한. "서. 류. 가. 방"이 필요했던 것이다. 아무리 명품이라도 a4용지도 들어가지 않는다면, 그 가방을 구매할 이유가 없다.
물론 무리한다면 살 수도 있을 것이다.
c 교수님은 충분히 그럴수 있었다. 대강당 강의가 가능한, 직함에 진짜 "교수"가 붙는 c는 최소 중산층 이상의 생활 수준을 가졌다.
또 교수 이외에도 연구비를 지원받는 연구단체에 소속되어 있는데 다가, 통계청의 인구 조사 같은 국책 연구에도 참여하고 있다. (몇 부가 팔렸든)집필 도서도 있었고, 대화를 통해, 그 외 기타 수입원도 있으리란 짐작도 있다. 그렇지만, 결국 선택은 란셀백이었다.
나는 그 의미가 궁금했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어쩌면 우리는 같이 보낸 시간이 기니까, 기억 속에 짐작 근거가 있을지도 모른다.
교수님 연구실에서 한 번은 소수의 부유한 친구들이 던지듯 내려놓는 고야드 백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런 친구들의 물건들은 자세히 살펴보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이었다. 평범한 중산층 소녀들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백 유로정도 되는 바네사백을 받는다면, 그 친구들은 천 유로짜리 가방을 우리가 에코백 사 듯 구매해서 사용했다. 그 정도 차이였다. 모든 유학생들이 같은 환경을 가진건 아니지만, 평균적으로 유학생들은 프랑스 학생들보다 부유했다. 그래서 보조금이 거의 나오지 않는 인문대 박사 이상의 연구생들은 외국인들이 다수라는 이야기를 그 가방을 통해서 나눴다.
오늘,
코로나가 극성이라 명품 쇼핑이 늘었다는 기사를 읽다가, 교수님의 란셀 가방이 생각났다.
그 가방은 멋스럽게 길들여진 낡은 가죽 가방이었지만, 연구가 성과를 올리고 책이 출간돼도 더 좋은 브랜드로 바뀌지 않았다.
여기엔 사실, 다툼도 투쟁도 계급도 사치도 소비도 계층도 젠더도 아무것도 없다.
소비자가 비싼 가치로 사주지 않으면 가방의 가격은 그 가격이 아닐 것이고, 그 브랜드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이런 사회에 살기 때문에 그런 명품이 있고, 이 사회에 있기 때문에 그것을 욕망한다.
c 교수님은 단지 솔직한 사람이었을 뿐일지도 모른다.
뭐,
결국엔 루이비통도 란셀도 갖지 못한 내가 할 분석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