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 중 최고로 게으른 사람일 것이다. 나의 정의를 찾는 기회가 올 때마다 게으름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게다가 요즘엔 의식적으로 생각을 하지 않으려는 순간이 종종 있다. 어떤 생각이 떠오르려고 하는 순간, 나는 의식적으로 다른 생각을 한다. 아마 그 생각에서 도망치려는 듯 말이다. 무언가 시작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내 게으름의 다른 말은 두려움이다.
인생을 살면서 자연적으로 배운 것들이 많다. 어떤 것들은 노력을 통해야만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안다. 예를 들면 목표한 시험 합격을 위해 애쓰는 것, 책을 읽으면 조금 현명한 사람이 된다는 것, 매일 꾸준히 하는 무언가는 언젠가 다양한 모습으로 결실을 맺게 된다는 사실 같은 것들 말이다. 그것은 당연하지만 누구나 누릴 수는 없다. 게으르지 않고 하려는 의지가 어느 정도 있어야 실천할 수 있는 일이다. 알고 있지만 행동하지 않기도 하다. 지금 내가 영어 공부를 해야 하고, 매일 조금씩 그림을 그려야 하고, 사회와 소통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아무것도 실천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학창 시절 여러 분야에 관심이 있었다. 야구도 좋아했고 음악도 좋아했다. 그중 제일 좋아했던 그림 그리는 것을 직업으로 삼았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큰돈은 못 벌었지만 꽤 즐겁게 일했다. 아이를 낳은 후에 작가로 직업을 바꿔 벌이는 더 안 좋아졌지만 직업의 만족도는 높아졌다. 그리고 지금 난 백수가 되었다.
아이들과 뉴질랜드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나의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 재료도 없고 이상하게 시간도 없다. 이곳에서의 하루는 한국보다 빠르게 흘러간다. 아침 식사 뒷정리를 하며 커피를 마시고 글 한 편을 쓴다. 글은 아직 내게 쉽지 않은 분야라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같은 말을 반복해서 쓸 때가 많고 어딘지 어색한 문장이 눈에 띄지만 어떻게 다른 문장으로 대체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짧은 글을 2-3시간 붙들고 끙끙 앓다 보면 점심때가 된다. 사실은 중간에 글이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유튜브나 인터넷 페이지를 유랑하는 시간이 포함되어 있다. 잘하지 못하는 것을 하면서 회피의 시간도 덩달아 많아졌다. 겨우 글을 마치면 점심을 먹고 이곳에서 처리해야 할 여러 가지 일들을 해결한다. 대게 이메일을 작성하는 일이다. 특별히 할 일이 없는 날엔 영화를 보거나 산책을 한다. 아이들 학교는 3시에 끝나고 별다른 스포츠 활동이 없는 날엔 집으로 직행이다. 아이들이 오면 오늘 있었던 학교에서의 이야기를 듣고, 슬슬 저녁 식사 준비를 시작하고, 저녁을 먹고, 아이들은 숙제, 나는 일기 쓰고 10시쯤 잘 준비를 한다.
오늘은 글을 쓰는 도중 잠깐 잠이 들었다. 창밖에서 우는 매미 소리에 반쯤 깬 나는 '시끄럽다'를 느끼며 꿈인지 무의식인지 '아이들 도시락 싸야 되는데!' 라며 놀라며 눈을 떴다. 나는 아이들 도시락 싸는 것에 부담을 갖고 있는 게 틀림없다.
오늘은 낮잠으로 30분의 추가 시간을 사용했다.
뉴질랜드의 하루는 날씨에 의해 좌우되는데, 해가 뜨면 천국, 흐리거나 비가 오면 망한 날이다. 개인 시간이 많아진 백수에게 날씨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해가 뜬 날엔 도서관에도 가고 바다에도 간다. 달리기도 하고 마트에도 간다. 나름 바쁘게 하루를 보낼 수 있다. 반면에 비가 오는 날은 하루종일 집이다. 저 비를 뚫고 어딘가에 가고 싶지 않다. 바람이 많이 부는 뉴질랜드는 우산을 펼치고 나가봤자 우산을 쓰지 않은 것과 같은 효과가 난다. 원래 게으른 나는 이곳에서 점점 더 게을러지고 있다. 뒷마당이 있는 집은 매일 강원도 어딘가의 펜션에서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서울에서 여유를 찾아 일부러 떠난 여행이 이곳에서는 일상이 되었다. 서울에 살 땐 이런 곳에서라면 매일 영감이 넘치는 작업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작업이 힘든 이유는 삭막한 도시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었다. 다 헛소리다.
오늘은 점심을 먹고 테라스에 앉아서 글을 쓰고 있다. 오늘은 아침에 부슬비가 내리더니 하늘이 맑게 갰다. 뉴질랜드에 살면서 수시로 바뀌는 날씨에는 완벽하게 적응을 했다. 이곳은 하루에 4계절이 공존한다. 바람이 살랑살랑 불고 있고 매미 한 마리가 가는 여름을 붙잡고 애타게 울고 있다. 저 멀리 옆옆집에서 무언가 망치로 두드리는 소리가 작게 들리고 있고 바람에 나뭇잎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멍하게 한참을 아무 생각 없이 앉아있었다. 나는 지금 평화로운 건지, 건조한 건지, 행복한 건지, 불행한 건지 잘 모르겠다. 불행한 건 아닌데 행복한 것 같지도 않다. 이 정체 모를 감정은 처음이라 나는 계속 이 감정의 이름을 찾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내 마음을 훑다가 나는 내가 이곳에서 게으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았다. 재료가 없어서도 아니고, 바빠서도 아니다. 평화로운, 영감이 넘치는, 생명이 흐르는, 이곳에서 나는 방향을 잃었다.
