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을 만드는 방법

by 게으른 곰

어릴 적 어딘가에서 봤던 김밥 이야기가 생각난다. 미국으로 이민 간 어느 사람의 이야기였다. 엄마가 김밥을 점심 도시락으로 싸주었는데 학교에서 놀림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학교 친구들은 처음 본 김밥을 염소똥같이 생겼다며 놀렸다고 했다. 게다가 도시락 뚜껑을 열자마자 풍기는 밥 냄새는 그들이 흔하게 먹는 음식의 냄새와 달랐을 것이다. 그 시절 김밥은 놀림의 대상이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한식 도시락을 싸지 않았다고 했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른 지금, 외국인 입맛을 사로잡은 김밥은 미국에서도, 그리고 뉴질랜드에서도 인기다.


처음 학교 도시락을 싸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무척 절망적이었다. 나는 요리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다. 되도록 절차가 간단한 요리를 한다. 데치거나 볶으면 더 맛있어질 음식도 생으로 먹을 수 있는 재료라면 생으로 먹는 것을 택한다. 결혼을 하고 밥을 처음 지어봤고 그 전의 나의 요리 실력은 라면을 끓여 먹을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요리를 시작하기 전 레시피부터 봤다. 장을 볼 때도 레시피에 나오는 재료들을 적어가서 사 왔고 한 가지 재료라도 없으면 그 요리는 못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주 5일 도시락을 싸야 하다니.


나는 한식을 좋아한다. 한국사람이니 어쩌면 당연한 얘기다. 외식 메뉴로 스파게티와 밥 중에 고르라면 늘 밥이다. 남편과 큰 아이는 한식과 서양식이 섞인 입맛이다. 세계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이 시기에 그 둘은 살아남기에 더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한식파인 나는 뉴질랜드에서 살면서 먹는 게 고민이었다. 여기에도 한인마트가 있고, 중국마트에 가면 한국인이 요리하는데 필요한 신선한 재료들을 팔고 있다. 돼지 등뼈나 내장, 매운 고추나 대파도 구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처럼 모든 것을 구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게다가 한인마트나 중국마트는 배달을 하지 않는다. 나는 한국에서도 마트를 거의 다니지 않았다. 요리에 필요한 재료들을 마트에서 배달시켰다. 요리에 큰 관심이 없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눈으로 보고 신선함을 가린다던지, 새로운 재료에 도전을 하는 즐거움이 나에게는 없는 것이다. 늘 사는 재료들로 늘 해 먹는 몇 가지의 음식을 해서 먹고살았다. 내가 감히 도전할 수 없는 음식은 식당에서 먹었다. 집에서 감자탕을 뚝딱 해 먹는 큰애 친구 엄마를 늘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봤었다.


그런 사람이라 도시락이 큰 골치였다. 처음엔 샌드위치를 쌌다. 빵을 굽고 햄과 치즈, 양상추를 얹어서 만들었다. 한국인이 생각하기에 점심으로 양이 부족할 것 같아서 과일과 시리얼바도 잔뜩 넣어줬다. 한인 마트 갈 정신도 없었고 한국에서 소풍 도시락을 제외하고 도시락을 싸본 적이 없어서 뭘 싸야 하는지 감을 못 잡고 있었다. 유치원 때부터 급식을 먹는 한국의 급식 운영 시스템이 나를 애국자로 만들 줄이야. 그렇게 지내면서 아이들에게 듣게 된 이야기는 조금 충격적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점심 도시락으로 땅콩 잼 바른 빵 두 조각을 싸 온다는 것이었다. 밥심으로 40년을 살아온 한국인으로서는 적잖은 충격이었다. 외국인은 확실히 한국인보다 식사량이 많지 않은 것 같다. 물론 모든 키위가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아침엔 시리얼이나 팬케이크, 점심엔 간단한 샌드위치, 그리고 저녁을 가족이 모여 풍족히 먹는다고 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아침에도 밥, 점심에도 밥, 저녁에도 밥을 먹였다. 그 이유는 엄마가 나를 그렇게 키우셨기 때문이다. 다른 점은 엄마는 요리를 정말 잘하셨다. 나는 아빠를 닮았다. 밥을 먹고 엄마가 된 나는 아이들이 아침에 밥을 안 먹고 가면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알았다. 뉴질랜드에 조금 적응이 된 다음부터 볶음밥도 싸주고, 주먹밥, 삼각김밥, 김밥, 부리또, 토르티야 등을 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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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애들 친구들에게 사랑 고백을 많이 받았다. 김밥 덕분이다. 친구들은 언제 김밥을 싸 올 거냐고 우리 애들에게 수시로 묻는다고 한다. 처음엔 이것저것 넣고 김밥을 싸다가, 나중에는 매운 어묵 김밥을 자주 쌌다. 매운 어묵 김밥은 재료 준비가 매우 간단하고 맛도 좋다. 청양 고추 블록을 5개 넣었을 뿐인데, 친구가 먹고는 너무 매워했다고 한다. 나는 아무리 먹어도 매운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고추 블록을 3개로 줄였다. 매운 어묵 김밥인데 그냥 어묵 김밥 맛이 난다. 그래도 모두가 맛있게 먹는다니 그 편이 좋을 듯싶다.


