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는 필수품인가?

by 게으른 곰

얼마 전 이사를 했다. 한국에서도 이사는 복잡하고 정신없는데, 말 안 통하는 뉴질랜드는 말해 뭐 하랴. 한국 살림보다 가짓수는 적지만 남편 없이 하는 이사는 꽤 애를 먹었다. 무거운 짐은 장롱 한 개가 다였지만 여자 셋이 힘을 모아도 그 장롱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건장한 이웃 청년이 힘을 도와 겨우 옮길 수 있었다.


옵션으로 기본 살림이 갖춰진 집에서 살았었다. 세탁기, 냉장고, 침대, 소파가 구비되어 있었다. 이사를 계획한 건 아니었지만 이사를 하게 되니 살림이 적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옆집으로의 이사라고 해도 가전을 옮기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했을 것이다. 큰 짐은 장롱 한 개가 전부였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 조금씩 소소하게 짐을 옮겼다. 날짜가 안 맞아 얼마간 두 집 살림을 해야 했는데, 덕분에 여유 있는 이사를 할 수 있었다. 필요한 가전과 가구를 주문하고 설치했다. 새 집 살이가 시작됐다.


뉴질랜드에 올 때 내가 이곳에서 얼마동안이나 살게 될지 몰랐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막연하게 아이들이 이곳에 적응하는 시간 동안만 함께 있으려고 계획했었다. 혼자 살게 될 남편을 위함이고, 남편 없이 살기 싫은 나를 위함이기도 하다. 1년에서 길면 2년까지 있을 수 있겠다 싶었고 올해가 이제 2년째다. 그러다 보니 되도록 최소한의 살림살이만 들여놓으려고 했다. 어차피 이곳의 물건은 사용 기간이 정해져 있다. 나중에 모두 처분을 해야 하는 것이다. 나의 친절한 이웃이었던 닉은 쓰던 냉장고와 세탁기, 건조기를 나에게 넘기고 떠났다. 오래되고 낡았지만 가전을 새로 들이는 복잡한 과정이 생략됐다. 게다가 많은 돈을 아낄 수 있고 냉장고, 세탁기, 건조기는 꼭 필요한 가전이다. 나는 침대와 청소기, 수납장 두 개를 새로 구입했다. 역시 필수 생활 용품이다. 전자레인지와 작은 전자기기, 기타 생활 용품은 이미 작년에 모두 갖췄다. 그래서 이제 남은 건 소파다.


셋이 사는 집에 큰 소파는 필요 없다. 큰 덩치는 나중에 처분하기 더 힘들 것이다. 게다가 둘째가 졸업할 때까지 사용한다고 해도 최대 3년 9개월을 사용할 것이다. 많은 돈을 들일 필요도 없다. 가격이 만족스러운 소파는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차피 정해져 있는 기간을 사용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살 수는 없다. 소파를 볼 때마다 후회할 것이다. 효율성과 그래도 이뻤으면 하는 내 간사함은 타협을 보지 못했고 그래서 나는 아직까지 소파 없이 지내고 있다.


처음엔 소파 없는 집이 무척 불편했다. 소파에서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다. 책도 보고 영화도 본다. 짧은 낮잠도 자고 어느 날은 긴 잠도 잔다. 웅크리고 누워서 생각도 하고 다리 쭉 뻗고 와인도 마신다. 소파는 휴식과 행복을 품고 있는 가구다. 그렇기 때문에 고민이 더 길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 딱 맞는 즐거움을 줄 소파를 찾는 건 사막에서 바늘 찾는 것만큼 어려웠다. 오로지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그 가구를 들여놓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여러 가지 이유들이 그것을 쉬이 할 수 없게 했다.


소파 없이 지낸 지 벌써 한 달이 넘었다. 책은 책상에 앉아서 읽고 영화는 침대에서 본다. 낮잠은 한 번도 잔적이 없고 바닥에 붙은 낮은 비치의자에 앉아 다리를 쭉 펴고 생각한다. 테라스에 있는 야외 의자에 앉아서 글을 쓰고 석양을 보며 와인을 마신다. 소파가 혼자서 한 일을 여러 가구들이 나눠하게 되었다. 생각보다 괜찮은 느낌이다. 하지만 포근하게 감싸주는 소파를 대신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다. 그것은 기능적인 부분이 아니고 심리적인 부분이다. 누구에게나 편안함과 안정이 필요한 순간은 찾아온다.


소파가 절실하게 갖고 싶을 때가 있다. 그 때라는 것은 어제처럼 마당에서 풀을 뽑았다든지, 운동을 하고 들어와 녹초가 되었을 때라든지, 무거운 짐을 들고 집에 막 도착했을 때 같은 상황 말이다. 어딘가에 널브러지게 늘어지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드는데 그 장소가 침대가 아닌 다른 공간이어야 한다. 나는 밤에 잠을 잘 때나 어딘가 아파서 쉬어야 할 때를 빼고는 침대에 머무르지 않는다. 소파에서 눕는다는 것은 일시적인 쉼이라는 것이 누구에게나 암묵적으로 약속되어 있다. 언제든 눕고 또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곳이다. 조금 별난 생각인가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소파와 침대는 분명히 제 역할이 다르다.


장황하게 떠들었지만 결론은, 그래서 아직 소파가 없다. 중요한 것은 그래서 불편한 건지, 괜찮은 건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없어도 괜찮은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이내 소파가 있었으면 더 편했을 텐데, 하는 생각이 잽싸게 따라붙는다. 유효기간이 있는 이곳에서의 삶이라 최대한 미니멀한 삶을 살다 가고 싶은데 딱 그 중간에 걸쳐져 있는 게 소파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갖고 싶지만 없어도 될 것 같은 그 경계에 있는 가구인 것이다. 우리 집엔 의자가 모두 14개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많아졌다. 그 많은 의자는 소파 한 개를 대신하지 못한다. 이 글을 쓰면서 내내 소파를 사면 그것이 자리하게 될 벽 한 면에 눈이 간다. 그곳은 계속 비어있지만 언젠가 적당히 마음에 드는 것을 찾게 되면 편안함으로 꽉 채워질 것이다. 지난주에 마음에 드는 일인용 소파가 세일을 했는데, 한번 더 생각해 보자 하는 사이 세일이 끝난 게 아직도 못내 아쉽다. 딱히 불편하지도 않지만 어딘가 공허한 지금 상황에 일인용 소파를 집에 들였으면 균형이 잘 맞았을 수도 있다. 어쩌면 정말 딱! 좋았을지도 모른다. 지금 애매한 고민을 적절히 보완해 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 이유는 내가 그 소파를 못 샀기 때문이겠지.


오늘도 경계에 서있다. 소파는 필수품인가, 아닌가. 글을 잠시 멈추고 생각을 해봤지만, 역시나 모르겠다. 이 고민은 아마 적당한 가격에, 적절히 마음에 드는 디자인에, 포근한 색을 가진 소파를 발견하는 날 끝날 것이다.


... 그렇다면 필수품인가?

...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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