작년 뉴질랜드에서의 첫 해, 한국에서 작업하던 책을 겨우 마감하고, 다른 어떤 성과도 없이 일 년을 보낸 게 무척 아쉬웠다.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적응하느라 그랬다고 생각했다. 무탈하게 시간을 보낸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올해도 마찬가지다. 뉴질랜드에 오자마자 이사를 했고 아직도 전 집 계약이 남아있다. 이사가 완전히 마무리되면 마음의 짐이 하나는 덜어지겠지. 그것으로 내 마음의 공허가 설명되기엔 그 일은 별일이 아니다. 여전히 잘 모르겠다. 너무 아름다운 이곳에서 나는 왜 공허를 느끼는지 말이다. 게다가 말 그대로 하늘색 하늘에 하얗고 작은 구름이 떠있는 아름다운 날씨인데 말이다. 작년 내내 적응하느라 애썼다고 정의를 내렸는데, 그럼 올해는 왜 아직도 게으른 걸까. 나는 무엇이 두려운 걸까.
나는 열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그것을 이루고자 노력했다. 스스로에게 엄격한 편이라 원하는 목표를 이룰 때까지 만족하지 못했다. 한번 켜진 작은 불씨를 큰 모닥불로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힘들지만 즐겁게 했다. 시련이 있었고 실망도 많았지만 결국 항상 도달했다. 그리고 내 옆엔 늘 누군가 있었다.
그럼 나는 외로운 것일까 하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게 맞을지도 모른다.
나는 사람이 그리운 걸까, 아니면 즐거움이 사라진 삶이 심심한 것일까. 두 질문의 차이를 다시 곰곰이 생각해 봤다. 사람을 통해 즐거움을 얻었으니 어떤 것이라고 정의 내리기가 쉽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사회적인 인간이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게으를 수밖에 없는 곳이라고 해야겠다. 외딴 시골에 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고요함이 필요했다. 너무 분주하고 바쁜 도시 생활이 싫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늘 그리던 완벽한 장소에 살고 있다. 오클랜드는 뉴질랜드 최대 도시이면서 시골 같은 정취를 품고 있는 곳이다. 시골의 고즈넉하고 여유롭고 평화로운 풍경과 분위기에 극장, 쇼핑몰, 마트, 병원 등 모든 편의시설이 갖춰진, 살기에 불편함 없는 완벽한 곳이다. 다만 내가 생각보다 더 사회적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이 나이 되도록 아직도 나에 대해 모르는 점이 있다는 게 한편으로 놀랍지만 60살이 된다고 나의 모든 것을 알게 될까?라고 질문했을 때, 그때도 새로운 나를 발견할 것 같아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핑계를 길게 풀었다. 이렇게라도 풀어놔야 오전에 흐리멍덩하게 보내버린 시간들이 아깝지 않을 것 같아서다. 가끔 생각한다. 남편이 있었으면 훨씬 더 좋았겠지? 옆집에 인자한 할머니가 살고 계셨다면 더 나았겠지? 나는 늘 내 안에서 답을 찾는 사람이었다. 지금 나는 밖에서 이유를 찾으려 하고 있다. 곰곰이 앉아서 게으름을 다시 생각해 본다. 나는 사회적 인간인 것도 맞고, 시작이 어려운 사람도 맞다. 결정을 빨리 내리는 이유도 시작이 어렵기 때문에 일단 시작해서 불안을 줄이려는 것이다.
'시작이 반이다.', '작시성반(作始成半)'
수백 년 전에 살았던 인생 선배가 후배에게 남긴 말이다. 그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후배는 여태 깨닫지 못하고 후배의 다음 세대에게 같은 말을 이제야 하고 있다. 시작이 참 어렵다.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은 열 가지도 넘는데 글쓰기 하나 시작했다. 안다. 알지만 내가 계획한 일을 언제 시작할지는 아직도 장담하지 못하겠다. 당장 오늘이 될지도 모르고, 한 달 뒤나 혹은 올해도 적응하느라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라고 연말에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을 선택했든, 모든 것은 내가 선택한 것이고 나는 내 선택에 의한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그 인생은 좋든 싫든 나의 인생이다.
수많은 선택으로 이루어진 현재를 살고 있다. 아직도 새로운 시작이 두려운 40대가 된 나는 시작을 회피하며 무료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이렇게 구구절절 글을 쓰는 이유는 그렇게 해선 안된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머리를 땅 속에 박고 눈을 감는다고 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님을 안다. 눈을 뜨고 머리를 바짝 들고 다리를 움직이자. 두드려 맞든, 맞서 싸우든, 다른 어느 선택을 하든지, 그래야 결과가 나올 테니. 몸을 움직이면 의외로 정답은 금방 얻을 수 있다. 간단한 세상을 어렵게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