일 년 동안 김밥을 대략 50번쯤 싸고 느낀 점은, 엉뚱하게도 너무 틀에 맞춰 살지 말자였다. 나는 꼼꼼한 사람이다. 특히 청소에 무척 꼼꼼하다. 깨끗하고 정돈되어 있는 집이 좋다. 요리는 잘하지 못하는 분야라 자신은 없지만 건강하고 깔끔하게 음식을 하려고 애쓴다. 김밥 재료가 다 있어야 맛있는 김밥이 되는 줄 알았다. 햄이 없고 단무지가 없으면 김밥을 쌀 수 없다고 생각했다.

참 재미있는 사실은 재료 공급이 제한된 외국에서 살면서부터 요리가 부쩍 늘었다. 내가 늘 대단하게 생각했던 엄마처럼 레시피를 보지 않고 휘리릭 뚝딱 요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이유는 어이없게도 '대충'이었다. 된장국을 끓이는데, 두부는 뉴질랜드 마트에서도 손쉽게 구할 수 있었지만 시금치가 우리나라처럼 큰 게 없었다. 어린잎 시금치를 샐러드 용으로 많이 팔았는데, 그건 뜨거운 국에 넣자마자 작게 쪼그라들어 영양가도 없고 식감도 없을 것 같았다. 옆에 있는 이름 모를 채소를 샀다. 그리고 쑥쑥 잘 큰 그 채소를 숭덩숭덩 썰어서 두부와 된장찌개를 끓였다. 맛있었다. 공심채 비슷한 종류였던 거 같은데, 아직도 그 이름이 뭔지 기억이 안 난다. 이날 먹은 된장찌개가 그동안 꽁꽁 묶여있던 내 요리 패턴을 바꿨다.


오늘은 달걀, 당근, 참치, 상추를 이용해 김밥을 쌌다. 깻잎이 없는 게 아쉽지만, 참치 김밥을 쌀 때 상추에 참치를 말아서 싼다. 아삭아삭한 식감이 나쁘지 않다. 김밥햄대신 샌드위치 햄으로도 김밥을 싼다. 넓은 샌드위치 햄을 깔고 그 위에 당근과 양배추를 넣고 김밥을 만다. 샌드위치 햄에 싸인 당근과 양배추가 예쁘다. 매운 어묵 김밥은 언제나 스태디 셀러고 재료가 영 없을 때는 치즈에 샌드위치햄, 상추, 달걀을 넣고 김밥을 만다. 그냥 내 마음대로다. 무엇을 넣어도 김밥은 맛있다. 그리고 동글동글 참 예쁘다. 보통 10줄을 마는데, 아이들 3-4줄(친구와 나눠먹으라고 넉넉히 싼다.)을 싸주고 나면 내 아침과 점심까지 해결이 된다. 장점이 많다.


대충 요리를 하다 보니 새로운 발견도 많이 한다. 한식과 양식의 조화도 꽤 많다. 모든 건 다 내 마음대로다. 맛이 있을 때도 있지만 없을 때도 있다. 그런데 레시피를 보고 요리를 할 때도 그랬다. 맛이 있을 때도 있었고 없을 때도 있었다. 내가 완벽하게 어떤 일을 수행한다고 해서 그 일이 예상대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조금 더 힘을 빼고 내 마음대로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틀에 맞춰 살필요는 없다. 면밀하게 살펴야 하는 일도 있겠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일들도 있다. 특히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많이 느낀다. 그들에게 좋은 습관과 생각을 가르쳐주고 싶지만, 내 마음처럼 안 따라 줄 때가 많다. 가끔은 너무 명확한 정답이 보여 강요할 때도 있었다. 그게 좋게도 되었고,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기도 했다. 결국 김밥이라는 음식을 만드는 데 있어 그 안에 어떤 재료를 넣어서 어떤 맛의 김밥을 만들 것인지는 각자가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먹어보고 맛있었던 김밥 레시피를 알려준다고 해도, 그들이 내 레시피대로 똑같은 재료를 가지고 만든 그들의 김밥은 나의 것과 다른 맛이 날 것이다. 맛이 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여전히 자주 하는 말 중에 하나가 '아직도 배운다'라는 말이다. 요리를 아직도 잘하지는 못하지만, 요리에 대한 부담감이 마흔이 넘어서 반으로 줄었다. 그 줄어든 부담감은 인생의 행복을 찾는데 조금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아침에 싼 김밥을 이미 다 먹어버린 나는 든든한 배를 두드리며 글을 쓰고 있다. 곧 점심시간인데 아이들도 맛있게 도시락을 먹어주길 바란다. 방과 후에 오늘 김밥에 대한 품평회가 열릴 것이다. 다음 김밥을 쌀 때 참고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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