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대로 세계여행 첫 도시, 브루클린 열흘 살기
처음 뉴욕에 가본 것은 2017년 여름, 친구들과 셋이서 떠난 약 일주일의 여행이었다. 뉴욕에 터를 잡은 친구 언니의 결혼식에 참석할 겸 잡은 일정이었다. 미국의 결혼식이라니, 얼마나 신나는 문화체험이었는지!
두려울 것 없는 욜로 라이프를 즐기던 20대인 데다 계획형 친구가 함께였으며 탕진할 각오가 되어있는 여행자였기에, 뉴욕은 그저 화려하고 북적댔으며 멋진 상점과 식당이 즐비하고 다양한 인종과 뉴요커, 관광객이 뒤섞여 있어 짧은 방문으로도 묘하게 편하게 스며드는 대도시로 기억했다.
긴 여행의 시작에서 웬만하면 지출을 최소화하고자 했지만, 뉴욕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우버를 타버렸다. 14시간 비행 후에 큰 수트케이스를 들고서 낯선 브루클린에서 숙소를 찾아갈 자신이 안났다. 예전 같았으면 친구들과 같이 타서 1/3만 냈을 텐데(또르르), 처음부터 과거의 부르주아 여행과 비교하기 시작했다. 숙소도 살인적인 맨하탄 물가를 피하면서도 내 감성을 충족시킬 수 있는 곳을 뒤지고 뒤져서 그나마 박 당 70달러 정도 하는 브루클린의 한 에어비앤비 방 한 칸을 예약했다.
감각적인 공용 거실과 강아지 사진이 있는 에어비앤비 숙소는 브루클린의 어느 주거지역의 평범한 건물 4층쯤 있었다. 호스트의 친구가 문을 열어 주었고, 사진에서 보았던 강아지(라기 보다는 개) 마일로가 헥헥거리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아주 깨끗한 느낌은 아니지만 큼직한 식물들과 개성있는 가구들이 자리한 거실과, 복도를 지나가며 쪼르르 이어진 방이 4개 정도 있는 집이었다. 방 하나는 호스트가, 하나는 그의 친구가 셰어 하며 나머지 두 개는 에어비앤비로 운영하는 것 같았다. 저녁에 만난 호스트는 백인 여성 젊은이였다. 핑크색으로 길게 땋은 레게머리가 시선을 끌었었고 말투에선 쿨내가 풍겼다. ”여기서 필요하면 뭐든 써~.“ 경험 상 티끌 하나 없이 정돈되어 있고 아름다운 곳은 호스트가 뭐라뭐라하는 룰이 많은데, 이 친구는 반대의 경우였다. 무슨 일을 하는지 같은 대화를 못해본 게 이제 와서 조금 아쉽다.
장장 14시간의 비행 끝에 오전에 도착해 우선은 짐을 풀고 체크인 시간을 기다리며, 쩔은 머리에 모자를 쓰고 동네 산책을 나갔다가 첫끼로 별점이 좋은 한 버거집을 선택했다. 앞으로 혼자 정할 수많은 선택의 시작이었다. 비건 버거였던 것 같다. 비건 옵션이 있으면 가끔은 선택하기도 한다. 특출나진 않았지만 아보카도가 들어간 구성이 꽤나 맛있었고 창밖으로 마주보이는 벽돌 건물 풍경이 내가 웬 브루클린 한 골목에 와있구나 하고 실감케 했다. 8월 초, 날은 더웠지만 걷기에 좋았다. 인스타 스토리를 하나 올렸다.
숙소 근처는 맨하탄처럼 화려하진 않았지만 널찍한 도로와 번화가만큼 아름다운 디테일은 없지만 미국다운 큼직하고 낮은 건물, 거대한 가로수, 교차로마다 노란 신호등 위로 보이는 정말로 파란 하늘이 수시로 카메라를 켜게 될 만큼 충분히 예뻤다. 일요일에 걷다 보면 교회 안에서 들리는 성가대의 합창소리는 처음 들어보는 R&B 같았다. 내부가 보이진 않았지만 흑인 사람들이 가득 노래를 하고 있을 것 같았다. 어느 날은 밖에서 파티를 여는지 길거리에 테이블과 스피커를 꺼내놓고 틀어놓은 2000년대 힙합, 알앤비 음악들이 내방까지 쩌렁쩌렁 울렸는데, 나도 들으면 알 법한 유명한 노래들이라 듣기가 좋았고 선선한 여름밤에 울려 퍼지는 Rkelly의 Happy People은 십여 년 만에 들었지만 너무나 익숙하게 고막을 때렸다. 그때 그 시절 벅스뮤직으로 들었던 것 같은 추억의 노래.. 바로 내 플레이리스트에 추가되었고 이어지는 여행 내내 주요 테마곡 중 하나로 삼았다.
지내다보니 이곳은 흑인이 많이 거주하는 동네였고, 브루클린에서도 번화가에서 조금 벗어나 지하철에서 10여분을 걸어 다니는 동네. 치안 지도에서 다소 위험으로 분류된 동네와 맞닿아 있는 위치였다. 해지고는 걸어 다니지 않았지만 실제로 치안에 대해 되새기게 되었던 건 지하철 역 바로 앞의 kfc 비슷한 가게의 카운터가 공항 입국심사대처럼 유리로 막혀있었다는 점과, 치킨을 사가지고 나오던 나에게 구걸을 하는 부랑자를 만났을 때뿐이었다. 다행히 그 치킨은 기름지고 너무나 맛있었다. 하지만 넘치는 감자튀김을 방안에 두었다가 머리털이 쭈뼛서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