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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튼 Apr 15. 2020

용기는 어디에서 오는가

용기는 어디에나 있다


사람은 어디에서 용기를 얻는가. 종종 용기가 나지 않는 날들이 있다. 막걸리를 만들 때,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할 때‬, 내 글이 별로일 때, 머리하러 갈 때.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용기를 잃어버린다. 용기는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거라서 나는 자주 용기를 찾으러 다녔다. 용기는 우리 주변 어딘가, 어렵지 않은 곳에 숨어있다. 우리 집 거실에는 회사 창립 10주년 행사 때 찍은 사진이 액자로 세워져 있다. 내가 액자를 만든 건 아니고 회사에서 줬다. 그 사진을 보면 회사와의 기념일을 살뜰하게 챙기던 지난날이 떠오른다. 입사 6개월 만에 창립 10주년을 맞이한 나는 입사 전의 기념일과는 달리 회사와의 기념일에는 회사 좋은 일만 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쨌든 회사는 열 살이 되었고 축하가 필요했으며 그래서 회사의 일꾼인 우리는 열 살짜리 그를 위해서 2주 동안 맹렬하게 춤 연습을 했다. 크리스마스이브에도, 연말에도 쉬지 않고 엉덩이로 원을 그렸던 치욕스러운 시간들. 하필이면 회사가 ‪1월 생이라 정초부터 불특정 다수 앞에서 플래시몹이란 핑계로 춤을 추고 그마저도 영상으로 박제되었던 어린 밥벌이의 나날들‬.

거실에 서서 그런 시간들을 생각하고 있으면 ‪새벽 5시에 일어나는 게 뭐가 대수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용기가 샘솟는다‬. 괜찮아. 내일은 춤 안 추잖아. 그런 방식으로 나는 용기를 줍는다. 아쉽게도 그 액자에서 얻을 수 있는 용기는 회사에 갈 때 필요한 용기뿐이다. 글을 쓸 때 필요한 용기는 얻을 수 없다. 사소하고 가볍고 새털 같아서 좋았던 내 글이, 갑자기 같은 이유로 싫어질 때, 그 와중에 마감은 코앞이고 늘 그랬던 것처럼 새털 같은 생각밖에 안 날 때. 나는 찌질한 방법으로 용기를 불러낸다. 누군가의 댓글을 복기하고, 독립출판한 책을 네이버에서, 다음에서, 인스타에서 돌려가며 구차하게 검색을 한다. 지인들이 내 글을 읽고 보내준 카톡도 다시 읽는다. 그럴 때마다 세상에서 제일가는 찌질이가 된 기분이지만 한 편의 글을 쓸 용기는 얻을 수 있다. 한 편 한 편 쓰다 보면 마감을 지킬 수 있고, 마감을 지켰다는 사실만으로도 새로운 용기를 획득할 수 있다.


그 중에 으뜸은 영점영구가 제일이라


내가 가장 용감할 때는 돈을 쓸 때다. 걱정은 많고 용기는 적고 소심한 나지만 돈을 쓸 때만큼은 대범해진다. 웬만해서는 기죽지 않는다. 잠옷이 향수보다 비쌀 때, 당연히 향수를 사지만(안 사는 옵션은 없다.) 잠옷을 할인해서 향수와 가격이 같아지면 패기롭게 잠옷도 산다. 용기가 넘쳐흐르는 나의 소비생활. 용감무쌍한 나를 고민하게 하는 건 딱 하나, 배송비다. 모든 상품이 무료배송이면(혹은 상품 가격에 배송비가 포함돼서 고민할 수 조차 없다면) 좋겠지만, 세상은 넓고 배송비는 많다. 배송비 딜레마는 2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 번째는 물건 가격보다 배송비가 더 큰 경우다. 오프라인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물건이라면 고민은 더 깊어진다. 스텐 빨대는 1,800원인데 배송비는 2,500원이라면? 근데 눈을 씻고 찾아봐도 스텐 빨대는 없다면?? 해양생물들 콧구멍에서 플라스틱 빨대가 나온다는 얘기를 듣는다면???


잠옷을 이긴 문제의 향수... 한정판이라 어쩔 수 없었음


두 번째 딜레마는 4,000원 이상의 배송비가 나올 때다. 2,500원도 3,000원도 아닌 4,000원의 배송비 앞에서 나는 그토록 잘 지켜왔던 용기를 잃어버린다. 4,000원으로 살 수 있는 수많은 젤리들을 떠올리며 쉽게 낙담해버린다. 쇼핑할 용기를 찾을 때에도 주변을 잘 둘러봐야 한다. 용기는 분명 우리 주변에 숨어있다. 곁에서 배송비를 낼 사람을 찾는 것이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고 했던가. 빨리 받으려면 혼자 사고, 통장 잔고와 멀리 가려면 같이 사면된다. 공동구매라는 마법 앞에서 쇼핑할 용기는 무럭무럭 자라난다. 1,800원짜리 스텐 빨대 배송비는 딱 300원만 추가하면 되고, 40,000원 미만 배송비가 4,000원인 빵집에서는 빵을 12만 원 치 사서 배송비를 면제(?)받았다. 공동구매의 장점이자 단점은 딱 하나다. 1/n의 공식 덕분에  돈 쓸 용기가 폭발한다는 것.

사람은 어디에서 용기를 얻는가. 용기는 어디에서 오는가. 용기는 우리 곁에 있다. 수시로 용기를 잃어버릴 때, 갑자기 용기 내는 법을 잊어버렸을 때 주변을 둘러보자. 용기는 어디에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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